해경 해체 결정 이후 불법 조업 더 ‘기승’

독도는 우리 땅, 서해 5도는 중국 땅?

▲ 서해 5도 어민들이 12일 오전 인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어선 불법조업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최근 중국어선 1000여척이 서해5도 바다를 싹쓸이하면서 발생한 피해상황을 알리고,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비판했다. 기자회견 후에는 정치인들은 만나기 위해 서울로 갔다.
중국어선 불법조업을 참다못한 서해 5도(=백령ㆍ대청ㆍ소청ㆍ대연평ㆍ소연평도) 어민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뭍(=인천)에 올랐다. 어민들은 꽃게와 홍어 잡이 철에 어족자원은 물론 어구까지 싹쓸이 당하자 분통을 터트렸다.

대청면 어민 60여명은 지난 12일 오전 인천시청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마도는 일본 땅, 독도는 우리 땅, 서해 5도는 중국 땅”이라며, 중국어선 불법조업 피해상황을 고발한 뒤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옹진군 대청면 어민과 대청면사무소의 설명을 종합하면,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은 지난 1일부터 시작됐으며, 해양경찰청 해체를 골자로 한 정부조직 개편안이 통과될 무렵 더욱 본격화됐다.

우리 수역을 넘어와 조업 중인 중국 어선은 1000여척으로, 이들은 선단을 꾸려 매일 불법조업을 자행하고 있다. 우리 해경이 경비함정 4척을 파견해 단속하고 있지만, 중국의 선단 규모가 커 속수무책이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은 전보다 더욱 대담해졌다. 과거엔 NLL(=북방한계선)을 타고 우리 수역으로 넘어왔다가 해경이 단속하면 북방한계선으로 돌아가는 수법을 취했다. 그런데 이번엔 NLL을 통해 들어오지 않고, 공해상에서 바로 우리 수역을 침범했다.

이들은 주로 소청도와 대청도 남단까지 들어와 저인망으로 백령도 서북단의 어족자원까지 싹쓸이했다. 조업만 한 게 아니라 우리 어민들의 그물ㆍ통발ㆍ주낙 등 어구는 물론 심지어 쓰레기까지 몽땅 싹쓸이했다.

옹진군은 현재 피해규모를 파악 중이다. 대청면에 50여척에 달하는 조업 선박이 있는데, 20여척에서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대청면사무소는 “어선 20여척에 딸린 어구 70여 틀이 사라졌고, 피해액은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전했다.

곽윤직 ‘중국어선 불법조업 어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홍어와 꽃게 등의 성어기인데도 어구를 싹쓸이 당해 조업할 수 없다. 이전에도 NLL을 따라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이 성행했지만, 이처럼 대규모 선단이 우리 수역 서남단으로 직접 들어온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백령면 서쪽과 남쪽, 대청면 남쪽에 어장이 크게 형성돼있다. 백령면에서 발생한 피해는 아직까지 집계되지 않았고, 중국어선 불법조업은 어장이 아닌 곳에서도 자행돼, 어족자원 고갈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어구를 싹쓸이 당한 어민들은 조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그물과 통발, 주낙 등을 다시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설치하더라도 또 싹쓸이 당할 수 있어, 이대로 두면 서해 5도 어장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강신보 전 대청면 어민회장은 “어구 손실에 따른 생계도 걱정이지만, 싹쓸이에 따른 어장 피해가 훨씬 더 걱정이다. 저인망 쌍끌이 어선을 동원한 중국 어선들이 우리 해역 바닥까지 훑어버려 바다 밑 모래와 갯벌에 해양생물들이 살아남을 수 없게 되고, 결국 이는 어장 파괴로 이어진다”고 걱정했다.

배복봉 대청면 어민은 “통발들이 엉킨 상태로 있다. 그 안에 산란 등을 위해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한 물고기들이 죽어서 썩고, 그것을 먹기 위해 들어간 물고기가 또 죽는 과정이 반복된다”고 덧붙였다.

1000여척 선단에, 해경도 속수무책 … “못 막을 거면, 우리한테 총을 달라”

▲ 지난 12일 오전 인천시청 본관 앞에서 열린 서해 5도 어민들의 기자회견에서 배복봉 대청면 어민이 중국어선들의 침탈 경로와 피해상황을 준비한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고 그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지만, 우리 해군과 해경은 속수무책이다. 해군은 군사적 충돌 위험을 꺼려 적극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고, 해경만으로 1000여척 규모의 선단을 감당하기 어렵다.

게다가 중국 어선들은 날씨가 좋은 날보다는 풍랑이 거친 날을 골라 불법조업을 자행한다. 또한 선박 둘레에 쇠창 등을 박고 50여척 규모의 선단으로 움직이기에, 인력과 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우리 해경이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중국 어선들이 몰려오면 우리 어민들에게 피하라고 안내하는 게 고작인 상황이다.

해경과 함께 불법조업을 단속하는 옹진군 어업지도선은 5일 오전 5시 45분쯤 중국 어선들이 새카맣게 몰려오는 것을 레이더로 포착했다. 당시 우리 쪽 어선 30여척이 조업 중이었고, 중국 어선들이 지나는 길목에서 3척이 맞닥뜨리는 상황이었다.

옹진군 관계자는 13일 <인천투데이>과 한 전화통화에서 “당시 중국 어선들이 순식간에 밀고 들어와, 안전한 곳으로 피하라고 지시했다. 지금도 백령면과 대청면 어장 주변에 중국어선 100척이 넘게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어민 배복봉씨는 “지난 5일 오전 5시 52분 조업을 나갔을 때, 앞에서 중국 어선들의 불빛이 보였다. 해군 2함대사령부 소청 레이더 기지에 전화하니까,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상부에도 보고했다’고 답했다. 죽기 일보 직전이니 빨리 조치해달라고 얘기했지만, 기지에선 ‘알았다’고 했을 뿐, 그걸로 끝이었다”고 하소연했다.

12일 어민들의 기자회견장에 나온 인천해경 관계자는 <인천투데이>과 한 인터뷰에서 “지난주에 3000톤급 이상 함정 4척과 헬기 1대, 특공대 30여명까지 투입해 10여척을 나포했지만, 중국 어선이 워낙 많아 단속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어민들은 중국 어선들의 이례적인 대규모 불법조업이 ‘해경 해체’와 맞물려있다고 보고 있다. 해경이 국민안전처로 편입되는 과도기에 해경이 정말 해체됐는지 시험하고자 중국 어선들이 계획적으로 공해상에서 바로 우리 수역을 침범했다는 것이다.

어민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해결해준다는 말만 하고 (우리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줘봤나. 대체 이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해야하냐? 나라에서 못 막을 거면 우리한테 총이라도 줘라. 우리 땅 우리가 지키게”라고 분노했다.

 
옹진군 대청면 어민들은 지난 12일 인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한 후 곧바로 서울로 갔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당사를 방문해 대책마련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어민들은 새누리당을 먼저 방문해 당대표 또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의원단과 면담을 요청했다. 알았다고만 할 뿐 별다른 얘기가 없자, 어민들은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발길을 옮겼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국회 당대표실로 오라고 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과 어민들의 간담회에는 정무위원회 신학용 의원과 정청래 안전행정위원회 야당 간사가 같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어민들은 정부의 강력한 단속과 함께 ‘서해 5도 지원 특별법’ 개정을 주문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고, 간담회 후 어민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게 해줬다.

국회 기자회견 이후, 중국어선 불법조업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태도는 어민들을 더욱 자극했다. 옹진군의회도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너무 모른다고 질타했다.

김형도 옹진군의회 의장은 13일, “(12일 열린) 대정부 질문 때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 의원이 ‘지금 대청도 어장에 중국어선 500여척이 떼를 지어 다니는 불법조업 사태를 알고 있느냐?’고 질문했는데, 김관진 안보실장이 모른다고 하고, 국방부 장관도 모른다고 했다. 어민들이 여야 당사를 항의방문 했는데, 여기에서 마무리해선 안 된다. 옹진군과 옹진군의회에서는 합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어선 불법조업 어민대책위원회’ 소속 어민들은 “정부가 모른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지난 5일에도 5시 52분께 레이더에 잡힌 상황을 (상부로) 다 보고했다. 그런데도 모른다? 그러면 이북 배가 들어와도 몰랐나? 이건 말이 안 된다”며 “지금 꽃게와 홍어 잡이 철이라 하루 조업하면 300만원에서 500만원은 번다. 이 돈으로 선원도 살고, 나머지 섬사람들도 살아간다. 어민들이 하루속히 맘 편하게 조업하게 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허선규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해양위원장은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이 한창일 때 한ㆍ중 정상은 중국에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했다. 우리 정부가 세계 3대 영토를 갖게 됐다고 자랑할 때, 정작 서해수역은 중국 수역이나 다름없었다”며 “두 나라 정상이 FTA라는 거대 협정의 협상을 타결하는 때, 중국 어선은 우리 수역을 난도질했고,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외교 관례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 문제가 향후 한ㆍ중 FTA 의제에 포함돼야한다. 아울러 ‘해경 해체로 인한 불법조업 단속 공백을 어떻게 할 것이냐’ ‘중국의 영해 침입에 대해 국방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불법조업으로 인한 어민피해를 어떻게 배상할 것이냐’ 등이 향후 과제이다. 또한 불법조업 단속으로 조성한 벌금 약 700억원을 어민 지원에 활용해야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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