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이 만난 사람] 김영환 함봉산 지킴이 할아버지

10월 29일 오전 9시, 서구와 부평구에 걸쳐있는 함봉산에 올랐다. 6년 동안 함봉산 둘레길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는 할아버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였다. 함봉산 할아버지로 불리는 그의 이름은 김영환(84ㆍ사진). 그의 행적이 담긴 비석과 그가 손수 만든 둘레길 쉼터에서 그를 만났다.

건설노동자였던 할아버지, 퇴직 후 산을 짓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태어나 서울시 마포에서 살던 김영환 할아버지는 1990년에 부평구 산곡3동으로 이사 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건설현장에서 철재 다루는 일을 했다.

“63빌딩에서도 일하고 여의도 수출은행도 내가 지었어. CBS 방송국도 짓고, KBS는 4~5년간 내가 다 지었지. 내가 지은 건물을 다 외우지도 못해”

그래서일까? 함봉산 여기저기에서 건설노동자의 손길이 느껴진다. 쉼터 뒤편에는 나무와 여러 가지 물건을 재활용해 만든 갖가지 운동기구들이 보였고, 산에 있는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의자를 만든 우천(雨天)대피소도 있다. 지붕천막은 마을에서 직접 가지고 올라왔다.

2006년에 퇴직한 할아버지는 2009년엔 심장이 안 좋아 병원 응급실에서 보름동안 누워있었다. 퇴원하고 나서 집에 누워만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생각한 게 집 뒤편에 있는 산을 오르는 거였다. 꾸준한 등산으로 빠르게 회복됐지만, 젊은 시절 공사현장에서 보낸 노동의 세월이 허리를 괴롭혀 지금은 통증이 심하다.

“그 때 산에서 이병동이라는 친구를 만났지. 그 친구가 선포약수터 근처와 앞에 보이는 산의 길은 먼저 터를 잡아놨지. 기초공사는 그 양반이 더 했어”

이병동 할아버지는 작년 겨울 김 할아버지의 곁을 떠났다.

“그 양반이 작년 12월 25일 10시에 죽었어. 크리스마스 날 성모병원에서 말이야. 쓸쓸했지. 장례식장에 갔는데 다른 조문객이 없어서 나 혼자 조문하고 한참 앉아있다 왔지. 그 양반이 나보다 나이는 위인데 형님 동생하며 친하게 지냈어. 친구들이 먼저 다 가서 장례식장에 올 사람이 없었던 거지. 할머니가 몇 달 만에 찾아와 고생했다고 이것저것 음식을 싸와서 주고 갔지”

호랑이 형상의 함봉산

지금은 김 할아버지가 해놓은 일들에 모두 고마워하고 있지만, 둘레길을 처음 조성할 때에는 오해도, 훼방꾼도 많았다.

“처음엔 왜 나무를 자르냐고, 왜 길을 넓히느냐고 방해하는 사람이 많았지. 둘레길을 만들기 위해 앞을 가로막거나 걸리는 나무들을 잘랐더니, 막 항의를 했어. 비가 오면 흙이 쓸려 내려가잖아. 그걸 방지하기 위해 나무를 잘라 댔지. 예전에는 흙이 물러서 많이 쓸렸는데 이젠 잘 다져져 괜찮아. 예전에 반대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좋아하지”

할아버지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이러한 얘기는 입과 입으로 전해져 서구청장과 부평구청장뿐만 아니라 인천시장이 표창장을 주기도 했다.

하루에 1000명 정도 다니는데 800명은 그에게 인사를 하고 간다기에, 어떻게 할아버지를 알아보느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이내 둘레길 비석 옆에 세워진 안내판에 있는 자신의 사진을 가리킨다. 안내판과 비석도 할아버지가 직접 제작한 거란다.

비석에는 ‘함봉산 둘래길’이라고 쓰여 있다. 둘래의 래는 ‘來(래)’라는 의미를 담아 그렇게 적었다고 한다.

“250년 전에 원곡길 쪽의 산을 암봉산, 주안 방향의 산을 수봉산이라고 했어. 여자산, 남자산이라는 의미로 암수로 이름을 불렀지. 예전 열우물 근방에 소금밭이 있었는데 거기에 살던 성씨라는 사람이 호랑이에 물리고 나서 그때부터 범의 소리라는 뜻을 담아 함봉산이라 불렸어”

함(䖔)이라는 한자가 흰 범, 범의 소리 ‘함’자인데 오른 변이 범 호(虎)와 같아 사람들이 헷갈려서 호봉산이라고 잘못 불리고 있다고 했다.

실제 함봉산에 오르니 표지판에 호봉산으로 적힌 것과 함봉산으로 적힌 것이 혼재돼있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함봉산으로 고치기 위해 노력 중이란다.

호랑이 몸에 철탑이 박혀

▲ 김영환 할아버지가 만든 운동기구들.
함봉산은 둘레길이 조성된 후 인천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름이 났다.

“모르는 사람이 없어. 연안부두에서도 오고 부천에서도 오고 있어. 언덕도 없어 평평하고 걷기 좋으니까. 사람들이 전국에서 제일 잘됐다고 하지 뭐”

뿌듯하시겠다는 말에 “뭐가 뿌듯해? 그냥 내가 다니려고 만든 길인데 사람들이 좋아하니 더 좋지. 내 목적은 돈이나 명예를 바라는 건 아니야. 사람들이 걷고, 건강하면 좋아. 기념비를 세운 것도 언제 이걸 했는지, 얼마나 걸려 했는지 알리려고 한 거지 내 이름을 알리려고 한 건 아니야”라고 했다.

이 산에는 송전탑이 꽤 있다.

“호랑이 머리 위에 철탑이 박혔어. 누군가 범의 머리이니 빼라고 정부에 요구했다는 말도 있어. 목과 꼬리가 잘린 형상인데도 꿋꿋하게 죽지 않고 살아있지. 호랑이 머리와 목, 등허리와 발까지 10여개를 박아 놨어. 풍수지리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혈(血)의 흐름을 막아선 안 된다고 하는데, 국가 정책이니 어쩔 수 없지”

시민들의 건강 지킴이

할아버지가 조성한 둘레길은 어림잡아 4km정도 된다. 할아버지는 더 하려고 하다가 주변에서 그만하라고 해 안 했다고 했다. 힘드니까 안쓰러워서 하는 말도 있었지만, 나무를 베고 길을 낸다고 구청으로 민원이 들어가고, 구청 입장에서도 신고가 들어오기에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했다. 이 말을 지나가다 들은 등산객 두 명이 흥분하며 끼었다.

“할아버지가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 누가 신고를 해? 이런 못된 사람이네”

할아버지를 잘 아냐고 묻자, 함봉산 등산객 중에 할아버지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했다.

“제가 몇 년간 몸이 안 좋아 산에 안 다니다가 산에 다시 오기 시작했는데, 길이 예쁘게 생긴 거예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어느 할아버지가 당신의 몸도 성치 않은데 둘레길을 만들었다고 해서 뭘 사드리고 싶었는데, 술과 담배를 전혀 안 하시더라고요”

십정동에 사는 이순녀씨는 작년 4월 비석을 세우는 기념식을 할 때 한 끼 식사라도 하시라고 소액을 건넸다고 덧붙였다. 또 그 때, 이 산을 자주 오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떡을 해 나눠먹기도 했단다. 이씨의 이야기는 더 이어졌다.

“십정동 주공 뜨란채에 사는 아줌마는 눈암(癌)으로 눈동자를 제거하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거부하고 산에만 열심히 다녔어요. 의사도 깜짝 놀랄 정도로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산의 공기가 얼마나 좋은데요. 어떤 아저씨는 한 발 디디려고 해도 벌벌 떨었는데 지금은 잘 다녀요. 이렇게 편안히 다닐 수 있는 건 둘레길 덕분이고, 할아버지 덕분이에요”

쓰레기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 함봉산을 청소하고 있는 김영환 할아버지.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네는 등산객들로 인해 인터뷰는 끊겼다 이어졌다를 반복했다. 어떤 중년 남자는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집 사정을 얘기하고 가기도 했다.

“저 이한테는 아들이 셋 있는데, 첫째가 사고로 키가 자라지 않아 작아. 보통은 오후에 오는데 오늘은 오전에 왔네”

몸이 성하면 산을 더 가꾸고 싶다는 김 할아버지. 마지막으로 함봉산을 찾아오는 등산객들에게 바라는 것을 여쭸다.

“한 가지밖에 없어.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자신들이 갖고 온 것을 먹고 여기에 아무렇게나 버리는 거야. 그게 나쁘지. 그 전에는 내가 재활용쓰레기 분리수거도 했는데, 이제는 몸이 아파 못해. 쓰레기가 있으면 속상해. 이러려면 뭐가 좋다고 산에 오는지 모르겠어. 쓰레기를 버리면 후손들한테 욕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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