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제보자

제보자|임순례 감독|2014년 개봉

 

영화 <제보자>는 드라마적 허구가 들어가 있긴 하지만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2005년 ‘줄기세포 논문 조작 논란’으로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황우석 스캔들’이 이 영화의 모티브다.

보통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극영화는 대략 두 가지의 길을 걷는다. 하나는 <명량>처럼 중심이 되는 실제 사건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 극적 재미와 감동을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가니>나 2주 후에 개봉할 <카트>처럼 장애아동 성폭력사건이나 비정규직 차별 문제와 같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사건을 극적 사건으로 구성함으로써 이 사회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보자>의 모티브가 되는 ‘황우석 스캔들’은 이미 사회적으로 ‘줄기세포 논문은 조작됐다’는 결론이 난 사건이다. 그렇다고 이 사건을 모티브로만 가져오고 다른 상상력을 채워 넣지도 않는다. 2005년 당시 있었던 사건을 재현하면서 엄청난 위험과 피해를 감수하고 진실을 제보했던 연구원과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구속까지 결심하는 방송국 프로듀서, 그리고 진실과 극렬히 대치했던 애국주의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보여줄 뿐이다. 그 방식은 진실 편에 선 이들이든 진심 편에 선 이들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한 편도 흔들리지 않고 우직하게 끝까지 달려가는, 우직함 그 자체다.

영화 <제보자>에서 사건 중심의 영화가 반드시 가져야할 미덕인 것처럼 여겨지는 반전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영화 줄거리를 다 이야기하면서도 스포일러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모두 다 아는 사건 그대로 결론이 나니까.

그렇다면 임순례 감독은 왜, 이미 결론이 나버린 사건을 극적 재미를 위한 어떤 장치도 배치하지 않은 채 10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 세상 사람들에게 극영화로 내놓은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영화가 2014년 가을, 한국 사회에 이 영화가 존재해야할 이유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종종 진실과 국익이, 상식과 진심이 부딪히며 갈등을 빚는다. 황우석 스캔들은 바로 그 갈등의 정점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미국보다 앞선 대한민국의 생명과학 기술’, ‘21세기 대한민국을 먹고살게 할 줄기세포 연구’라는 황우석 박사 쪽의 언설은 군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난치병으로 고통을 겪는 환자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까지 보태지면서 황우석 박사는 ‘국민 영웅’으로 우뚝 선다. 그 앞에서 별 다른 근거도 없는 논문에 대한 합리적 의심은 설 자리가 없다. 감히 ‘국익’ 앞에서, ‘죽어가는 환자’ 앞에서 의심이라니, 진실 규명이라니!

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 실의에 빠져버린 국민들이 가진 국가부흥에 대한 기대나 난치병 환자들의 기대는 분명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 진심을 의심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황우석 박사 쪽은 그 진심에 호소하며 거짓에 거짓을 보탰고 온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였고, 거의 모든 국민은 사기극이 점점 그 규모를 불리는 데 일조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2005년 황우석 스캔들을 겪은 이후로 내게는 습관이 생겼다. ‘국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앞뒤 맥락이 어떻든 그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 일단 의심한다. 그리고 감정적인 선동에는, 마음은 이미 움찔거리더라도 매우 의식적으로 합리적 판단을 하기 위한 여백을 갖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우리는, 또 언제 황우석 스캔들처럼 어이없는 스캔들을 만들지 모른다는 것을 뼈아프게 각성했기 때문이다. “국익이 우선이냐, 진실이 우선이냐?”는 윤민철 피디의 질문에, 국장은 “진실이 국익”이라는 ‘상식’적인 답변을 하지만,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 사회는 ‘덮어놓고 국익’이 ‘상식’일 때가 훨씬 더 많은 ‘비상식적’인 사회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어느 때보다도 비상식이 상식이 돼버린 2014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더욱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당신들이 마치 조건반사처럼 순응하는 ‘국익’과 ‘국격’, ‘나라 경기’ 따위의 언설이 과연 상식이냐고. 그것이 진실보다, 합리적 의심보다 더 중요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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