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死靈)들과 유가족 아픔 보듬고, ‘잊지 않겠습니다’ 다짐

 구보댄스컴퍼니의 무용. ‘우리들은 잘 있으니 걱정 마세요. 다만, 잊지 말아 주세요’
10월 10일 오후 5시 30분, 부평역 광장 쉼터공원에서 밥을 나눠주고 있다. 식판을 기다리는 행렬이 길다. 익숙한 풍경이 된지 오래다. 먹고 사는 게 힘든 시기가 지속되고 있다.

광장 한쪽에선 행사 무대를 준비하는 이들이 분주하다. 대부분 아는 얼굴이다. 조각가이자 행위예술가인 신종택, 살풀이춤의 유주희, 구보댄스컴퍼니의 장구보 대표와 단원들, 성악가이자 6.4 지방선거에서 부평구의회 의원이 된 오흥수, 부평구축제위원회 기획단장을 했던 곽경전, 풍물패 더늠의 이찬영 대표와 단원들….

이들이 모인 이유는 무대 위에 걸린 펼침막에 나타나 있다.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Yellow performance 인천 문화예술인 참여 행사’. 무대 뒤로는 사람 모양인지, 귀신 모양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조형물 10개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행사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아직도 차가운 바다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열 명의 사령(=죽은 자의 영혼)이라고 했다.

한쪽에서 행위예술을 위해 얼굴에 분장을 하고 있는 신종택씨에게 행사 취지를 물었다. 그가 이 행사 제안자라는 말을 들은 뒤였다.

“왜 사고가 발생했는지, 수습과정이 왜 그랬는지, 제대로 밝혀진 게 없지 않나.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 제정도 안 되고.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영혼과 유가족의 아픔을 보듬어주려 하는 것이다. 정치이념을 떠나 예술가는 시대상황을 반영한 예술행위를 해야 하지 않나. 인천의 예술가 한 명 한 명을 만나 이야기하다보니 같은 생각이었다. 인천의 예술가들이니 인천에서 하자고 했다”

무대 가장자리를 빙 둘러 촛불이 켜지고, 행사는 시작됐다. 끼니를 때운 이들이 썰물처럼 사라진 광장은 휑했다. 광장 서너 곳에 있는 벤치에 앉은 사람들, 뭘 하는지 보려고 무대 앞으로 발길을 옮긴 10여명이 고작이었다. 행사를 준비한 이들은, 관객이 많든 적든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였다.

 첫 마당을 여는 풍물패 더늠.
사회자 곽경전씨가 행사 시작을 알렸고, 풍물패 더늠이 첫 마당을 열었다. 이어서 성악가 유영미씨와 오흥수씨의 노래가 이어졌다. 유씨는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과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를, 오씨는 ‘사공의 노래’와 ‘한계령’을 불렀다.

오씨는 행사 시작 전 인터뷰에서 “예전엔 성악가였지만 지금은 의원이다. 성악가로 무대에 서는 게 부담은 컸지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자는 취지가 좋아 함께했다”고 했다. 오 의원의 출연을 미리 알았던지, 행사장에서 동료의원인 유용균ㆍ이도재ㆍ이소헌 의원도 볼 수 있었다.

 성악가 유영미씨.
 성악가이자 부평구의회 의원인 오흥수씨.
유주희씨가 춤으로 다음 무대를 이어 받았다. 유씨는 ‘달빛 그림자’라는 제목의 춤으로 고인들을 위로했다. 이어서 구보댄스컴퍼니 단원들의 집단 몸짓. ‘우리들은 잘 있으니 걱정 마세요. 다만, 잊지 말아 주세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학생들이 살아 있는 가족에게, 우리에게 보내는 이야기를 몸짓으로 형상화했다.

 유주희씨의 ‘달빛 그림자’.
몸짓 도중에 검정색 옷에, 검정색 복면을 쓴 이가 등장했다. 복면 속 눈매가 무섭다. 신종택씨다. 그는 딸을 찾는 아비처럼 무용수들을 휘젓고 다녔다. 그리고 함께 쓰러져 신음했다. 그런 그를 딸들이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자식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무시무시한 칼로 자해했다. 목숨을 끊으려도 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 딸을 부여안고 소리 없이 통곡한다. 그리고 딸을 노란 배에 태워 보낸다. 이어서 유주희씨가 다시 등장해 살풀이춤으로 고인들의 넋을 위로했다.

 조각가이자 행위예술가인 신종택씨의 퍼포먼스.
 유주희씨의 살풀이춤.
마지막은, 부광고등학고 국어교사이자 시인인 신현수 (사)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이 무대에 올라 시를 낭송했다. 제목은 ‘아, 팽목항에서’. 지난 8월 1일 서울시청 앞 대한문 앞에서 떠나는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팽목항을 다녀온 뒤 쓴 시다.

‘지금은 그만 둘 시간이 아니라 / 끝까지 기다리겠다고 다짐할 시간 / 지금은 그만 둘 시간이 아니라 /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다짐할 시간’

세월고 사고가 발생한 지 6개월이 돼가는 지금, 산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시를 낭송하는 신현수씨.

 
사회를 본 곽경전씨.
한편, 이날 행사 기획을 위해 최명우, 차성수, 임승관, 이혜정, 김원범씨가 함께 했다. 무대 음향과 조명은 ‘빛과 소리’가 협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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