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주목받는 노인복지관 모델 - 광주 광산구 ‘더불어樂(락)’ ③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편집자 주> 베이비부머 세대의 ‘인생 이모작’ 지원 정책에 관한 기획취재를 위해 지난 6월 19일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더불어樂(락)’ 노인복지관을 방문했다.

신선아(45) 부평재가노인지원서비스센터 원장에게서 ‘더불어락’이 노인복지관 운영의 새 모델로 전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였다. ‘더불어락’의 ‘인생 이모작’ 지원 사업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였고, 그 내용은 앞서 마무리한 ‘기획취재’ 보도에서 다뤘다.

여기서는 ‘더불어락’이 어떤 운영 내용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지를 전하고자 한다. 이번이 마지막 연재이다.

물으면 이야기하고, 말하면 책임지려한다

▲ ‘더불어락’ 노인복지관 외벽에 내건 베르나르 베르나르의 명언이 인상적이다.

‘더불어樂(락)’ 노인복지관(관장 강위원)이 복지관 문화 바꾸기에 이어 시도한 것은 복지관 운영에 노인들을 직접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복지관 회원인 노인들이 복지관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

“연령이 20~30대인 사회복지사들이 프로그램을 짜면 거기에 어르신들이 참여하는 식이었죠. 직원들보다 인생 경험이 많고, 지식도 많은 분들이 늘 대상자이고 수혜자였던 거죠. 지금 복지프로그램이 다 그래요. 이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어요.

복지관 외벽에 ‘어르신 한 분을 잃는 것은 큰 도서관을 잃는 것과 같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는데,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어르신들을 복지서비스 대상자로 취급하는 순간 어르신들은 악쓰고 떼쓰는 존재예요. 반면에 어르신들을 마을의 원로로, 인생의 인간문화재로 예우하는 순간, 어르신들은 당신의 것을 내놓고 협동하고 나눠요. 처음에 이 얘기를 하면서 강 관장님이 만날 직원들을 야단쳤어요.

‘도대체 당신들이 무엇을 아느냐, 어르신들한테 물어보라. 어른들에게 맞지도 않은 거 다 짜놓고 참여하라고 하냐. 미장일을 해도 삼사십년을 하고, 농사를 지어도 사오십년, 교사를 해도 삼사십년 하신 분들이다.

전문가 수준을 넘어 인간문화재급 분들인데 왜 이분들을 그렇게 취급하느냐’ 직원들이 처음엔 어려워했는데 그렇게 하니까, 어르신들한테 이게 놀라운 거예요. 물으니까,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한 거죠. 나아가 이야기를 하시니까 책임 지려하시고,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시더라고요”

김광란 전 사무국장이 들려준 이야기다.

정월대보름 행사 계기로 ‘복지관 자치회’ 발족

노인들이 복지관 운영에 참여한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2월 정월대보름 때 만들어졌다. 이 복지관에서는 그동안 정월대보름 행사를 해본 적이 없었다. 복지관 직원들이 노인들한테 지나가는 얘기로 “다른 데는 정월대보름 윷놀이대회도 하고 그러는데, 우리도 윷놀이대회 합시다” 하고 던졌다.

“그랴. 그거 재밌겄네. 토종 민속놀이대회 한번 하지” 노인들의 반응이었다.
그런데 복지관에 정월대보름 행사 예산이 짜여있지 않았다. 그 사정을 노인들에게 이야기했다.
“아닝께 걱정하지 마” 돌아온 답이었다.

“옛날에는 정월대보름 때 대동회라고 모여서 대소사를 논하고 그랬는데, 그런 것도 좀 해보세. 고사 상도 있어야 하고, 축문도 읽고 풍년 기원도 해야제”

노인들 사이에 행사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행사 준비는 일사천리였다.
“어이 아무개 계장, 우리 복지관에서 윷놀이대회 하는데 옛날에 쓰던 멍석이랑 윷 있제?”

노인들은 투호, 제기 등 행사 때 쓸 것들을 모두 구해왔다. 만장의 글은 서예반 노인들의 몫이었다. 만장을 메달 대나무를 구하는 것도 손쉬웠다. “어이, 김 선생 가세. 우리 집 뒷산에 대나무가 많잖아”

축문과 고사 상 차릴 물품은 물론 갓과 한복도 어디에서인지 가져왔다. 노인들이 반별로 돈을 모아 돼지 몇 마리를 잡기도 했다.

이 모두 복지관 직원들에겐 놀라운 경험이었다. 북카페 건립과 협동조합 설립 등 여러 과정을 거친 저력이 정월대보름 대동회 행사에서 꽃 피기 시작한 것이다.

복지관 직원들은 이 모습을 본 후 복지관 운영도 노인들과 같이 해야겠다고 맘먹었다. 그건 ‘더불어락 자치회’로 결실을 맺는다.

“그 전에는 복지관 프로그램별로 ‘실장’이 있었어요. 직원들이 무엇을 결정해 실장들에게 전달하면, 이 실장들이 심부름하고 강사를 보조하는 역할을 했어요. 그걸 넘어서서 어르신들끼리 프로그램을 짜서 서로 조율하고, 식당의 식단표를 어떻게 개선할 건지, 행사가 있으면 어떻게 할 건지 논의해 결정해야하는데, 그동안은 이 공간의 주인인 어르신들을 배제한 거죠”

더불어락 자치회는 지난해 출범했다. 자치회 구성원의 임기는 2년이다. 자치회는 복지관 운영과 관련한 모든 일에 관여한다.

‘만민공동회’로 직접민주주의와 자치 실현

▲ 노인들이 대동회를 시작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올해 정월대보름 때는 새로운 행사를 추가했다. 바로 ‘만민공동회’이다. 만민공동회는 1898년 3월부터 지속된 서울의 시민, 소상인, 일부 지식인층이 주도한 제국주의 침략 반대운동에서 유래한다. 각자의 정치적 소견을 자유롭게 발표하는 집회를 생각하면 된다.

“직접민주주의를 우리 안에서부터 해보는 것이죠. 앞서 말했지만, ‘발언하면 참여하고, 참여하면 책임지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는 협력과 연대로 이어져요. 자치회도 직접민주주의가 아닌 대의민주주의입니다. 만민공동회는 복지관 어르신 전체가 직접민주주의로 의사를 결정하는 구조로 발전한 것이죠”

그동안 복지관 운영과 관련해 여러 민원과 의견이 있었다. ‘프로그램실이 너무 더러우니 직원들이 청소해 달라 - 몸이 멀쩡한데 왜 직원들을 시키느냐. 우리가 하자’ ‘주차장이 너무 좁으니 늘려 달라 - 차를 안 가지고 오면 된다’ ‘옥상 태양열로 온수를 쓸 수 있어야 하는데, 겨울에 왜 찬물만 나오느냐. 고치든지 없애자’ 직원들이 모아보니 삼십 가지가 넘었다.

주요 민원을 만민공동회 안건으로 상정했고, 찬반 의사 표시를 하게 했다. 찬반이 팽팽하면 다시 토론한 후 찬반에 부쳤다. 주차장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예로 보자.

“이렇게 대동회를 하고 차 없이 노니 얼마나 좋소. 차 없는 날, 그런 거 만듭시다”
“다리 아프고, 멀리서 오는 사람도 있잖소. 차 없는 날을 만들면 쓰겄나? 그것도 자유인디”
찬성은 초록, 반대는 주황색 판을 들라고 했는데, 팽팽했다. 의견을 더 들었다.

‘한 달에 한 번 차 없는 날을 정하고, 다리가 불편한 사람은 예외로 해 주차면 몇 개만을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다시 찬반을 가리니 초록색 판이 ‘6대 4’ 정도로 많았다. 찬반을 숫자로 세지 않는 게 원칙이다. 눈으로 무슨 색이 더 많은가를 본다. ‘찬성이 몇 명이고, 반대가 몇 명이네. 반대도 적지 않은 수이네’와 같은 뒷말이 나오는 걸 방지하자는 뜻이 깔려있다.

“이런 문제를 자치회 임원들끼리 결정했으면, 어르신들 사이에서 얼마나 말이 많았겠어요. 반발도 심할 거예요.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결정하니 말이 없는 거죠. 이게 직접민주주의의 위력입니다”

더불어락의 이러한 모습은 광주지역 초등학교 4학년 사회과 지역화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아이들한테 직접민주주의 사례로 소개한 것이다.

노인복지관을 ‘마을공동체와 만나는 다리’로

더불어락은, 노인복지관이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보여준다. 강위원 관장은, 보편적 노인복지는 물론 국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노인들을 위한 복지전달체계를 좀 더 강화하는 것이 근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지사각지대가 없어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마을공동체를 강화해 마을주민들이 서로 살피고 관계망을 형성해야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습니다. 수급자는 아닌데 아들도 며느리도 거들떠보지 않는 빈곤노인들이 있습니다. 이럴 땐 마을에서 돌봄이 가능해요. 마을공동체를 살리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 한 복지는 이뤄질 수 없는 거고, 복지사각지대는 사라질 수 없어요.

그래서 복지의 완성은 마을공동체의 완성에 있다고 보는 거죠. 그것에 노인복지관이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생각해야합니다. 마을의 어르신들, 경로당의 어르신들을 복지 대상자로 취급할 것이냐, 원로로 예우할 것이냐, 철학의 문제가 되는 것이죠. 둘째는 노인복지관이라고 하는 공공건물을 어르신들이 소유할 것이냐, 마을과 공유할 거냐의 문제입니다.

요즘 공유경제가 유행하잖아요. 노인복지관을 공유하기 위해 야간에도, 주말에도 문을 엽니다. 야간에는 주부들이 와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어요. 그러면 야간에 이 공간을 관리하는 노인일자리를 만드는 거죠. 계속해 건물을 지을 게 아니라, 있는 건물을 개방해 다양한 세대가 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더불어락의 이러한 변화는 지역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을까? 김광란 전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주 단순한 건데, 지역주민들이 노인세대를 거추장스러워했어요. 그런데 노인복지관 어르신들의 변화를 보면서, 인식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둘째는 주민들이 저녁에 와서 도서관을 이용하고 야간에 강의실에서 강좌도 하니까, 이런 공공건물이 많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르신들의 문화가 바뀐 데는 여기에 젊은 세대가 들어오면서 가능해진 거예요. 어른들끼리만 있으면 덜 바뀌었겠죠. 장애인과 비장애인, 남녀노소가 자꾸 만나고 부딪혀야 소통이 되는 거고, 그렇게 사는 거거든요. 근데 우리는 그동안 노인복지관에 노인들 가두고, 장애인복지관에 장애인 가두고, 청소년회관에 청소년을 가두는 복지를 한 거예요.

물론 장애인복지관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특수교육 같은 게 필요하겠지만, 장애인이 비장애인하고 마을에서 살아야 진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 거죠. 가둬놓으니까 노인들끼리 악쓰고 떼쓰고 싸우는 거죠.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여기가 나와서 요즘 아이들이 현장체험을 하러 왔어요.

처음에는 어르신들이 막 얘기해요. 그런데 첫날 얘기할 때랑 둘째 날 얘기할 때랑 달라요. 아이들하고 어떤 언어로 소통해야하구나, 감을 잡아가는 거죠. 어르신들은 도서관 하면, 조용해야한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과거에 그랬으니까. 그런데 작은도서관 운동하는 분들하고 교류하면서 작은도서관은 사랑방과 같은 것이구나, 이야기도 하고, 책도 읽고 놀고 하는구나를 인식하죠. 그게 참 좋더라고 고백하세요”

새로운 시도, ‘노인유니온’ 결성 추진

▲ 대동회에 상정된 안건에 대해 찬반 의사를 표하고 있다.

강위원 관장은 ‘문화의 변화에 상당한 충격을 느꼈을 텐데, 그것을 견뎌내며 기관 운영 주체들의 철학에 신뢰를 보내준 노인들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노인들의 이러한 신뢰와 참여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강 관장의 다음 말에서 엿볼 수 있다.

“어르신들이 노후를 어떻게 살아야 존엄해질 수 있는가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지금의 복지는 공짜 탐욕을 채우는 도구로 전락했다고 생각했거든요. 노인들이 서로 감사하고 배려하고 존중해야 존엄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기존 복지관 같은 사회복지시설을 외딴 곳에 떨어져 있는 ‘복지의 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건물을 지어놓고 주민을 채우는 복지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것이죠. 복지관이 마을과 함께 해야 해요. 그래야 복지관을 이용하는 노인들이 지역주민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서로 돌보고 나누는 속에서 자연스레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거죠”

복지관 건물 계단에 ‘쉼 의자’를 놓은 것이나 식당에 ‘음식을 남기면 벌금 1000원’이라는 경고문을 떼고 추가 음식을 차려놓게 한 것은 강 관장의 노인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일례이다. 손자 손녀 이름으로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월정액을 기부하게 한 것은 노인들이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면서 느낄 수 있는 상실감과 무력감이 아닌, 성취감과 자아존중감을 주기 위해서다.

더불어락 노인복지관은 한발 더 나아가 ‘노인유니온’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노인 일자리 같은 문제를 누가 해결해주나요. 청년들이, 40~50대들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어르신들 스스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작년 말에 노인유니온 준비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은퇴를 앞둔, 인생이모작을 고민하는 분들까지 포괄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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