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틈새여행 함께 가는 틈새여행 ④

▲ 계양산 정상은 사방이 탁트여 시원함을 선사한다


부평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가장 자주 찾는 산. 바로 인천을 대표하는 진산(鎭山)인 계양산이다.

해발 395미터로 강화도를 제외한 인천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인 계양산에 얽혀 전해오는 이야기는 많다. 계양산 밑에서 서구로 넘어가는 길을 ‘징맹이 고개’라 하는데 고려 말 충렬왕이 매사냥을 즐겨하고 이곳에 매방을 설치해 좋은 매를 징매하였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져 온다. 계양산 밑자락인 이 고개는 벽초 홍명희 선생의 소설 ‘임꺽정’의 활동무대이기도 하다. 이 고개는 길고도 높아 옛날 도둑들이 진을 치고 지나가는 행인들의 금품을 빼앗고 심지어 사람을 죽인다하여 고개를 안전하게 넘으려면 천명은 모여서 간다고 해서 ‘천명고개’라고 불린다는 과장 섞인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이 징맹이 고개를 지나자마자 오른쪽 능선을 타면 옛 부평읍민들이 만들었다는 중심성을 지나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또한 징맹이 고개에서 계양구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지선사가 있는데 여기에는 잘 꾸며진 산림욕장이 있다. 자연생태관찰로 주변으로 소나무림, 물푸레나무림, 때죽나무림, 참나무림 등 편안하게 이것저것 볼 것이 많다.

계양산 공원관리사무소와 연무정에서 오르는 산길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다보니 늘 복잡해 가끔은 조용한 산행을 좋아 하는 사람들에게 무리가 있다. 
여러 산길 중 그래도 사람들이 한적하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이 방축동 한양아파트 방향에서 오르는 길이다. 산허리를 가로질러 이어지는 완만한 산길은 총총히 걸으며 가을 산을 느끼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이 길을 걷다보면 무당골 약수터가 나오고 이어 거량재 고개와 헬기장을 지나 정상에 이르는 코스이다. 그러나 곧바로 정상에 오르기 전에 거량재 고개에서 아래로 내려와 북부능선 사거리를 지나 내려오면 목상동 솔밭이 나온다. 이곳은 계양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는 길이다. 목상동 솔밭은 이름 그대로 길게 자란 소나무에 둘러 쌓여 산림욕을 할 수 있는 곳이며 등산객들이 오손도손 솔밭아래서 모여 산행길에 지친 몸도 쉬어가며 달콤한 휴식과 담소를 나누기에는 적격인 장소이다.

왔던 길을 다시 찾아 오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일품이다. 서(西)로는 신공항도로와 강화도, 동(東)으로는 노랗게 익어가는 김포벌판과 한강을, 북(北)으로는 고양, 일산까지 멀리 내다 볼 수 있어 등산의 기분을 한껏 느낄 수 있다.


▲ 산행길의 쉼터 목상동 솔밭

산을 내려올 때는 잘 닦여진 길인 하느재(쉼터)로 내려와 일단 육각정에서 잠시 머물러 본다. 육각정 옆에는 산성의 오래된 벽을 조금이라도 숲속을 찾아 아래로 내려가 보면 숨겨진  계양산성을 찾아볼 수 있다.

계양산성은 삼국시대 때 백제가 고구려를 막기 위해 산성을 쌓았던 곳이다. 산성 길이가 1천180m라고 하나 육각정 아래 일부를 제외하곤 거의 다 훼손됐다. 그러나 이 산성 주변에서 옛 사람들이 사용하던 기와, 집수정(저수조) 토기, 동문, 병영터 등이 발견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오래된 역사와 아기자기한 오솔길이 있는 계양산. 바쁜 일상과 각박한 도시에 지친 사람들을 가까이서 품어주는 넉넉한 우리들의 산이다.

/도움말·한세도 나들이 칼럼리스트

교통편 안내

●인천시내 ↔ 연무정(경인여대)
●지하철 계산역에서 17번, 부평역에서 23번 시내버스 이용 경인여대나 연무정 하차
●방축동 한성아파트 코스: 임학역에서 하차해 20분 도보

 


! 주변에 같이 둘러볼 곳


부평도호부청사

    
원래의 도호부청사는 재북부2리(계산동 898번지)였으며 현재는 계산동 943번지 부평초등학교 내에 옛 청사건물이 변형은 되었으나 일부가 남아 있다. 이곳에는 계산동은행나무(시지정기념물 11호), 욕은지(시지정 문화재자료 1호), 어사대(시지정문화재자료 제3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부평도호부청사는 숙종 3년(1677)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세워진 내력을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고려시대 의종 4년(1150)에 안남도호부로, 고종2년(1215)에 계양도호부로 조선시대 태종 13년(1413)에 부평부가 부평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청사 옆에 보호되고 있으며 이때 풍치목으로 심어진 듯한 은행나무의 수령이 약 600여년쯤 된다.

기록에 의하면 객사, 동·서헌, 삼문, 근민당, 좌·우익랑, 동·서책방, 사령청, 향청, 포도청, 훈무당, 부창 등 총 23동 23칸으로 당시에는 웅장한 규모였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내아만 남아 있다. 원래는 ‘ㄱ’자 건물이였으나 1968년 현 위치로 이동하면서 ‘ㅡ’자건물로 바뀌어 정면 6칸 측면 2칸의 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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