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주목받는 노인복지관 모델 - 광주 광산구 ‘더불어樂(락)’ ② 달라고 떼쓰는 문화에서 베푸는 문화로

<편집자 주> 베이비부머 세대의 ‘인생 이모작’ 지원 정책에 관한 기획취재를 위해 지난 6월 19일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더불어樂(락)’ 노인복지관을 방문했다.

신선아(45) 부평재가노인지원서비스센터 원장에게서 ‘더불어락’이 노인복지관 운영의 새 모델로 전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였다. ‘더불어락’의 ‘인생 이모작’ 지원 사업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였고, 그 내용은 앞서 마무리한 ‘기획취재’ 보도에서 다뤘다.

여기서는 ‘더불어락’이 어떤 운영 내용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지를 전하고자 한다. 세 차례 정도 연재할 예정이다.

>>노인들의 호주머니 털기 작전 1
도서관‧북카페 건립기금을 마련하라

 

‘더불어락’ 노인복지관(관장 강위원)이 복지관 문화 바꾸기에 이어 시도한 건 복지관 공간의 쓰임새 바꾸기다. 여기엔 일명 ‘노인들의 호주머니 털기’ 작전이 수행됐다.

복지관 1층은 공간 세 개로 나뉘어있었다. 관에서 추진하는 ‘시장형 일자리 사업’의 하나인 두부공장 사업이 중지돼 두부 제조기계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 건강관리실, 남성노인들이 모여 티브이(TV)를 보는 공간. 이 공간들의 용도를 바꾸기로 했다. 방향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이었다.

복지관은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오후 6시에 닫았다. 강위원 관장은 오후 6시 이후나 주말에 복지관 앞 근린공원에 산책이나 운동을 나오는 주민이 많은데, 그 때 주민들이 복지관 공간 일부를 사용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도서관과 카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지난 호에서 언급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복지관의 동적인 프로그램과 정적인 프로그램의 결합을 위해서도 도서관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강 관장은 이를 노인들에게 제안했다. 노인들은 시큰둥했다. ‘눈도 침침한데 뭔 도서관이냐. 필요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반면, 지난 호에서 소개한 ‘인사하기 운동’에서 보았듯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노인들도 있었다. ‘그렇잖아도 문학동아리 같은 걸 만들고 싶었는데, 도서관이 생기면 좋겠다’.

강 관장은 이런 노인들을 중심으로 도서관과 북카페 건립추진위원회(이하 건립추진위)를 꾸렸다. 건립추진위를 구성한 것은, 이 일에 노인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건립비용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과제였는데, ‘광산구와 광주시에 지어달라고 하면 되지’라는 게 노인들의 생각이었다.

강 관장은 노인들을 설득했다. “전국의 수많은 복지관에서 돈 달라고 손을 내미는데, 이 공간만큼은 어르신들이 십시일반해서 만듭시다. 어르신들이 종자돈을 모아주시면 제가 직원들하고 지역주민들하고 힘을 합해 나머지를 보태겠습니다”

노인들의 지혜, 소수 아닌 전체의 공간으로

▲ 더불어락 노인복지관 1층 도서관 한쪽 벽에는 도서관 건립에 힘을 보탠 이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이를 동의한 건립추진위는 공사비 견적을 뽑았다. 1억 2000만원. 예상보다 많은 금액이었다. ‘그 어르신한테 맡기면 중간 마진 2000만~3000만원은 아끼지 않겠어?’ 건립추진위원들은 복지관 회원 중 건축업자 출신 노인에게 견적을 맡겨보자고 했다. ‘7000만원 정도면 가능하다’는 견적이 나왔다. 건립추진위는 2012년 5월 11일 발족식 개최를 시작으로 모금운동에 나섰다.

복지관 직원들은 나름 계산하고 있는 게 있었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광산구의회 의원으로 당선된 김광란 전 노인복지관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노인복지관 회원 중 연금으로 월 300만원 정도를 받으면서 고급 승용차 타고 다니거나, 건물을 가지고 있는 어르신이 꽤 있다. 도서관과 북카페를 짓기 위해 모금운동을 한다고 하니, 어르신들 사이에서 누구는 500만원 내놓는다, 또 누구는 얼마 낸다고 하더라는 말이 떠돌았다. 복지관 직원들은 목돈을 낼 어르신 명단을 짰다. 그렇게 4000만원 정도를 모으고, 나머지는 개미군단이 십시일반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건립추진위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위원들은 회의를 열어 두 가지 원칙을 정했다. 하나는 현관 로비 칠판에 오늘 몇 명이 모금운동에 참여했고, 모금 총액이 얼마인지만 공개한다. 단, 누가 얼마를 냈는지는 밝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기부금 상한선을 30만원으로 한다는 것.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복지관 직원들은 ‘하늘이 노래졌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건립비용을 마련할 수 있을까, 걱정됐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원칙’엔 노인들의 놀라운 지혜가 담겨 있었다.

‘누구는 500만원 낸다 하고, 누구는 1000만원 낸다 하는데, 그러면 그 사람들만의 도서관이 될 것이다. 아무리 쉬쉬해도 누가 냈는지, 소문이 나기 마련이다. 모든 이의 도서관이 되려면 적절한 상한선을 둬야한다’는 것이 건립추진위원들의 뜻이었다.

이는 놀라운 반응을 일으켰다. 건립기금으로 1만원을 내도 부끄럽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완공한 다음에 옳은 방법이었음이 증명됐다. ‘나 여기 1만원 냈어’ ‘나는 돈은 못 냈지만, 여기 쓰레기 치웠어’…, 모두 참여해 만든 공간, 모든 이의 공간이 된 것이다.

기공일 2011년 6월 10일, 개관일 2012년 4월 20일. 건립공사는 거의 1년이 걸렸다. 길어야 한 달이면 끝낼 공사가 1년이나 걸린 것이다. 건립기금이 어느 정도 모이면 공사하고, 쉬었다 기금이 모이면 다시 공사하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노인들과 직원들은 공사 중간 중간에 아이디어와 노동을 보탰다.

예를 들어, 카페 하수구를 놓는 일은 소방 설비를 했던 노인이 직접 하고, 야외 테라스 의자와 테이블은 직원들이 목공을 배워 만들었다. 도서관 테이블과 의자는 지역의 가구회사에 맡겼는데, 성탄절 전날 직원들이 직접 조립해 인건비를 아꼈다. 덕분에 비용은 7000만원에서 4900만원으로 줄었다. ‘노인들의 호주머니 털기’ 작전이 노인들의 마음마저 이끌어내면서 기분좋은 성과를 낸 것이다.

공사 과정에 강 관장과 관련한 투서가 구에 들어가기도 했다. ‘북카페 건립기금을 내는 사람한테만 내년에 일자리를 준다더라’ 등의 얘기였다. 투서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훤히 아는 건립추진위 대표단이 이를 모두 해명하고 정리해줬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유명한 일화 하나가 생겼다. 한 5년 동안 앙숙으로 지내던 두 노인이 복지관 앞 근린공원에 있는 등나무 아래서 화해한 것이다.

>>노인들의 호주머니 털기 작전 2
손자손녀 이름으로 아프리카 아동 돕기 기부

▲ 식당에 게시돼있는 아프리카 아동 돕기 기부자 명단.

노인들의 호주머니 털기 작전은 다른 사업에서도 시도됐다. 노인일자리 사업은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민원이 많다. 한 달에 20만원을 받는 노인일자리 사업에는 기초생활수급자는 참여하지 않는다. 대부분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들이기에, 부유하진 않지만 최저 빈곤층은 아니다. 교육형 일자리에는 공무원연금 수급자도 참여한다.

복지관에서는 일자리 참여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한다. 그 때 강 관장이 노인들에게 제안한 게 있다. 제안 방식은 이랬다.

“어르신은 월 20만원 받으면 어디에 쓰세요?”
“용돈도 하고 공과금도 내고, 가끔 손자손녀 만나면 용돈도 주지”
“손자손녀에게 용돈을 얼마나 주세요?”
“요즘엔 1만원 갖고 안 돼. 2만~3만원 주고, 어떨 땐 5만원도 줘야해. 그래야 좋아하지”
“용돈으로 5만원을 준다 한들,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나면 손자손녀가 기억할까요? 어르신이 돌아가셔도 손자손녀한테 영원히 기억되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그리고 영상을 하나 보여줬다. 바로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이 아이들은 5000원이면 한 달을 먹고 살 수 있대요. 어르신들이 일자리에 참여하는 기간에만 한 달에 5000원씩 저 아이들을 위해 기부해주세요. 단, 손자손녀 이름으로요. 손자손녀 이름으로 된 기부카드를 만들어드릴 테니 용돈을 좀 줄이고 이 기부카드를 선물하세요. 그리고 ‘얘야, 할아버지가 한 달에 일한 대가로 20만원을 받는다. 그 중에 5000원을 네 이름으로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기부하기로 했다. 너는 2만 원짜리 피자 한 판 사달라고 떼쓰지만, 저 아이들은 5000원이 없어서 굶어 죽어간다. 이 기부카드를 용돈 대신 주는 거니까, 간직하고 있다가 성인이 돼 돈을 벌면 5000원을 더 보태 1만원씩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는 사람이 되어라’ 하고 일러주세요”

제안은 했지만, 사실 기대하지는 않았다. 어르신들에게 5000원은 적은 돈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밖이었다.

첫해인 2011년 67명, 2012년 80여명, 그리고 지난해엔 100명이 넘게 동참했다. 올해도 6월 현재 8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월 5000원 기부는, 기부로 끝나지 않았다. 노인일자리 문화를 바꿨다.

김광란 전 사무국장은 “기부에 동참한 어르신들은 가장 먼저 일을 시작하고 성실하게 참여해요. 무엇보다 기쁘게 일하셔요. 가끔은 사탕 한 봉지 사서 동료들과 복지관 직원들에게 나눠줘요. 그렇게 1년 하고 나니까 노인일자리 사업과 관련한 민원도 없어졌어요”라고 말했다.

복지관 1층 식당 한쪽 벽에 기부 참여자들을 알리는 카드를 붙여 놨다.
“많이 가져서 나누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1%를 나누는 실천, 이것이 바로 십시일반이죠. 어르신들은 개별로는 나누는 문화가 몸에 배 있는 분들인데, 기부문화로는 전혀 나눔을 해본 경험이 없는 세대에요. 친한 사람하고는 김치와 쌀 등을 나누는데, 그 관계를 벗어난 사회적 공익활동에, 공익적 가치에 기부한 경험은 거의 없는 세대이죠. 그래서 추석이나 설 명절 때 현관 로비에 항아리를 놔두고 쌀을 모으기도 했어요. 그것으로 떡을 해 복지관이나 경로당에 나오지 못하는 어르신들 댁에 방문해 나눔도 했죠. 이런 걸 경험하면서 어르신들이 기부와 나눔 문화를 자신들의 문화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거예요. 복지관에서 어느 날부터 큰소리도, 다툼도 없어지고, 가끔 누가 다퉈도 ‘여기는 그런 곳이 아니네’ 하고 개입하는 것이 가능해진 거죠”

이렇게 두 번째 ‘노인들의 호주머니 털기 작전’도 성공했다.

전라도 1호 협동조합을 만들다

▲ 북카페에는 젊은이들도 찾아온다.

복지관 직원들이 보기에, 다수 노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일자리였다. 은퇴는 경제적 개념을 떠나 관계의 단절 등, 그 이상의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노인들은 늘 ‘일자리를 늘려 달라, 많았으면 좋겠다’고 요구한다. 하지만 정부 지원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강 관장은 노인들에게 제안했다. “우리가 직접 일자리를 만듭시다. 회사를 하나 차립시다. 뭘 할 수 있을까요”

노인들은 두부 만드는 기계가 놀고 있으니, 두부공장을 하자고 했다. 복지관 근처 전통시장(=월곡시장)에 빈 점포가 많은데 분식집이 없으니, 그걸 해보자고도 했다. 그 때가 2011년 여름이었다.

뜻있는 노인 20명이 100만원씩 출자해 ‘더불어락’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당시는 ‘협동조합 기본법’이 제정되기 전이라 협동조합은 아니었지만, 협동조합 개념으로 시작했다.

이 사업에서도 노인들은 지혜를 발휘했다. 노인들은 거의 날마다 모여 회의를 하고 돌아다니며 시장을 조사했다. 그 결과로 전통시장에 어울리게 팥죽과 국수를 파는 가게(밥상마실)를 내기로 했다. 복지관 직원들은 ‘웰빙시대’를 감안해 고가이지만 국산 밀과 팥, 찹쌀을 써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인들의 의견은 달랐다.

“그거는 위치가 좋을 때나 먹히제. 여기 시장은 안 믹혀. 아무리 몸에 좋다고 혀도 누가 후질구레한 시장에 와서 그걸 먹나? 망하는 지름길이제. 시장통에선 싸고 맛있는 전략으로 가야지. 웰빙이면 더없이 좋겠지만 재료가 너무 비씨니 수입 밀가루와 팥을 써. 대신 찹쌀은 국내산 쓰고. 여기 찹쌀 농가도 많은디, 직접 사다가”

그렇게 해서 팥 칼국수는 2800원, 새알 팥죽은 3500원에 팔기로 하고 장사를 시작했다. 두부공장에서는 국산 콩 두부와 수입 콩 두부, 두 가지를 만들었다. 국산 콩 두부만으로는 회사가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산 두부는 개인 집, 수입 두부는 식당 등에 팔았다.

2011년 말에 ‘협동조합 기본법’이 제정된 직후 회사 형태를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전라도 1호 협동조합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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