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황태철 록밴드 ‘Never run’ 리더

깜짝 놀랐다. 몇 년 전 만났을 때의 곱슬곱슬하고 긴 머리카락을 예상하며 기다렸는데, 짧은 머리카락으로 나타난 모습에 적응하는 데 몇 분이 걸렸다. 록밴드 ‘Never run(네버 런)’의 리더이자 베이스를 담당하는 황태철(41ㆍ사진)씨를 남동구의 한 커피숍에서 지난 14일 만났다.

요즘은 조용한 게 좋아

▲ 황태철 록밴드 ‘Never run’ 리더
“요즘은 노래방에 공급하는 음원 작업을 해요. 음원을 미디(MIDI)로 노래방 반주로 만드는 일이죠. 제가 음악 했던 거에 10% 정도 활용하고 있을까, 싶네요. 음악 하던 사람이 이 계통에서 일하기는 쉽지 않은데 그나마 운이 좋았죠. 그런데 음악을 일로 하니까 재미가 없어요. 이 일을 시작한 지는 2년 조금 안 된 거 같아요”

미디(MIDI)란 ‘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의 약어다. 컴퓨터와 악기, 신시사이저 등을 서로 연결해 디지털 사운드를 만들고 합성해 만든 정보를 저장하는 파일을 의미한다. 미디 파일들은 디지털 음악과 같이 음표, 박자, 기악 편성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 게임 사운드트랙과 스튜디오 녹음 등에 쓰인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전화국에 소속돼 조끼 입고 현장에서 땀 흘리며 일했는데 그때는 오히려 음악이 고팠어요. 일이 끝나면 밴드 연습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생각에 기다려지곤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하루 종일 음악을 들으니까 차타고 오면서도 음악 안 들어요. 조용한 게 좋아요. 음악이 덜 고픈 건가요? 25년 넘게 음악이라는 한길을 달려오다가 지금은 옆길로 샜지만 어쨌든 먹고 사는 게 중요하잖아요. 긴 머리로는 취업하기 어려워 몇 년 전에 잘랐습니다”

음악 알게 해 준 형에게 고마워

2011년 10월 29일, 남구 학산소극장에서 ‘17회 인천자유락페스티벌’이 열렸다. 밴드 ‘어나더 원(Another one)’의 보컬 태정(예명)은 무대에서 노래 한 곡을 부른 후 마이크를 잡았다.

“제가 지금의 모습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건 형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고 있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형 때문에 음악을 시작했고 어릴 때 형이 들려줬던 록 음악이 저를 흥분시켰습니다. 형이 정말 고맙습니다”

태철씨보다 네 살 위인 형은 현재 한국지엠에 근무하고 있다. 한때 직장인밴드 보컬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날 공연에는 직장인밴드 동료들과 동생의 공연을 보러왔다. 형이 온다는 소식에 동생은 며칠 동안 멘트를 준비했다. 개인적인 리사이틀이 아닌 몇 팀이 함께 하는 공연이라 길게 얘기하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그로서는 언젠가 한번 공연 중에 형한테 직접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던 터라 시원했다.

태철씨에게 형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중2 때, 형이 녹음테이프를 하나 건네줬어요. 당시 저는 대중가요만을 들었는데 그 테이프에는 팝과 록이 들어있었어요. 그때 음악의 시선이 확 열렸죠. 그리고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내가 만든 곡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어요”

그 후 태철씨는 집에 있던 하모니카도 불어보고, 피리도 불어봤지만 곡을 만들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겨울방학 때 아버지한테 기타를 사달라고 졸랐더니 친구 분을 통해 기타를 얻어다 주셨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기타를 치며 동네 친구들과 어울렸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해 같은 반에 전자기타를 치는 친구를 보자 자존심이 상했다.

어떻게 구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시 전자기타를 치며 형에게 있던 메탈 엘피(LP)음반을 들으며 록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기타가 어렵다고 느껴 베이스 기타를 배웠다. 고등학교 때 ‘음악세계’라는 잡지 뒷면에 밴드 멤버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서울 가리봉으로 오디션을 보러가기도 했다.

‘자뻑’의 시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인조 밴드를 만들었다. 군대 가기 전까지 머리를 기르고 ‘미친 놈’처럼 다녔다. 군대에서도 문화선동대로 1년에 7~8개월을 행사가 있을 때마다 파견됐다. 제대 후 예전 밴드 했던 형들을 만나 다시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자꾸 기회가 생기는 거예요. 데모 테이프를 주니까 녹음실에서 오라고 해서 한동안 거기서 숙식하기도 하고, 편곡하는 사람을 만나 편곡을 배우고, 유명한 작곡가를 만나 작업을 같이 하면서 내 자신이 우쭐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머리를 또 길렀죠. 그러면서 밴드를 다시 조직해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홍대나 여러 클럽에서 공연하면서 유명한 팀들과의 경쟁에서 스스로 ‘우리가 저 팀 이겼다’라고 자의적 판단을 내렸던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는지 정말 웃겨요. 내 느낌에 빠져 나 혼자 잘했고 나 혼자 다 했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곡을 만들어 다 연습을 시켰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내 밴드이고 내 음악이고, 완전 다 나였어요”

보컬이기도 한 태철씨의 장점은 얇고도 높은 음역대를 소유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자고 일어나면 목소리가 반음 올라가고 또 그 다음날 반음 올라가고 했다니까요. 4옥타브 도 샵(#)까지 올라갔어요. 그래서 작곡도 아주 고음으로만 했죠. 지금 생각하면 바보짓을 한 거죠. 왜 그렇게 높게 만들었는지…”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던 어린 시절의 치기였을까? 황씨는 많은 사람들이 록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록이 대중화되면 그 가치가 떨어질 것 같은 생각에서 그랬다.

‘Another one’과 ‘Never run’

서울에서 활동하던 태철씨는 2008년 인천으로 와 밴드 ‘Another one’을 결성했다. 제물포역 근처에 연습실을 두고 처음엔 3명으로 활동하다가 5명까지 늘기도 했다.

밴드 이름에 담긴 의미는 이랬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또 다른 하나’라는 뜻이겠죠. 나란 존재가 있는데 음악을 하는 또 하나의 나란 존재가 있다는 뜻이라고 하면 될까요. 일종의 음악 하는 나의 아바타? 현실에서 존재하는 내가 있지만 음악에서는 또 다른 내가 있다는 말이죠. 음악 할 때는 미쳐있는 나요”

밴드가 연습할 때는 이른바 ‘카피(copy)’곡이라는 기존 노래를 연습하기도 했지만, 이 팀은 카피 곡은 거의 안 하고 자작곡을 중심으로 연습할 만큼 자신감이 가득했다. 한 달에 한 번은 반드시 공연해야 했으며 자작곡도 꾸준히 나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 노래는 다른 팀이 연주하기 어려울 만큼의 수준이어서 높은 음역대를 주로 차지했다.

“그러다보니 지치더라고요. 그 다음은 또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압박도 심했고요. 그러다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직장을 구했죠. 일을 하다 보니 몸이 지쳐 연습 횟수도 줄어들었죠. 머릿속엔 계속 음악이 있었지만 팀을 해체했어요. 그 무렵 연습실을 함께 쓰던 팀 중에, 취미로 카피 곡을 한 달에 한두 번 편하게 하던 팀이 있어 그 팀에 합류했어요”

그 팀이 ‘Never run’이다. ‘안 뛰어도 되고 천천히 가자’라는 뜻을 가진 이 밴드는 평균 2주에 한 번씩 연습한다. 누가 일이 생기면 그것마저도 늦춰지는데, 그럴수록 연습시간이 기다려진다.

“음악에 몰입하는 삶은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요. 사실 공연 수익만으로는 살 수 없어요. 하지만 그것보다 제가 음악만 하면 방탕하게 될 것 같아요. 그렇게 살면서 좋은 음악이 나올 것 같지 않고요. 오히려 지금 만드는 곡들이 옛날보다 훨씬 좋은 거 같아요. 마음도 편하고요”

‘Never run’ 성원은 현재 5명이다. 보컬이 충원돼 황씨가 직접 노래하지는 않는다. 직장생활을 겸하는 성원들은 프로 실력을 갖고 있다. 보컬의 경우 한 종편의 프로그램인 ‘히든싱어’ 김종국 편에 섭외가 들어왔다. 그러나 직장인이라 출연하기 위한 한 달 정도의 연습이 불가능해 포기했다. 태철씨도 ‘김종서’편 때 작가한테 연락이 오기도 했다.

“멤버들이 지향하는 게 비슷해요. 우리는 공연을 목표로 연습하진 않아요. 일 끝나고 한 달에 몇 번이 됐든 모여서 맘 편하게 노래하는 게 좋은 거죠. 그 중에 맛을 돋우는 향신료처럼 생활의 활력을 넣어주는 게 공연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곡이 쌓이면 녹음을 할 수도 있겠죠”

음악은 고통, 그러나 달콤한 무엇

▲ 황태철 록밴드 ‘Never run’ 리더
“나에게 음악이란 고통이에요. 유일하게 제일 잘하고 좋아하는 게 그거라서 시작했는데 나한테 고통을 줬어요. 그렇지만 버릴 수 없잖아요”

가장 고통스러웠을 때는 언제였을까?
“곡을 만들고 연습하면서 멤버끼리 생각이 다를 수 있잖아요. 작은 차이에서 시작했는데 갈등이 깊어져 밴드를 그만둬요. 사람을 많이 잃었어요. 술도 많이 먹고요”

특히 한동안은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전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기른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데 왜, 로커들은 머리를 기를까.
“한 방이죠. 무대에서 연주하면서 머리를 젖혔을 때의 맛이 있어요. 그 맛은 달콤한 무엇인데 절대로 잊을 수 없죠”

황씨는 음악 장르 중 하나인 록의 매력에 대해 “밴드 멤버 모두 주인공이잖아요. 대중가요는 가수만 부각되는데, 밴드는 멤버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니까 그게 좋아요. 한 곡을 같이 연주하는 게 얼마나 멋있어요. 내 파트에 들어갔다가 빠지고 다시 합치는 과정이 매력이죠”

음악을 시작한 지 25년이 넘다보니 음악에 대한 생각도 변해간다.
“록 스피릿(=정신)이요? 저는 그거 다 버렸어요. 젊은 날에는 록 스피릿이 온몸에서 삐져나왔다니까요. 요즘은 말랑말랑한 발라드도 자주 들어요. 진정한 록의 정신은 자유가 아닐까요? 지금 제가 느끼는, 밴드 연습시간이 기다려지고 멤버들 만나면 집에 가기 싫을 만큼 떠들고 웃는 자유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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