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학생 휴식에 관한 토론회

학생 65%, “쉴 시간 부족해”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 따르면, 청소년의 일주일 학습시간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33~34시간인데, 한국에선 49시간에 이른다.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일주일에 약 70시간, 평일 하루 약 10시간 이상을 공부한다. 이처럼 많은 학생들이 너무나 이른 등교시간과 늦게 끝나는 정규수업, 방과후 학교수업,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 등으로 충분한 휴식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인천지부와 인천시청소년회관(이하 청소년회관) 공동주최로 지난 13일 오후 4시 청소년회관 강당에서 열린 ‘인천지역 학생 휴식에 관한 토론회’에서 기조 발제를 맡은 아수나로 인천지부 활동가 라일락(가명)씨가 한 말이다.

아수나로 인천지부는 지난 5월 중순부터 약 두 달간 인천 관내 중ㆍ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708명을 대상으로 ‘쉴 권리에 대한 실태조사’를 했다. ‘인천시 학생의 정규교육과정 외 학습 선택권 보장에 관한 조례’가 제정된 지 약 3년이 됐지만, 학습 선택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학생들의 제보가 아수나로에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자 가운데 약 65%와 약 55%는 각각 현재 자신의 수면과 여가 시간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중학교 1학년 학생 중 약 52%와 49%,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중 약 63%와 55%가 부족하다고 답해,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면‧여가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1의 평균 수면ㆍ여가 시간은 약 7시간ㆍ3시간인데 비해 고3의 평균 수면ㆍ여가 시간은 약 5시간ㆍ2시간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학생들은 그나마 있는 휴식시간에도 심리적 압박이나 제한된 공간 등의 이유로 충분하게 쉴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학생 중 약 66%는 ‘시험기간이 주말이나 연휴 도중 또는 이후에 있다’고, 약 56%는 ‘교사들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수업 예ㆍ복습을 시킨다’고 말했다. 약 57%는 ‘학교에 학생들을 위한 휴게 공간이 없다’고 답했다.

이 때문인지 학생들이 휴식 시 주로 느끼는 기분이나 감정 중 ‘쉰 것 같지 않다’가 약 45%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학생 중 약 67%와 약 42%는 각각 ‘입시관련 공부시간’과 ‘어른들의 눈치’를 휴식시간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더군다나 전체 학생 중 55%는 방과후 학교, 야간자율학습 참가 여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정규교육과정 이외 학습 선택을 학교가 학생에게 강제할 수 없다는 조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이에 대해 라일락씨는 “공부 다 하고 쉬어라는 정말 이상한 말”이라며 “휴식은 학습을 마쳐야 주어지는 것이 아닌, 학습과 별개로 적절히 보장돼야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휴식 없이는 ‘창의 인재’도 없다”
“제도는 물론 인식개선도 따라야”

▲ 인천지역 학생 휴식에 관한 토론회가 지난 13일 인천시청소년회관 강당에서 열렸다.
뒤이어진 지정토론에서 기숙형 외국어고등학교인 미추홀외고 학생 이건우(16)군은 “우리 학교 (고1ㆍ2) 학생들이 일주일 동안 학교에 있는 시간은 총126시간 30분인데, 여기서 공부 시간 58시간 30분과 식사ㆍ수면 시간 35시간을 빼면 33시간밖에 남지 않는다”며 “학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학교에 있는 전체 시간의 ‘3분의 1’조차도 안 되는데도, 그마저도 교과교실 이동으로 쓰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군은 “휴식시간은 재충전뿐 아니라 학생들이 꿈을 이루기 위한 여러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학교에선 면학(=야간자율학습) 때문에 할 수 없다”며 “휴식 없이는 이 사회가 그렇게도 강조하고 원하는 ‘창의 인재’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군은 또, 학생들이 최소한의 휴식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그들의 의견이 직접 반영되는 ‘수업시수ㆍ자습시간 조정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만들 것을 주장했다.

현직 교사인 최선정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정책기획국장은 “학부모와 교사들은 아이들이 운동장에 모여 농구를 한다고 했을 때도 ‘공부 안 하고 놀고 있네’ 하면서 노는 꼴을 못 본다”며 “휴식을 취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도 문제지만, 조례가 있음에도 잘 지켜지지 않게 만드는 교사ㆍ학부모의 인식도 개선돼야한다”고 말했다.

최 국장은 아울러 “학생의 적(敵)은 학생이다. 휴식시간도 줄이며 공부를 더 하겠다는 학생들이 있다”며 “너무 힘들어도 그렇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계속 공부를 잡고 있는 것은 인생 낭비이다. 학생들도 스스로 같은 고민을 가진 친구들끼리 모여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노력해야한다”고 주문했다.

청소년회관을 이용하는 계산고 학생 김훈(17)군은 “청소년회관이나 청소년수련관의 춤ㆍ밴드 연습실, 만화방 등에서 여가와 휴식을 취할 수 있지만, 7교시에 보충수업까지 듣는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들여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며 “도입 목적과 달리 보충수업시간으로 쓰이기도 하는 ‘창의적 체험활동’시간을 수련관과 연계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김군은 더불어 “수련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청소년들을 비롯해 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휴식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수련관이 구청이나 주민센터 등이 운영하는 공공기관과 협력해 휴게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유토론에서 “내가 지금의 행복을 미루며 휴식시간을 줄여 공부한다해도, 미래에 행복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지 않느냐”고 비판했던 아수나로 수원지부 활동가 하루유키(가명ㆍ15)양은 “쉬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생활 속에서 휴식권이 멀게만 느껴진다”고 한탄했다.

아수나로 인천지부 활동가 아리데(가명)씨는 “아수나로는 올해 학습시간 줄이기에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라며 “확정된 사항은 아니나, 청소년들이 관련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운동본부를 만들까, 생각 중”이라고 향후 활동계획을 밝혔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학생ㆍ교사ㆍ청소년인권 활동가 등 약 30명이 참석해 2시간 넘는 열띤 토론을 펼쳤다. 하지만 시교육청 쪽에선 참석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시교육청 관계자는 “‘휴식권’이 따로 제정돼있지 않아 참석하기 어려웠다”며 “학교에 학습 선택권을 보장하라고 충분히 안내하고, 관련 방문 컨설팅도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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