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락기 강화고려역사재단 연구위원
며칠 전 강화와 개성에 있는 고려시대 유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인천과 개성의 오랜 관계에 대한 말들이 오갔다. 이야기 끝에, ‘우현과 송암’이란 제목으로 두 도시의 오랜 인연을 보여주는 전시회를 기획하는 것도 좋겠다는 것으로 발전했다.

우현은 일제강점기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을 지내다 별세한 인천 출신 고유섭 선생의 호이다. 선생은 한국 최초의 미학자, 미술사학자라 일컬어진다. 송암은 개성 출신으로 인천에 와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 동양제철화학을 일군 이회림 회장의 호이다.

우현은 1933년 봄부터 10여년간 개성부립박물관장으로 근무하면서 ‘조선탑파(韓國塔婆)의 연구’를 비롯한 여러 저서를 남겼고, 생의 마지막을 개성에서 맞이했다. 송암은 기업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한 것은 물론, 평생 모은 귀중한 문화재 자료 수천여점을 보관·전시하기 위해 송암미술관을 설립해 운영하다가 2005년 인천시에 기증하기도 했다.

이렇듯 인천과 개성의 인연은 둘의 생애로 대변할 수 있지만, 인천에는 개성과 연결된 더 많은 사연이 숨어있다. 지금은 경인교대로 이름을 바꾼 옛 인천교대의 전신은 인천사범학교이고, 또 그 전신은 개성사범학교이다. 한국전쟁으로 개성이 휴전선 이북에 속하자, 인천에 터를 잡고 교명을 바꿔 발전해온 것이다.

인천에서 ‘송도’라고 하면 흔히 송도(松島)유원지를 떠올리지만, 인천 중등교육의 일익을 담당한 송도중학교와 송도고등학교의 ‘송도’는 섬 ‘도(島)’자가 아닌 도읍 ‘도(都)’자를 쓴다. 송도(松都)는 바로 개성의 옛 이름 아닌가? 즉 개성에 있던 송도고등보통학교가 전쟁 이후 인천에 터를 잡아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개성부원록(開城赴援錄)’이라는 책이 있다. 1866년 프랑스군의 침입으로 수도 한양 일대가 크게 술렁거리고, 강화가 전장이 된 병인양요 당시 위기에 빠진 강화를 구하기 위해 개성에서 병력과 물자를 징발해 보낸 일련의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몽골의 침략을 받은 고려왕조가 개성에서 강화로 도읍을 옮겨 40년 가까운 세월을 버틴 것은 이미 상식이다. 이렇듯 인천과 개성의 인연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뿌리가 깊고 튼실하다.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이 이제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곳곳에서 손님맞이에 분주하지만, 북한 선수단의 참가나 응원단의 방문을 둘러싼 문제는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지지부진하다. 인천 시민사회에서는 열정적으로 남북공동응원단 구성을 추진하고 있지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북한 응원단이 참가하지 않는다면 모두 소용없는 일일 것이다.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남한에서 열린 국제 체육행사에 참여한 것은 이미 여러 차례고, 2005년에는 인천을 방문하기도 했다. 인천과 개성의 오랜 인연을 떠올리고 보면,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참가한다는 것을 각별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태권도와 우슈 경기가 열리는 강화고인돌체육관 마당에 서면 북녘 산하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런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이 인천과 개성, 나아가 남북의 역사적 인연과 동질성을 확인하고 평화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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