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이 만난 사람] 오경복 홈플러스노동조합 인천부천지역본부장

‘생활에 플러스가 됩니다’
홈플러스를 선전하는 대표적 문구다. 그런데 그곳에서 시민들에게 ‘생활의 플러스’를 전해주기 위해 노동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어떨까? 오경복(49ㆍ사진) 홈플러스노동조합 인부천본부장을 그가 근무하는 홈플러스 간석점에서 만났다. 현재 노조는 임금협상 결렬로 쟁의행위 중이다.

인격 무시가 제일 힘들어

▲ 오경복 홈플러스노동조합 인천부천지역본부장
간석점은 2001년 오픈했다. 오 본부장은 오픈과 함께 입사했다.

“14년간 근무하면서 한 번도 내 목소리를 내본 적이 없어요. 관리자들이 지시하면 따르는 거에 익숙했죠. 근무 시작 전 미팅시간에 궁금한 것을 묻기도 했는데, 관리자들이 못하게 해서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포기했죠. 근무 중에 화장실을 갈 땐 ‘빠른 걸음으로 다녀오라’고 해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생각하면 생리 현상까지 통제하는 게 너무 수치스러웠어요. 그래도 포기하고 지내왔죠. 사정이 생겨 근무시간 조정을 요청하면, 관리자들은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라고 해요. 퇴사하면 입사할 사람이 밖에 50명은 줄서있다고 합니다. 아무 말 하지 말라는 얘기잖아요. 인격을 무시하는 거죠”

지난해 2월, 회사는 일방적으로 오픈멤버를 중심으로 부서 이동을 시키기 시작했다. 이유를 물으니, 이유는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지금까지는 본인이 원할 때가 아니면 인사이동이 없었어요. 억울한 마음에 계속 다녀야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노조 설립 소식을 들었어요. 노조에 대해 잘 모르지만 노동자 편이라는 건 아니까 한두 명씩 가입하기 시작했죠”

간석점에는 노조 가입 대상자가 200명 있는데, 현재 95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인천에 홈플러스 지점이 7개가 있는데, 그 중 노조 지부가 설립된 곳은 간석ㆍ가좌ㆍ숭의ㆍ연수점 등 4곳이다. 지점 2곳은 지부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보험?

“노조에 가입하고 며칠 후에 인사과 관리자가 휴게실에 있는 저한테 왔어요. 제가 알기로는 노조 가입비가 1만원인데, 그 관리자는 3만원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때 동료들이 갑자기 들어와 제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고 느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관리자를 쳐다보는 거예요. 갑자기 힘이 나더라고요. 감동이었죠”

그 얘기가 입소문을 타고 직원들 사이에 퍼져 노조에 가입하는 인원이 꾸준히 늘었다. 한 지점에서 조합원이 20명을 넘으면 지부 설립이 가능해 작년 5월 간석지부가 건설됐다.

노조를 만들고 무엇이 가장 달라졌는지를 묻자, 관리자들이 함부로 안 하는 게 제일 좋다고 한다.

“인간적으로 존중받는 느낌이 들어요. 예전에는 진상을 부리는 손님이 오더라도 아무 잘못이 없지만 사과했어요. 하지만 노조가 생기고 나서 대응을 거부하는 벨을 누를 수 있게 됐어요. 그러면 관리자가 와서 그 손님을 응대하죠. 그 후론 조합원들이 당당하게 행동하죠. 환경도 많이 개선됐어요. 한 여름에 그렇게 덥다고 하소연해도 꿈적도 안 하더니, 노조가 생기고 계산대 옆에 선풍기를 하나씩 달아줬어요. 휴게실도 좋아져 개선된 점을 몸으로 느낍니다”

홈플러스노조는 올 1월,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그 단체와의 사이에서 근로조건 및 경제적ㆍ사회적 지위에 관하여 합의된 법적인 문서’인 단체협약(이하 단협)을 체결했다.

이 단협 조항을 살펴보면, 예전에는 일을 하다 다치면 연차휴가 사용을 강요당했는데, 이제 병가 규정을 명확히 했다. 연차도 자율적으로 쓰게 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단협 내용은 ‘0.5계약제’의 폐지다.

“8시간 근무를 못하게 하려고 7시간 30분 근무로 바꿨어요. 사실 근무시간 30분이 단축되더라고 정확히 퇴근하긴 어려워요. 게다가 캐셔(=계산원)의 경우는 30분도 아닌 20분으로 변경해 계약했어요. 10분이 줄면 한 달에 2만 8000원이 줄어요. 개인적으로는 적은 돈일 수도 있지만 전국적으로 따지면 큰 금액이겠죠. 이번에 단협 체결하면서 우리 캐셔들의 잃어버린 10분도 다시 찾았어요”

단협에서는 단계적으로 ‘0.5계약제’를 폐지하기로 했고, 적용대상자와 시기에 대해서는 현재 노사가 협상 중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

법에 보장된 노조에 가입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다. 하물며 노조 간부를 결심한다는 건 보통의 배짱이 아니면 하기 어렵다. 평범해 보이는 40대 후반의 여성이 인천부천지역본부장을 결의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지 않을까?

“친한 친구가 얼마 전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 노조에 가입했어요. 노조 간부가 여러 가지를 설명해줬는데 들으면서 몰랐던 권리를 많이 알게 됐대요. 제가 간부를 해야 할 것 같다고 고민했더니, 그 친구가 두 마디를 했어요. ‘노조가 있어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됐다’와 ‘누군가는 간부를 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친구의 말에 용기를 얻었죠. 생각해보면 우리 역사를 돌아봤을 때 누군가가 앞장섰기 때문에 발전이 있었고, 일본으로부터도 해방된 것이겠죠”

1인 시위를 처음 한 날, 엄청 떨렸지만 사진을 찍어 친구한테 보냈다. ‘내 친구 최고’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돌아왔다.

오 본부장에게는 또 다른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바로 딸이다.

“작년에 대학 졸업반이었는데 ‘누군가를 위해 앞에 나가서 할 수 있을 때 해라. 더 나이 들면 하기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노조일로 바쁘면 가끔 자가용으로 약속 장소에 데려다주기도 해요. 신세대인데 생각이 열려있어서 좋아요. 많이 응원해줘 참 고맙죠”

임금협상 결렬, 파업하면서도 조합원 확대

▲ 조합원들이 노조요구안을 유니폼에 부착한 채 근무하고 있다.
지난 5월 8일, 홈플러스 노사는 임금 협상을 위한 교섭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측은 노조의 요구안 10개 사항에 대해 ‘회사가 어렵다’는 말만 반복하며 단한 가지 사항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출하지 않았다.

“10대 요구안 중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생활임금 보장’인데, 우리는 10년 일해도 월 100만원이 안 돼요. 그래서 기본급을 도시노동자 평균임금의 58% 수준으로 요구합니다. 다음으로는 현재 200%인 상여금을 400%로 올려달라는 것과 근속수당을 올려달라는 거예요. 지금은 근속수당이 상한선 10만원이라, 5년 정도 지나면 다 똑같아져요. 경력이 인정되는 호봉제도 아니니까 오래 다닌 사람들에게는 근속수당 인상으로 차등을 주자는 거죠”

노조는 6월 26일 열린 8차 교섭에서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조정을 신청하는 등, 쟁의행위 준비 절차에 들어갔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조정회의를 두 차례 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노조는 7월 초,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해 찬성률 93%로 파업을 결의했다.

“노조의 쟁의행위 1차 지침은 7월 17일까지 4시간 이상 파업하는 거예요. 인부천본부 지부 4개가 지난 12일 동시다발로 파업에 돌입했어요. 사실 본사에 큰 타격이 있진 않겠지만 우리는 파업을 하면서도 조합원이 계속 늘고 있어요. 전국에 지부 33개가 있는데 이번 파업으로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지부 3개가 확대됐어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요”

쟁의행위를 시작했지만, 사측은 미동도 없다. 협상을 위한 어떤 움직임도 없고 오히려 회사경영진 일동의 명의로 담화문을 발표해 매장에 게시했다. 노조의 단체행동에 대해 징계와 법적대응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협상이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 힘만으로는 안 돼요. 시민들한테 알려서 시선을 끌고 응원도 받아야할 것 같아요. 월 100만원도 안 되는 현실을 밝히는 게 창피하고 쑥스럽기도 하지만 조합원들과 이 상황을 즐기자고 했어요”

노조는 요구안을 유니폼 뒤에 부착하고 앞에는 노조의 요구 내용을 담은 리본을 근무 중에 착용하기로 결정했다.

“한 조합원이 바쁘다고 빨리 계산해달라는 남자 손님 때문에 곤혹을 느끼고 있을 때였어요. 그 손님이 리본과 유니폼 뒤에 부착된 것을 보더니 무슨 일이냐고 물었나 봐요. 내용을 읽어보고 나서는 ‘아하!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요’라고 하더래요. 힘들고 속상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오 본부장이지만 그 또한 ‘진상’손님으로 인한 아픈 경험이 많다.

“한번은 부부하고 어린 남자애가 계산대로 온 적이 있어요. 과자를 먹고 있기에 스캔으로 찍어야 해서 아이에게 올려놓으라고 했어요. 갑자기 애 엄마가 왜 반말하느냐고 반말로 따지더라고요. 아이한테 한 건데, 자기한테 한 걸로 오해하고 소리 지르며 본인 얘기만 하더라고요”

오 본부장은 죄송하다며 안녕히 가시라는 말을 하고,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 화장실에 갔는데 울면 지는 것 같아서 안 울었다고 한다.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온화하게 되더라고요. 저도 다른 곳에 가서 종업원인 젊은 여성한테 불평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내 딸이 그런 일 당하면 어쩌나 싶어 못하게 되더라고요. 내 동생, 언니, 엄마가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서 우리들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노조는 단지 우리 노동자의 권리만 찾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홈플러스의 불법ㆍ위법행위를 바로잡고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 여러분의 생활에 플러스가 돼드리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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