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이 만난 사람] 김준이 전국사회복지유니온 위원장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은 많은 얘기를 남겼다. 일부 언론은 현 정권의 의료제도나 복지제도에 대한 진지한 물음보다, 그 지역 공무원이나 사회복지사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그런 뉴스를 접하면, 처음엔 그 동네 사회복지사는 뭐했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제가 겪어보니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일선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에게 책임을 돌리려고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2008년에 나온 한국개발연구원(KDI)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사회복지공무원의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6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1000명당 평균 12.24명인 것에 비해 우리는 0.22명이었다.

올해 1월, 전국사회복지유니온이 창립했다. ‘국민에게 복지를! 노동자에게 권리를! 보편적 복지 실현!’을 기치로 출범한 전국사회복지유니온의 김준이(44ㆍ사진) 위원장을 만났다.

사회복지사의 자긍심으로 시작하다

▲ 김준이 전국사회복지유니온 위원장
‘사회복지사는 인본주의와 평등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하고 천부의 자유권과 생존권 보장활동에 헌신한다. 특히 사회적ㆍ경제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사회정의와 평등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앞장선다…’

사회복지사 윤리강령 중 일부다. 거창한 단어들의 나열에 압도돼 숭고한 성직자의 이미지가 연상됐다. 그러나 김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숭고함’이 아닌 열악한 근무조건에 내몰린 사회복지사들의 현주소를 날것 그대로 보여줬다.

“사회복지사가 되겠다는 사람은, 처음엔 이 사회에 헌신하겠다는 마음으로 선택해요. 출세하고 돈을 벌겠다고 이 직업을 선택하지는 않아요. 20대에는 직업선호도가 높지만, 연차가 올라갈수록 급격히 떨어져요”
자긍심 하나로 버티기엔 너무 힘들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이란다. 무엇이 ‘날개 없는 천사’같은 사회복지사들의 꿈을 접게 만들었을까?

참는 것이 직업인 사회복지사

“일하다보면 우리 사회복지사들은 인권이 없다고 느껴요.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무조건 시말서를 쓰라고 할 때 정말 답답해요. 참으라는 말만 하고, 하소연 할 데도 없어요. 언제까지 참고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당연히 정규직인줄 알고 취직한 복지관에서는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비정규직으로 해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한다는 것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시설에서 관리하는 차량으로 공무를 보다 사고가 나도 개인이 처리한다. 사고 수습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복지사도 있었다고 한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대우를 받는 줄 알았는데, 겉만 번지르르해요. 사회복지사들의 희생이 실제 엄청난 데도, 본인들이 권리를 자각하지 못하고 인권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사명감으로 참다가 결국 떠나죠.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으로 떠나고, 남성들은 자영업으로 전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 이들의 인권을 지키고 복지를 키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정작 소외되고 있어요”

복지의 질을 높이려면, 선배 사회복지사들이 앞에서 꾸준히 끌어주고 후배들이 그것을 배워야하는데, 배울 선배들이 현장에 없다. 신입들은 보호 장치 없는 곳에서 수모를 겪고 사명감과 자긍심을 내려놓고 떠난다. 복지와 인권의 사각지대가 바로 여기라고, 김 위원장은 비판했다.

그러나 사회복지사들이 자신의 노동을, 자신이 노동자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회복지사들은 노동자라는 생각을 안 해요. 사회복지사가 배우는 교육 과목 중에 관통하는 정신이 있어요. 클라이언트(=서비스를 받는 의뢰인)가 힘들게 하더라도 무조건 참으라는 것이죠. ‘너는 선생이고 헌신과 봉사로 일해야 한다’는 것만을 강조해요. ‘전문가’라는 인식도 한 몫하고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로서 권리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요”

사회복지사, 노동자의 이름을 찾다

▲ 김준이 전국사회복지유니온 위원장
김준이 위원장과 사회복지사들과의 관계를 거슬러 올라가 봤다. “인천지역노동조합 위원장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8년 전에 예닐곱 명이 찾아왔는데 사회복지시설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들이었어요. 그분들 얘기가 사회복지현장이 더 이상 이렇게 가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후배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는데, 개선해야한다. 후배들을 위해 바꿔야한다. 노조를 만들고 싶다. 도와 달라’는 절절한 말에, 김 위원장은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사회복지사들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늦은 시간까지 연장근무하고 휴일에도 각종 행사에 불려나가, 만날 시간이 없었다.

노조활동에 또 다른 어려움은 조합원 중 비정규직이 많아 다른 지역으로 근무지를 이전하는 경우였다. 현실적으로 노조를 만들기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그것보다 김 위원장을 더 힘들게 한 것은 소통의 문제였다. 노조가 절박하다고 하면서 간절하지 않은 것 같은 모습에, 김 위원장은 한마디 했다. ‘내가 사회복지사 돼서 현장에서 직접 노조를 만들고 말지’
이 말이 씨가 됐다고 말하는 김 위원장은 사회복지를 공부했고, 올해 사회복지사 5년차로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고민은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더 깊어졌다. 노조는, 개별 사업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또한 인천지역으로 한정짓는 게 아닌 더 큰 울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회복지노동자, 더 큰 산별노조로 뭉치다.

“전국사회복지유니온은 개별 시설장과 대립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물론 비리가 있는 일부 시설이 있지만, 그것보다 정부와 지방정부와의 문제 해결이 급선무입니다”

사회복지사들이 만든 노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위 사업장 위주로 노조가 결성되다 보니 한계가 많았고 문제 해결이 안 됐다. 열악한 근무조건으로 사업장을 옮기거나 다른 지역으로 흩어질 경우 노조활동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통 큰 단결’을 위해 산별(=산업별)노조로 뭉치는 것이 필요했다.

전국적으로 뭉쳐야하는 이유가 또 있다. 전국의 사회복지사들은 정부의 임금가이드라인에 의해 연봉이 책정된다. 그러나 이를 감독해야할 정부가 사실상 방치하면서 시ㆍ도별 임금체계가 다르다. 본봉뿐만 아니라 각종 수당의 차이는 더 심각하다.

같은 지역 안에서 시설별로, 지역별로 차이나는 임금은 사회복지사 간 갈등과 문제를 야기했다. 단순한 권고 사항이라는 미명으로 정부는 회피하지만, 노-노 간, 지역 간 문제가 아니라 정부 당국이 책임져야하는 문제다.

지난달 27일,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교육장에서는 ‘사회복지사 인권실태, 사회복지계 역할과 과제’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위원의 발제 자료를 보면, 사회복지사 280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노조 필요성(84.5%)과 가입 의향(72.6%)은 비교적 높게 나타났으나 ‘불이익에 대한 우려로 가입이 꺼려진다’는 의견이 절반(57.9%)을 넘었다.

“전국사회복지유니온은 모바일 가입이 가능해서 조합원 신분이 최대한 보장됩니다. 노조 가입으로 불이익이 생긴다면 노조에서는 신분보장을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입니다. 당장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지지하면 나에게 일이 생길 때 사람들이 나를 돕게 되는데, 그게 바로 노조인거죠”

전국사회복지유니온 가입은 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능하단다.

“사회복지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과 시설,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어요. 사회복지사는 물론이고 보육교사ㆍ간호사ㆍ영양사ㆍ물리치료사ㆍ직업훈련 교사ㆍ요양보호사ㆍ장애인활동보조인ㆍ조리원ㆍ위생원ㆍ관리인ㆍ경비원 등 모두 가능합니다”

지난해 10월 산별노조로 창립한 전국사회복지유니온은 현재 전국 6개 지역에 지부준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다.

사회복지사의 높은 이직률, 정부가 책임져야

▲ 김준이 전국사회복지유니온 위원장
사회복지사들의 높은 이직률은 복지대상자 국민에게도 큰 문제로 직결된다. “사회복지사는 사회적 취약계층들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들은 마음을 열기도, 소통하기도 쉽지 않아요. 그런데 사람이 자주 바뀌면서 어떻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죠? 복지는 단기적으로 바라보면 안돼요”

우리나라 사회복지시설은 정부나 지방정부로부터 위탁받은 법인 시설로, 정해진 예산과 제도에 따라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할 뿐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특히 임금의 결정에 관한 권한은 국가나 지방정부가 갖고 있다.

전국사회복지유니온은 국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복지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서 국가와 지방정부와의 교섭을 최우선과제로 세우고 있다.

“국가와 지방정부와 교섭하기까지 쉽진 않겠죠. 긴 싸움이 될 거예요. 하지만 사회복지종사자들이 노동자임을 선언하고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행사할 수 있는 노조 깃발을 들었어요. 정부와 교섭을 하기 위한 첫 출발은 시작한 것이며, 시작이 반이라고 이미 반은 온 것입니다”

4월 정책간담회 예정, 사회복지사의 사명감 찾을 것

전국에 사회복지 관련 노조가 여럿 있다. 적은 수지만, 전국사회복지유니온은 이들에게 활력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노조들의) 통합과 관련한 고민도 물론 하지만, 물리적 통합을 서두르기보다는 정책을 가지고 연대하면서 마음을 맞춰나가려고 해요. 기존 노조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전국에서 진보적인 사회복지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간부들과 만나 4월에 정책간담회를 열기로 약속했어요”

김 위원장은 노조가 정말 필요한 이유는 단순한 임금 인상이 아닌 진정한 사회복지사의 길을 가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느끼는 부조리를 혼자 주장해서는 못 바꿔요. 정부와 지방정부가 바뀌고 정책이 바뀌어야 해요. 우리가 배운 사회복지사 윤리강령을 제대로 실현하려면 노조로 뭉쳐 정의로운 길을 함께 열어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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