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 가천길대 교수, 인천시민 대중강연회서 정부 의료정책 비판

“송파 세 모녀 사건의 비극은 의료비 때문이었다. 12년 전 암 투병 중 사망한 아버지의 병원비와 그로 인한 생활고가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의료의 양극화를 심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의료정책의 문제점을 살피고 대안을 모색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지난 12일 인천YWCA 대강당에서 열린 ‘인천시민 대중강연회’는 위와 같은 황윤정 인천지역연대 사무처장의 취지 설명으로 시작됐다.

사단법인 인천시민운동지원기금이 주최하고 인천지역연대 주관과 인천투데이 후원으로 열린 이날 강연회엔 임준(사진) 가천길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가 강사로 나섰다.

시장경제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보건의료시장

▲ 임준 가천길대 교수
임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경쟁을 하려면 시장의 전제조건이 있어야하는데, 보건의료시장은 원천적으로 시장 형성의 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말문을 열었다.

“보건의료에서는 환자와 의사가 대등한 관계가 아니어서 경제학자 아담스미스의 수요공급의 법칙이 성립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대등한 관계 형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규제와 책임을 부여해야한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국가에서는 감염환자를 격리 조치하는데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 강제가 필요하다”

그는 이어서 시장에선 구매력이 있는, 돈이 되는 곳에 공급이 몰린다며 서울 강남과 농촌지역을 비교했다.
“시골에 아픈 사람이 많지만 오히려 병원은 없다. 시장의 구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취약계층이 많은 지역은 공급이 없다. 이것이 보건의료시장의 실패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시장을 규제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임 교수는 지적했다.

망하지 않는 병원의 진실

대형 병원에 비해 중소영세 병원은 유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영세 병원은 병상을 늘린다. 다른 자영업은 경쟁하다 곧잘 망하기도 하는데, 병원은 경쟁하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병원의 특수성이다. 비밀은 과잉진료에 있다.

“병원 적자를 환자에게 전가하기 위해 과잉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CTㆍMRI를 찍게 한다. 독점적 시장에서 합리적 행위를 하는 거다. 독점적 지위에 있는 의사나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부담을 전가해 의료비를 증가시킨다”

비용 유발을 위해 안 써도 되는 약을 처방하거나, 진료를 하는데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으니 이 또한 환자들의 몫이다.

임 교수는 “과잉진료를 유도하는 지불제도는 개별적 (의사나 의료기관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다. 구조를 바꿔야한다. 시장에서 마음껏 운영하는 공급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혁하지 않고서는 과잉진료 근절은 불가능하다”며 “문제 해결의 첫 단추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정부에서 제도와 정책을 바꿔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시장을 규제하면 된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또한 “본질적으로 보건의료는 굉장히 중요한 인간의 권리다. 권리는 경제적 수준에 따라 차등이 있을 수 없다. 이미 유엔의 ‘사회권 선언’에는 무상의료가 엄청난 권리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권리라고 나와 있다”며 “병원은 도서관처럼 공공자원으로 지역사회에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국립대병원도 이익 추구, 구조문제에서 비롯돼
영리병원이 일자리창출? 돈 안 되는 실험 안해

▲ 지난 12일 인천YWCA 대강당에서 열린 의료 영리화 관련 ‘인천시민 대중강연회’ 모습.
서울대병원은 국립대 병원으로 공공 병원이다. 그러나 의료급여 환자나 기초생활수급자의 이용률은 3%를 넘지 못한다. 국립대 병원도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이것이 구조의 문제에서 비롯됨을 재차 강조했다.

“어느 병원이든 응급실은 적자다. 비영리 법인은 법적으로 규제하니까 응급실을 의무적으로 만들지만, 영리 법인이 되면 적자가 되는 것을 폐기하는 건 당연하다. 적자인 응급실을 유지하는 것은 주주의 이익을 ‘배신’하는 거다. 미국의 영리 병원이 비영리 병원을 인수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게 응급실 폐지다. 자본의 논리로는 당연하다”

임 교수는 병원의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캐나다의 병원을 예로 들었다.

“캐나다의 병원은 100% 민간 병원이다. 600병상에 간호사가 1500명으로 병상 대비 간호사 비율이 세 배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나마 간호사가 많다는 서울대병원은 ‘1대 1’이다. 캐나다의 병원 관리ㆍ운영은 지역주민과 의회에서 한다. 민간이라 공공성이 작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정부는 영리 병원 도입의 필요성으로 의료관광, 의료서비스 질 개선, 일자리 창출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정부가) 의료관광으로 싱가포르의 사례를 드는데, 그 나라의 경우 70% 이상을 공공 의료가 담당하니까 외국인을 상대할 수 있다. 낮은 인건비가 경쟁력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서비스 질에 있어서도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서 서비스보다는 의료행위(=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행위)를 많이 해서 매출을 늘린다. 질이 나빠질 수밖에 없어서 고객만족도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일자리 창출에 대해서는 “송도 영리 병원이 생명공학(BT) 활성화로 바이오산업이 확대되고 일자리를 창출할 것처럼 홍보한다. 그런데 병원에서 돈이 안 되는 실험을 할까?”라며 “전 세계적으로 임상실험을 하는 병원은 돈과 상관없는 연구 목적의 공공 병원”이라고 반박했다.

임 교수는 마지막으로 공공 병원의 역할과 과제를 설명하며 지역에서 공공 병원의 역할을 강화해야한다고 말했다.

“현재 인천의료원이 공공 병원으로서 역할을 높여가고 있다. 민간 병원을 선도하는 양질의 서비스 제공은 물론, 근본적으로는 법제도가 바뀌어야한다. (인천의료원의) 시설ㆍ장비ㆍ인력을 확충하고, 조직과 관리ㆍ운영의 혁신으로 거듭나야한다. 공공사업 등의 이유로 적자가 발생한 경우 정부 예산이 자동 편성돼 ‘균형 예산’을 수립해야한다. 지역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3차 의료기관과의 안정적인 전달체계도 구축해 공공 병원 본래의 역할에 충실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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