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의 ‘카페 in’

올 겨울은 유난히 따뜻했다. 기상청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올 겨울 평균기온은 1.5도(℃)로 평년(0.6도)보다 0.9도나 높았다. 3월 초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오전, ‘휴식, 그리고 삶의 이야기’라는 글귀가 따뜻함을 배가하는 ‘카페 in’을 찾았다.

‘카페 in’이 있는 6층짜리 건물(부평구 십정2동/ 인천교통공사 맞은 편)은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이 지난해 11월, ‘노동자센터’라는 이름으로 둥지를 튼 곳이다. 김은숙(48) 노동사목 사무국장이 만들어 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전국 최초로 부평에 노동사목 만들어

▲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에서 운영하는 카페 ‘카페 in’.
“부평구 산곡1동에 있던 노동사목은 1977년에 만들어졌어요. 우리나라 노동사목 중 최초였죠. 이 카페가 노동사목의 사랑방 같은 공간이면 좋겠어요”

산업화가 한창이던 1970년대, 부평공단에는 개발도상국의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선교 활동을 하던 외국인 신부와 수녀들이 있었다. 이들이 당시 노동현장에서 자기 권리를 찾는 일을 하던 가톨릭노동청년회와 만났고, ‘노동자들이 쉴 수 있고 마음을 나누고 교육을 하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해 부평노동사목 ‘새날의 집’을 만들었다. 김 국장은 1993년 노동사목 실무자로 시작해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1980년대 초ㆍ중반, 이른바 ‘유화국면’(宥和局面) 시기에 전국적으로 노동사목이 생겼어요. 인천에서도 부평사목 이후 부천과 주안에도 노동사목이 생겼죠. 지금은 노동사목이 많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내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곳은 전국에서 인천밖에 없어요”

1990년대 중반까지 노동사목은 공단지역을 중심으로 노동자 교육과 상담, 노동조합 지원 활동을 왕성하게 했다. 하지만 1994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건설되고 노동조합이 조직력을 탄탄히 하면서 스스로 권익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 때부터 노동사목은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성교육으로 재탄생한 부평노동사목

▲ 김은숙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 사무국장.
노동사목만의 차별화한 교육내용을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당시 부평노동사목에 함께 있던 김영선 수녀(성심수녀회)가 애니어그램(=인간의 아홉 가지 성격유형 분석법)을 노동자들에게 적용해보자고 제안했고, 김 국장은 곧바로 서울로 애니어그램을 공부하러 다녔다. 애니어그램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년 정도 지난 뒤였다.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노동자로서 정체성 등을 고민하면서 ‘선택’이라는 프로그램을 준비했어요. 지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자기 생각을 정리하면서 글을 쓰게 하고 성찰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것을 느꼈죠”

노동사목이 나아갈 방향은 잡았지만, 여전히 90년대는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 자신의 권리를 찾는 행동이 절실한 시기였다. 노동사목이 방향을 전면 수정하기에는 시기상조였던 것이다. 부평사목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데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2001년 2월, 대우자동차 노동자 1750명이 정리해고를 당했다.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모였고, 며칠 후 공권력은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몰아냈다.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은 산곡동 성당에 딸려있는 샤미나드 피정의 집에 농성장을 마련하고 2년 동안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벌였다. 그 후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 때 부평사목이 해고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어요. 매일 미사를 드리고 수배자의 활동에 어려움이 없게 많은 것을 제공했죠. 1년 넘게 투쟁하고 나니 사람들이 많이 피폐해졌더라고요. 해고로 인한 상실감과 분노, 동료와 가족과의 갈등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태였어요”

실제로 해고자들에게는 많은 문제가 생겼다. 아내가 도망가거나 이혼을 요구하고, 아이들은 학원을 끊고 정서적으로 불안해했다. 공황장애를 겪는 노동자들이 늘어났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겪은 고통을 먼저 겪은 것이다.

“해고노동자들이 앞으로 감수하고 겪어야할 고통이 많겠다고 판단했어요. 그때부터 노동사목의 전망을 심리 상담과 치유 등으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대우차 노동자들의 부부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2000년대 초에 공무원노동조합과 발전노동조합의 파업투쟁이 연이어 일어났고, 산곡동성당과 노동사목은 파업 노동자들을 종교의 이름으로 먼저 보살펴야했다. 방향 전환을 위한 고민은 잠시 접어둬야 했다.

노동자센터로 나아가는 발걸음

2007년 부평노동사목 창립 30주년이 되는 해,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본격적인 방향 전환을 모색했다. 부평노동사목 실무자들은 김일회 노동사목 지도신부의 동의로 인천교구에 제안해 ‘새날의 집’을 허물고 3층짜리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드디어 2008년 11월 개원식과 축복미사를 하고 노동자인성센터로 태어났다.

날로 거듭나는 발걸음은 주어진 조건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부평과 주안, 부천노동사목이 통합해 2013년 11월 1일 지금의 노동자센터로 재탄생했다. 1층은 ‘카페 in’, 2층은 성당에서 수거해 온 헌옷을 수선해 저렴하게 판매하는 마을기업 ‘맘에 드는 가게’, 그리고 3~6층엔 심리 상담실과 교육실, 노동사목 사무실과 생활공간 등으로 꾸몄다.

“부평, 주안, 부천에 분산해있던 노동사목을 통합했어요.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찾아 전문성을 키워내는 것이죠. 따로 떨어져서 수공업적으로 활동할 시기는 지났다고 봐요”

‘카페 in’도 그 연장선이었다. 2010년 11월,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는 우리나라 최초로 심리카페 ‘홀가분’을 만들었다. 김 국장은 그 모형을 재해석해 노동사목에 맞는 공간을 만들고자 ‘카페 in’을 시작했다.

나누고 연대하는 공간, ‘카페 in’

▲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자센터 건물. 인천교통공사 건물 맞은 편에 있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와서 편히 쉴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어요. 언제라도 쉽게 찾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공감하며 연대하고, 거기에 이 시대의 흐름에 맞는 인성센터의 기능과 역할을 살리는 곳으로 만들려고 해요”

지금까지는 사는 게 힘들고 불안한 마음을 나누며 자기 스스로 치유하게 도왔다면, 이제는 전문적인 상담 교육과 도구들을 이용해 심리검사를 하거나 다양한 놀이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카페 in’ 문을 열고 4개월 동안은 외부 골격을 갖추는 데 전념했다. 이제 봄부턴 심리카페로 손님을 제대로 맞을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세트 메뉴를 개발할 예정이에요. 예를 들면, 성격유형 검사와 커피를 함께 제공하는 거죠. 검사를 하려면 검사지가 별도로 필요한데 실비만 받을 생각이고 그걸 바탕으로 상담도 하고 검사유형 평가도 하려고요”

그 외, 부부관계 만족도 검사, 가족 평가 등의 집단 상담과 우울증ㆍ불안 검사도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할 계획이다.

“한 달에 한 번은 열린 공간에서 ‘만남의 날’ 형식으로 강의를 하거나 집단작업을 할 고민도 있어요. 주제는 심리에만 국한하지 않고 한의사를 모셔와 건강관리에 대한 얘기도 하는 등, 다양한 것들을 진행해보려고요”

영리를 목적으로 연 카페가 아니지만 계획된 많은 일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했기에 수지타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천시에 프로젝트를 제출해 지원 받은 것도 있고, 전문교육을 받은 자원봉사자들과 협력구조를 만들어서 운영하려고 해요. 검사 결과를 설명하고 상담하려면 전문가들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천주교 인천교구는 건강가정지원센터(연수구ㆍ중구)를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전액 국비 보조 사업으로 운영하는데, 이 센터들의 자원봉사자 풀(pool)을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 논의하고 있다.

“가족관계 의사소통, 부모 역할, 가족 발달주기와 구성원 발달단계의 심리학, 일하는 사람들의 가족관계 등, 진행할 수 있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후속모임을 꾸려 집단상담도 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죠. 초기 부평노동사목에서 시작한 사랑방 형태와 기본 정신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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