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가을, 나는 금강산에 있었다. 현대아산에서 마련한 2박3일 일정의 짧은 여행이었다. 용 아홉 마리가 산다는 구룡연과 구룡폭포,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의 배경이 된 상팔담, 그리고 ‘금강산 관광의 꽃’이랄 수 있는 만물상 산행을 했다. 수직으로 쩍쩍 갈라진 절벽들과 셀 수 없이 솟은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진,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에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피로가 약간 쌓인 마지막 날 아침, 여행 내내 우리의 발이 되어준 관광버스에 올랐다. 버스마다 현대아산 직원 한 명이 탑승해 관광객을 인솔했다. 우리 차에는 20대의 젊은 남성 직원이 배치돼 이동하는 틈틈이 갖가지 설명을 곁들였다.

마지막 관광지로 향하던 그날 아침에도 그는 어김없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이렇게 마지막 날이 되면 아쉬움 때문인지 차 안 분위기가 이전과 많이 달라지는데, 가장 마주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고 했다. 바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 참가자들의 마지막 날 아침이다.

그는 금강산 관광 안내만이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 참가자 인솔도 맡고 있었다. 몇 십 년 만에 그리운 가족을 만나 한없이 기뻐하며 들떠 있던 이들이, 마지막 날 아침이 되면 무거운 침묵 속에 잠긴다는 것이다. 잠시 후면 언제 만날지 기약 없는 긴 이별을 받아들여야하는 그들. 이런 가슴 아픈 생이별이 또 있을까.

‘헤어짐’이나 ‘갈라섬’, ‘분리’라는 말과 달리 ‘이별(離別)’이란 말에선 슬픔이 느껴진다. 과연 한자가 만들어질 당시에도 이런 감정이 담겨 있었을지 궁금하다.

 
획수가 적은 別(나눌 별)부터 살펴보면, 別의 왼쪽은 ‘부서진 뼈’라는 뜻의 歹(알, 죽을사변)이 모양을 조금 바꾼 것이다. 歹은 죽어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을 나타낸다. 옛날, 사람이 죽으면 인적이 드문 숲에 두었다가 나중에 뼈만 수습하는 장례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 사람들에게 뼈는 곧 죽음을 뜻했다. 죽은 사람(歹) 옆에 꿇어 앉아 슬퍼하는 사람의 모습(匕)을 표현한 한자가 있는데, 바로 ‘죽다’는 뜻의 死(사)이다.

別(별)에서 오른쪽 세로로 된 두 획 刂는 刀(칼 도)를 다르게 쓴 것이다. 즉, 別(별)은 칼로 뼈를 발라낸다는 뜻이다. 제사에 사용할 가축의 뼈와 고기를 나누는 것에서 ‘구분하다’ ‘다르다’ ‘떠나다’로 의미가 확장됐다.

조금 복잡하게 생긴 글자 離(떼어놓을 리, 이)에서 离는 막대기 끝에 망을 달아 새를 잡는 새그물의 모양이다. 여기에 隹(새 추)를 덧붙여 ‘새를 잡다’는 뜻으로 쓰였다. 새로운 새를 잡으려면 그물에서 잡은 새를 꺼내야 한다. 여기에서 ‘새가 그물을 떠나다’ ‘벗어나다’는 의미가 됐다. 離는, 두 지점 사이의 직선 길이를 뜻하는 거리(距離), 서로 나뉘어 떨어진다는 뜻의 분리(分離), 떨어져 나간다는 뜻의 이탈(離脫) 등에 두루 쓰인다.

이렇게 이별(離別)이라는 한자에는 새를 사냥하고 고기를 잡아 제사를 지냈던 옛 생활 모습이 담겨 있을 뿐, ‘분리’라는 의미 이외에 그 어떤 감정이나 특별한 사연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이별이란 말에서 슬픔을 느끼는 건, 지나친 감정이입 탓일까?

얼마 전, 금강산 호텔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렸다. 3년 4개월 만에 이뤄진 만남이었다. 남북을 합쳐 170가족, 700여명이 긴 단절의 세월에 점 하나를 찍었다. 이들에게도 마지막 행사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 그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올해 1월까지 우리나라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모두 12만 9287명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그리던 가족을 만난 이는 고작 1만 2000여명이다. 신청자의 절반에 가까운 5만 8000여명은 꿈을 이루기는커녕 생사 확인도 못한 채 이미 세상을 떴다. 아, 정말 슬픈 이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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