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또 하나의 약속

또 하나의 약속|김태윤 감독|2014년 개봉

 
솔직히 고백컨대,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영화의 소재로 선택된다는 것은 이미 실화가 그만큼 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을 영화로 만들면서 극적 요소가 과해지는 측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실화가 가진 극적 요소가 분노든 슬픔이든 감동이든, 과잉된 감정은 오히려 영화 관람을 불편하게 만들곤 했다.

하지만 대놓고 실화를 극으로 만든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개봉 전부터 이미 꼭 보아야 할 영화였다. 태생적으로 투자자를 찾기 힘든 영화이기에 제작 초기 단계부터 개인들의 쌈짓돈을 모아 제작비를 마련하는 제작두레(클라우드 펀딩)에 참여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내가 참여한 ‘내 영화’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애초에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에 가졌던 우려인 감정 과잉을 담백하게 피해갔고 엔딩크레딧에 제작두레 명단(1만명)에 비록 본명이 아닌 닉네임이긴 했으나 내 이름 석 자가 들어있다는 게 뿌듯함을 넘어 고마웠던 영화다.

‘감정 과잉을 담백하게 피해갔다’고 했지만, 나는 영화를 보는 2시간 내내 울었다. 퉁퉁 부은 눈과 뜨거워진 얼굴을 가라앉힐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던 내게 1만명의 제작두레 명단을 모두 실었기에 꽤 긴 편이었던 엔딩크레딧은 고맙기까지 했다.

이 영화의 소재인 ‘삼성반도체 근무로 백혈병 판정을 받고 사망한 고(故) 황유미 사건’은 사건 자체가 이미 거대 자본의 비인간적이고 탐욕스러운 횡포에 대한 분노와 그에 맞서는 약자의 울분이 부딪히며 극적인 감정을 극도로 끓어 올릴 수밖에 없다.

영화는 그저 그 사건을 21세기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의 투박하고 담백한 화면으로 보여줄 뿐이다. 거대 자본의 횡포를 대놓고 비판하지도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을 먹여 살리는 게 누구냐.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으냐”라는 대기업 간부의 말을 통해 자본의 속마음을 날것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에 맞서는 유미의 아버지가 노동계급의 대표인 것처럼 표현되지 않는다. 딸이 대기업에 입사한 게 자랑스러웠고 백혈병을 얻은 게 안타까웠고 그게 다 자기 탓인 것 같았던 평범한 아버지일 뿐이다.

그래서 좋았다. 딸이 병에 걸린 걸 알고는 안타까운 마음에 ‘조심하지 그랬느냐’라고 딸을 타박하던 평범한 아버지가, 그 평범한 부정(父精) 때문에 이윤 극대화라는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대기업과 맞서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특출나게 정의로워서 특출나게 용감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가족이어서 평범하게 사랑해서 싸우는 아버지 이야기는 바로 내 이야기이기도 하지 않은가.

여기에 ‘또 하나의 약속’이라는 영화가 가진 힘이 있다. 우리 사회는 온갖 부조리와 부정의가 판을 치고 있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것을 외면한다. 정리해고로 한 노동자가 크레인에 목을 매달아도 대기업의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생계를 걱정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결코 내 일은 아닐 거라 스스로 안위하며 눈을 감는다.

그렇게 현실을 외면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에게 이 영화는 부조리한 현실을 ‘함께 바라보게’ 만든다. 그것도 이 나라를 먹여 살린다고 대통령도 언론도 대놓고 이야기하는 삼성이라는 대기업이, 그 힘에 알아서 굽실거리는 언론과 사법부가, 평범한 사람을 어떻게 짓밟고 있는지 지켜보게 한다. 외면했던 눈을 들어 여럿이 함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이다.

물론 삼성에 굽실거리는 게 언론과 정부뿐만이 아닌지라 예매성적이나 객석점유율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정상적인 수의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한 채 고군분투 중이다. 그래서 권한다. 정상성을 회복하는 ‘함께 바라보기’를 위해 몇 안 되는 상영관을 뒤져서라도 이 영화를 꼭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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