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집 앞 편의점은 물론 거리 곳곳에서 ‘이 때’가 왔음을 요란하게 알린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선물한다는 날, 밸런타인데이가 코앞이다. 당최 외우기도 힘든 ‘○○데이’가 달마다 있다는데, 밸런타인데이는 그 모든 ‘데이’의 원조 격이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소란스럽다. 빤한 상술이란 생각에 괘씸하기도 하지만, 참 우습게도, 한편에선 ‘나도 뭔가 준비해야 하는 것 아냐?’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문구 때문이다. 이런 날 초콜릿을 챙겨주지 않는 것은 상대방을 덜 사랑하거나 소홀히 여기는 것이다! 사랑을 미끼로 한 초콜릿 회사들의 광고 전략은 적어도 내겐 완전히 성공했다.

사랑을 나타내는 한자로 가장 흔한 것이 愛(사랑 애)이다. 愛人(애인), 愛情(애정), 愛嬌(애교), 애국가(愛國歌) 등 쓰임도 다양하다. 愛를 쪼개면 旡(목멜 기)와 心(마음 심), 그리고 夂(뒤져서 올 치)가 된다. 아주 옛날에는 夂를 뺀 윗부분만으로도 사랑을 뜻했다고 한다.(중문자보, 대만)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음식이 목에 걸려 목구멍이 막히면 아마도 몹시 괴로울 것이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렇게 목이 막히듯 괴로운 마음(心)을 사랑이라 표현했다. 愛의 윗부분을 旡가 아닌 爪(손톱 조)라 보고 손톱으로 심장(心)을 붙잡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괴로움을 나타내긴 마찬가지다.

慈(사랑할 자) 역시 사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가장 오래된 것은 우리가 ‘어질다’는 뜻으로 알고 있는 仁(인)이다. 仁의 원 뜻은 ‘사랑’이다.

仁은 人(사람 인)과 二(둘 이)가 만난 글자다. 二는 하늘과 땅을 뜻하며 三(석 삼)은 여기에 사람을 더한 것, 즉 ‘천지인’ 삼재를 가리킨다고 이전에 쓴 바 있다. 이렇게 보면 仁은 三과 같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仁은 사람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공간은 한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머물지 않고 시시각각 변한다. 광활한 우주 속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인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仁이라는 글자에 답이 들어 있다. 인간이 갖춰야할 최고의 덕목으로 仁을 꼽은 이가 있으니, 그의 이야기를 잠시 빌려와야겠다.

“仁이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오직 仁한 사람만이 남을 좋아할 수도 있고, 남을 미워할 수도 있다” “사람이 되어서 仁하지 못하다면 예의를 지킨들 무엇 하겠는가? 음악을 한들 무엇 하겠는가?”

공자(孔子, BC 551~ BC 479)가 한 이야기들이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문답이 기록돼있는 ‘논어’에는 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仁이 무엇인지, 정확한 정의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임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관계를 채우는 것이 바로 사랑(仁)이다. 오직 사랑만이 인간이 마지막까지 실천해야할 덕목임을 일깨우고 있다. 불교에선 자비(慈悲)를, 기독교에선 사랑(愛)을 내세우고 있으니, 성인들이 한 이야기는 결국 같은 것이다.

공자는 “仁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을 실천하고자 하면 곧 仁은 다가온다”고 했다. 사랑이란 먼 곳이 아닌 우리들 마음속에 있다는 이야기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 과연 무엇이 있을까. 초콜릿으로 향하는 시선을 안으로 돌려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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