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운 인천YMCA 회장
얼마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은 흡연이 질병 발병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건보공단은 이 조사를 위해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지선하 교수팀과 공동으로 1993년부터 2011년까지 18년 동안 발생한 130만명의 질병정보를 분석했다.

남성의 경우 흡연자의 후두암ㆍ폐암ㆍ식도암 발병률이 비흡연자보다 3.6~6.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건강보험 진료비 총46조원 가운데 3.7%에 해당하는 1조 6914억원을 흡연자의 폐암 등과 같은 질병치료비로 지출했는데, 이 금액은 건강보험급여 혜택을 못 받고 있는 173만명의 절반을 구제할 수 있는 규모라고 했다.

이에 건보공단은 흡연이 각종 질병을 일으키고, 이를 담배 제조ㆍ판매회사가 책임져야한다며 담배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크게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담배 소비자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 345원을 지불하고 있는 반면 담배 제조ㆍ판매회사는 전혀 부담하고 있지 않으며, 소비자는 장래 발생할 수 있는 의료비까지 미리 부담하지만 담배 제조ㆍ판매회사는 아무런 부담이 없다는 점이다.

둘째, 담배 제조ㆍ판매회사는 담배가 소비자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경고 문구를 최대한 숨기거나 오히려 ‘마일드’나 ‘순’이라는 부드러운 용어를 사용해 소비자를 현혹해왔다는 점이다.

셋째, 담배 제조과정에서 담뱃잎의 순수 니코틴 성분에 첨가물 600종을 사용해 강력한 ‘1급 마약’을 만들어왔다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담배 제조ㆍ판매회사가 저지른 해악이 엄청나기 때문에 전 세계 168개국 담배 제조ㆍ판매회사에 민형사상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담배 규정 협약을 만들었다.

그동안 국내ㆍ외적으로 담배 제조ㆍ판매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미시시피주 등 45개 주정부가 담배 제조ㆍ판매회사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해 2460억 달러(약 258조원) 규모의 소송에서 승소한 바 있고, 캐나다 8개 주정부에서도 53조원 규모의 의료비 반환 청구 소송을 승소로 이끌어낸 사례가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소송이 세 차례 있었으나 모두 정부 또는 기관이 아닌 개인이 소송 주체로 나서 흡연으로 인한 직접적 피해를 증명하지 못한 채 원고 패소로 결론이 났다. 담배를 결함이 있는 제조물로 볼 수 없고, 담배 제조ㆍ판매회사가 담뱃갑에 흡연의 위험성을 계속 경고해왔기 때문에 결함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번 건보공단의 소송은 십 수 년에 걸쳐 담배 소비자 수백만 명을 분석해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흡연이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직접적 물질임을 밝혀내고 제기한 것이기에 기존 소송과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또한 외국의 사례와 같이 개인이 아닌 기관이 소송의 주체가 됨으로써 해볼 만한 게임이 된 것이다.

건보공단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그동안 건강보험 재정손실을 손쉬운 보험료 인상 등과 같은 관행적 재정 확충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원인 행위자인 담배 제조ㆍ판매회사에 구상권을 행사해 직접적인 책임을 묻는 것으로써 보험 재정을 관리하는 기관의 최우선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 결정이라 생각한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창원시의회가 흡연으로 인한 국민들의 건강피해와 관련해 지방자치단체가 조례 제정으로 담배소송에 적극 나설 것을 주문하는 등, 지자체에서도 힘을 실어주고 있어 담배소송이 전국적인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담배소송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건보공단은 소송과정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해 철저히 준비함으로써 국민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역할을 다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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