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비가 퍼붓는 프랑스의 어느 공항. 아마드와 마리가 재회한다. 둘이 나누는 대화나 몸짓을 보건대 보통 부부 같다. 그러나 아마드와 마리의 재회는 오랜 별거 끝에 이혼수속을 밟기 위한 것이다. 이혼을 앞둔 부부가 얼굴 마주하고 있기가 다소 껄끄러울 것이 분명함에도 마리는 호텔이 아닌 두 사람이 함께 살았던 집으로 아마드를 데려온다. 그 집에는 마리의 두 딸과 낯선 소년 그리고 그 소년의 아버지 사마르가 있다.

사마르는 마리가 곧 결혼할 남자, 즉 아마드와 별거 중에 사랑한 새로운 남자다. 마리는 전 남편과 전 남편의 딸, 미래의 남편이 될 남자와 그의 아들을 한 집에 모아놓은 셈이다.

글로만 설명해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바로 이 불편한 순간으로부터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도 과거의 이야기를.

과거 회상 장면 하나 없이 오로지 현재의 모습만으로 보여주는 과거의 이야기는 더 불편하고 복잡하다. 엄마 마리와 말도 섞으려 하지 않는 큰딸 루시를 달래보려던 아마드는 루시로부터 사마르의 부인이 남편과 마리의 관계를 알고 자살을 기도했다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길 듣는다. 루시의 방황을 어떻게든 해결해주고 싶은 아마드는 사마르의 부인이 자살을 기도한 원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사마르의 부인이 자살하려고 독한 세제를 입에 털어 넣는 장면을 현장에서 목격한, 사마르가 경영하는 세탁소의 직원 아니마로부터 그날의 상황을 들어보니 루시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원래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던 부인인지라 조금은 극단적 상황에 부딪혀 자살을 기도했던 것이다.

자, 이제 과거의 진실이 밝혀졌으니 루시는 방황을 끝내고, 아마드와 마리는 이혼수속을 밟고 헤어지면 되는 것일까? 그러나 한 꺼풀 진실을 밝힌 과거는 아마드와 마리, 사마르, 그리고 루시와 아니마에게 더 복잡한 진실이 기다리고 있음을 예고한다.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의 등장인물과 사건과 배경은 조금은 복잡하면서도 소소한 가족영화의 모습 그대로이지만,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은 마치 미스터리 스릴러처럼 두 시간을 훌쩍 넘기는 러닝타임을 거의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쫀득쫀득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영화는 과거의 진실이라는 미끼로 관객들의 숨통을 끝까지 조이지만, 결국 영화가 끝날 때까지 사마르의 부인이 왜 자살하려 했는지는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는다. 영화가 정작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상처 입은 사람들이 가진 나름의 사연들이기 때문이다.

아마드와 마리는 과거의 부부다. 깔끔하게 이혼수속만 밟으면 될 것처럼 재회했지만, 그들은 예전에 함께 살던 집에서 같이 머물며 수 년 전 감정의 찌꺼기들을 꺼내놓고 갈등에 갈등을 거듭한다. 부인을 ‘아직 죽지는 않았으나, 관계는 자살 기도 이전부터 혼수상태였던 과거’로 단정 지은 것처럼 마리와의 결혼을 추진하고 아이까지 만든 사마르이지만, 부인의 자살기도 원인이 자신의 외도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어떻게든 부인의 의식을 깨워보려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사마르의 부인에게 엄마 마리가 사마르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전달한 과거의 행적 때문에 루시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과거를 없던 일로 만들고 새로운 인생을 살면 될 것처럼 굴던 모든 등장인물들이 ‘사마르의 부인이 왜 자살하려 했는가’라는 질문 앞에 우왕좌왕 과거의 늪에서 허우적댄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한 발짝도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 영화는 우리들이 ‘쿨’하다고 믿는 현재가 과거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과거로부터 상처받았다고, 그래서 과거를 떨치고 싶어 하는 그들을 붙잡는 것은 결국 자신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것이 ‘사마르의 부인이 왜 자살하려 했는지’보다 더 중요한 진실이다.

이 영화는 답이 없는 영화, 그래서 불친절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쫄깃한 재미와 구차하고 비겁하고 안쓰러운 인간의 내면을 만나는 것만으로 충분한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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