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는 드라마가 있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이야기를 담은 ‘바람의 화원’이다. 신윤복을 김홍도의 제자인 동시에 여성으로 설정한 파격적인 상상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드라마를 통해 이름난 두 화가의 그림세계를 맘껏 들여다볼 수 있어 참 좋았다. 드라마를 보면 단원 김홍도가 그린 ‘나비를 희롱하는 고양이(황묘농접도, 黃猫弄蝶圖)’(그림)를 두고 어떤 이가 이런 해석을 한다.

“고양이 묘(猫)자는 한자로 칠십 노인 모(耄)자와 ‘마오’라는 중국 발음이 같습니다. 70을 뜻하는 고양이가 80을 뜻하는 나비를 보고 있으니 이는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이 아닙니까?”

옛 사람들은 그림을 그릴 때도 하나하나 의미를 생각했다. 나비를 나타내는 한자 접(蝶)은 중국에서 ‘디에’로 읽는다. 팔십 세 노인을 뜻하는 한자 질(耋)도 발음이 ‘디에’여서 그림의 고양이와 나비는 둘 다 장수한 노인을 뜻한다.

옛날 옛적엔 70세까지 살기가 정말 어려웠던 모양이다.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는 그의 글 ‘수명이야기’에서 조선시대 일반 백성들의 평균수명을 추정해 계산했다. 추정 근거는 정확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조선 왕 27명의 사망 연령이다. 16세에 살해당한 단종을 제외하면 왕들의 평균 수명은 고작 47.3세이다. 70세를 넘긴 왕은 영조(81세)와 태조 이성계(72세) 딱 둘 뿐이다.

황 교수는 “의식주 생활에 궁핍함이 전혀 없고 의료혜택도 가장 많이 받았을 국왕이 백성보다 오래 산 것은 당연하다”며 백성들의 평균 수명을 35세 전후로 추정했다. 2011년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수명이 81.2세인 것을 생각하면, 지금 세대는 인생을 두 번 살고도 십여 년을 더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임금도 나이 오십을 넘기기 어려운 시기에 보통 사람들에게 일흔, 팔순이라는 나이는 지극히 도달하기 어려운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림 속 고양이와 나비가 장수에 대한 얼마나 큰 염원과 바람을 담고 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다시 그림을 들여다보자. 아직 그림의 전모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바람의 화원’에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이 꽃은 패랭이 꽃(그림 왼편에 활짝 핀 꽃)입니다. 그리고 아래에 있는 꽃은 제비꽃입니다. 제비꽃은 이른 봄에, 패랭이꽃은 초여름에 피는데 어째서 두 꽃을 같이 그렸을까요?”

두 꽃의 비밀 역시 이들의 한자 이름에 열쇠가 있다. 패랭이꽃은 한자로 석죽화(石竹花)라고 한다. 바위(石)는 세월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으므로 이 또한 장수를 의미한다. 제비꽃은 그림에서 보듯 꽃줄기가 휘어져 있다. 중국 사람들은 가려운 곳을 긁는 데 사용하는 효자손을 여의(如意)라 했는데, 제비꽃의 모습이 그와 비슷해 여의초(如意草)라 불렀다고 한다. 한자 ‘如意’는 ‘뜻(意)과 같이(如)’란 뜻으로, 그림의 제비꽃은 ‘뜻대로 이뤄지길 바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새해가 밝았다. 한자의 유희가 가득 담긴 김홍도의 그림을 빌어 <인천투데이> 독자들께 고개 숙여 새해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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