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성윤 한의사(푸른솔한의원 원장)
안녕하다는 사전적 의미는 아무 탈이나 걱정이 없이 편안하다는 것이다. 육체적으로는 아픈 데가 없고 정신적으로는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라고 할 수도 있겠다. 통증과 스트레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을 넘어서면 사람은 살기 위한 발버둥을 치게 된다. 지금의 ‘안녕하십니까’ 열풍은 사회적 통증과 스트레스 지수가 임계치를 넘어섰다는 반증이다.

지난 정권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됐던 불통의 문제가 이번 정권 들어서는 ‘먹통 단계를 넘어 꼴통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들 한다.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라했다던 프랑스혁명 당시 왕비의 이름을 빌려 ‘말이 안통하네뜨’라고 불리게 된 대통령. 그래서 누군가는 ‘박근혜가 되면 이명박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했나보다.

‘通卽不痛 不通卽痛’(통즉불통 불통즉통)은 이제 아주 흔하게 인용되는 동의보감의 아포리즘이다. 통하면 안 아프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것이다. 우리 몸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동적유기체다. 피, 호르몬, 각종 신경 전달물질, 내분비물질,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가 흐른다. 이러한 각종 순환이 어딘가에서 막히면 거기서 통증이 발생한다.

통증은 몸의 이상 징후를 알려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치명적인 결과를 사전에 막을 수 있게 해준다. 때문에 통증 발생 시에는 그에 대한 원인을 시급히 찾아내어 적절히 조치해야한다. 통증에 대처하는 부적절한 의료조치는 꾀병이나 중독이 아닌 의사의 공감능력 부재에서 온다.

독점적 지위와 기득권을 위한 귀족노조의 싸움(철도노조 파업), 노력 안 해서 좋은 직장 갈 능력이 없는 열등 인간들의 아우성(취업 걱정하는 대학생), 땅값 더 받아 보려는 전형적인 님비(밀양ㆍ강정),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라(망해가는 자영업) 등.

이러한 주장에서 꾀병을 의심하거나 중독을 걱정해 통증에 부적절하게 대처하는 공감능력을 상실한 의사의 모습을 본다. 한심한 것은 지배권력의 공감능력 부족 정도로는 현실을 표현하는 데 한계를 느끼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킹덤 오브 헤븐>이란 영화가 있다. 나병으로 죽은 삼촌을 대신해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된 어린 왕은 손에 촛농이 떨어져도 뜨거운 줄을 모른다. 이를 본 왕비와 신하들이 보여주는 갑작스러운 정적과 당혹. 어린 왕의 운명은 안락사로 귀결된다.

나병이 무서운 것은 그 전염성이나 흉측한 기형 유발 때문이 아니다. 나병균으로 사람이 금방 죽는 것도 아니고 그 균 자체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도 아니다. 다만 통증을 느끼게 하는 신경섬유를 파괴해 뇌로 통증감각을 전달하지 못하게 할 뿐이다.(물론 요즘 한센병은 예전만큼 그리 무서운 병은 아니다)

나병환자 대부분의 신체 손상은 거의 국부적인 고통을 못 느끼는 데서 비롯된다. 통증은 그래서 축복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축복을 걷어차고 있는 저주받은 육체와 같다.

통증을 통증으로 인식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때만이 우리는 더 심한 질병으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제반문제, 즉 사회적 통증에 적절히 대처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안녕’을 위한 길이다. 지배 권력이 사회의 나병균이 되면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불행해진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