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 비정규직 농성 지원한 정규직 노동자들 흉악범으로 몰아
용산 참사와 쌍용자동차 등 사태 때 시도했다가 지탄 여론에 밀려

인천지방검찰청이 2010년 12월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 비정규지회의 해고자 복직 요구 농성을 지원했던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조합원에게 유전자(DNA) 채취를 요구해 파장이 일고 있다. 금속노조는 노동탄압이자 인권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인천지검은 지난 2일 한국지엠지부 조합원 김아무개씨에게 전화를 걸어 “디엔에이(DNA) 신원 확인 정보의 수집ㆍ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DNA법)’에 규정된 DNA 시료 채취 대상자로서 DNA 채취를 위해 인천지검 공판 송무과를 방문하라”고 했다.

또한 3일과 5일 두 차례에 걸쳐 오후 5시까지 인천지검 공판 송무과로 출석하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인천지검은 김씨를 포함해 4명에게 우편으로 DNA 채취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사건은 2010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건이 발생한 2010년 12월 3일은 2007년 9월 2일 설립된 한국지엠(당시 GM대우) 비정규직지회가 해고 노동자 35명의 복직을 요구하며 한국지엠 부평공장 정문 아치에서 농성한 지 사흘 째 되는 날이었다.

한국지엠지부와 비정규지회, 시민사회단체가 아치 위 농성자들에게 음식물을 제공하려하자, 회사 쪽이 이를 막았다. 회사가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이 날카로운 낫을 길이가 4~5m 되는 쇠파이프에 묶어 높이 10m 아치 위로 올리던 음식물을 차단했다. 이에 항의하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낫을 휘둘러 일부 참가자의 이마가 찢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낫이 동원된 현장에서 아무런 대응도 취하지 않았다.

이게 격분한 한국지엠지부와 비정규지회 조합원 등 당시 집회에 참여했던 이들이 공장 외벽 건너편 한국지엠 직원과 회사가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을 향해 플라스틱 파이프를 집어던지는 등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 2010년 12월 3일, GM대우(현 한국지엠) 부평공장 정문 아치에 올라 농성하고 있는 해고노동자(GM대우 사내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두 명에게 음식물을 전달하려하자, 회사 쪽이 낫으로 줄을 끊으려하고 있다.(인천투데이 자료사진) 이에 아치 아래에 있던 집회 참가자들이 항의하는 와중에 낫을 휘둘러 일부 참가자의 이마가 찢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현장에서 아무런 대응도 취하지 않았다. <인천투데이 자료사진>
이 사건으로 한국지엠지부와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진보정당 관계자 등 모두 8명이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폭처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이중 2명은 벌금형에 처해졌으며, 6명은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6명과 벌금형을 받은 1명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했다.

이후 인천지검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6명 중 4명에게 DNA 채취를 위해 인천지검으로 출석하라고 연락한 것이다. 채취 이유는 폭처법상 ‘흉기 상해’에 해당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검찰은 김아무개씨에게 채취를 거부할 경우 영장을 발부해 강제로 채취하겠다고 경고했다.

DNA 채취는 흉악범(살인ㆍ성범죄ㆍ마약)에게 시행하고 있는 제도로서, 살인이나 아동성폭력 등 재범 위험성이 높은 강력범의 DNA 감식 시료를 채취해 범죄 수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DNA를 채취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인권 침해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금속노조는 “노동운동가를 흉악범으로 대하는 몰상식이다. 노동 사범의 형이 확정됐다고 DNA 채취를 강제한다는 것은 실정법을 확대 해석하는 것이다. 게다가 DNA법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악법 중에 악법”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용산 참사 피해자들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DNA 채취를 시도했지만, 인권 침해 등 여론이 악화되자 뒤로 물러섰다.

대검찰청 과학수사기획관조차 노동 사범에 대한 DNA 채취에 대해 2011년 ‘강력 사범과 성격이 다르다’며 관련법 적용 기준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인천지검으로부터 DNA 채취를 요구받은 대상자들과 금속노조는 인천지검의 요구를 거부하는 한편, 헌법 소원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진행 중인 'DNA법 위헌' 헌법소원에 참여하고 있는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신훈민 변호사는 “해당 사건은 DNA 채취가 필요한 강력 범죄에 해당하지 않고, 유전자 분석 없이도 범인이 특정될 수 있으며, 노사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범죄로 재범률이 높다고 볼 수도 없다”고 한 뒤 “또 법원에서도 본 사건 피해자들이 현실적으로 입은 피해가 아주 크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점을 고려해볼 때, DNA법에 따른 채취 필요성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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