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 읽기 - 푸쉬 라이엇: 펑크 프레이어

푸쉬 라이엇: 펑크 프레이어(Pussy Riot: A Punk Prayer)
마이크 러너, 막심 포즈도롭킨 감독 | 2013

 
7회 여성인권영화제 개막작 ‘푸쉬 라이엇: 펑크 프레이어(Pussy Riot: A Punk Prayer)’를 봤다.

푸쉬 라이엇은 러시아의 페미니스트 펑크록밴드로 복면을 쓰고 게릴라 콘서트를 벌이는 예술가집단이다.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번화가의 차도 위에서 갑자기 나타나 괴성을 지르며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한다. 그들의 노래는 러시아의 현 정치상황에 대해 도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펑크 밴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들의 복면은 빨강ㆍ주황ㆍ초록 형광색이고, 스타킹도 총천연색이다. 복면을 쓰고 있기에 복면 속 그들이 누군지 사람들은 알지 못했고,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진 러시아에서 그들의 게릴라 콘서트는 그저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 2월 21일 러시아에서 가장 큰 성당, 러시아정교회의 성당인 구세주그리스도성당 미사 시간에 벌인 한 번의 콘서트로 푸쉬 라이엇은 세계적 명성을 얻는다. 지금까지 아방가르드하고 전위적인 퍼포먼스 정도로 치부됐던 그들의 행위를 도저히 용납하지 못한 러시아 푸틴 정권과 러시아정교회 쪽의 강력한 대응 덕이었다.

경범죄로 넘어갈 줄 알았던 푸쉬 라이엇의 콘서트에 러시아 법정이 3년을 선고하면서 푸쉬 라이엇은 푸틴 정권이 권위주의 정권임을 전 세계에 알렸고, 엠네스티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푸쉬 라이엇 석방운동을 벌였다. 비틀즈의 폴 메카트니, 마돈나, 오노 요코, 비욕, 스팅을 비롯한 세계적 예술가들도 푸쉬 라이엇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거나 자신의 공연에서 푸쉬 라이엇 석방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무대에 올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구세주그리스도 대성당에서 공연을 한 푸쉬 라이엇의 마리아 알료키나, 나데즈다 톨로코니코바, 예카테리나 사무체비치가 러시아 법정에서 내뱉은 한 마디 한 마디는 감동 그 자체였다.

그들은 자신을 엄청난 범죄자 취급하는 법정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해, 푸틴 대통령의 비민주성에 대해, 자신들의 행위가 지닌 정당성에 대해 조리 있게 주장했다. 법원 판결이 결코 유리하게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에서도 시종일관 유쾌하고 유머 넘치는 모습을 잃지 않았다. 이제 겨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밖에 되지 않은 젊은 여성들이 어쩌면 저렇게 의연하게 자신의 신념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감동이 큰 만큼 참담함과 당혹감도 컸다. 10년 넘게 활동해온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하루아침에 법외노조가 됐다. 대통령선거 당시엔 모든 후보가 약속했던 공무원노조 합법화는 물 건너갔다. 헌법에 기초해 만들어지고 국회의원, 지방의원까지 배출한 공당에 국무위원회는 해산 결정을 내렸다.

영화를 보는 내내 푸쉬 라이엇을 어떻게든 중형에 처해 유배지에 가둬두려는 푸틴 정권의 모습에 대한민국의 현재가 겹쳐졌다. 푸쉬 라이엇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웃음거리가 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권위주의와 비민주성은 지금 대한민국 정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란 생각에 쓴 웃음이 나왔다.

푸쉬 라이엇은 감옥에 갇혔지만 그래도 법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생중계로 러시아 국민은 물론 세계 시민에게 전해졌다. 푸쉬 라이엇의 변호사는 판사의 권위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중형을 받을 수밖에 없는 법정의 권위적 구조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심지어 러시아 재판부엔 1심에서도 2심에서도 여성 판사가 반드시 들어 있고, 재판장은 죄다 여성이다. 권위적이라고 세계적으로 손가락질 받는 러시아보다 대한민국이 나은 구석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다.

푸쉬 라이엇에서 푸쉬(Pussy)는 러시아에서 ‘더러운 질’이란 뜻의 비속어다. 한마디로 여자들을 폄훼하기 위한 욕이다. 푸쉬 라이엇은 여성을 비하하는 말을 스스로 택해 자신들의 이름으로 사용함으로써 라이엇(러시아 말로 봉기·반란을 뜻함)을 행하고자 한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도 푸쉬 라이엇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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