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성윤 한의사(푸른솔한의원 원장)
“원장님, 잠깐 궁금한 게 있어서요”

발목이 삐어 침을 맞으러 온 20대 여성이 침을 맞고 나가면서 진료실 문을 열고 말한다. 들어오라고 한 후 무엇이 궁금한지 묻는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자신이 무슨 체질인지 궁금하단다. 표정이 무슨 심리 테스트하는 듯하다. 자신의 체질을 물으며 무슨 음식이 좋은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떠도는 정보에 의거해 자신의 체질을 규정해놓고 이를 확인하려는 사람도 많다.

사실 한의사라고 해서 사람의 체질을 단시간에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체질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외모, 성격, 자주 앓는 병증을 모두 살펴야한다. 외모의 경우 용모나 체형뿐만 아니라 걸음걸이, 목소리의 높낮이도 구별해야한다. 성격의 경우 대인관계나 타고난 재주, 희로애락을 느끼는 강도가 다르다.

더욱이 타고난 본성은 사회적 관습으로 억눌리거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학습돼 깊숙이 숨어있기 일쑤다. 병증은 태어나서 현재까지 병의 궤적을 면밀히 추적해야한다. 이런 것을 종합해 체질을 판단하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사상체질의학을 창시한 동무 이제마 선생도 체질 진단에 애를 먹었다는 여러 가지 일화가 전해내려 온다.

그중에 하나. 어느 날 선생의 집으로 병색이 짙은 처녀가 찾아왔다. 선생은 그 처녀에게 옷을 다 벗으라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의사의 지시를 거부하기는 힘든 일. 처녀는 머뭇거리면서도 옷을 모두 벗었다. 그러나 차마 마지막 속옷은 벗지 못했다. 선생은 갑자기 그 처녀의 마지막 남은 속옷을 낚아챘다. 그러자 처녀는 악을 쓰며 비명을 질러댔다.

처녀의 이런 행동을 보고 선생은 빙그레 웃으며 그 처녀를 소양인으로 진단했다. 물론 병자를 대하는 이러한 방법이 옛날이라고 해서 쉽게 용인됐을 리가 없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괴이쩍다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이렇게 무리한 방법을 동원해야 간신히 체질을 진단할 수 있었음을 말해주는 일화다.

체질 구별이 어렵다고 해서 체질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땀을 흘려야 개운한 사람이 있고, 땀을 흘리면 휘어지는 사람이 있다. 장에 문제가 생기면 변비가 걸리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설사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 몸놀림이 경쾌한 사람이 있고, 장중한 사람이 있다. 여럿이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혼자 있는 것이 편한 사람이 있다.

분노를 못 참는 사람이 있고, 자주 슬픔에 빠지는 사람이 있다. 때에 따라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한 인간의 심신을 규정하는 기본적인 흐름은 분명 존재한다. 이런 것을 체질이라 하며 유전적, 후천적으로 형성된 신체의 기능 구조 또는 심리적으로 표현되는 비교적 안정된 개체의 특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체질을 구별해 보다 정확한 치료를 행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많은 방법이 모색됐지만 아직도 간단하게 체질을 판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QSCC(Questionnaire for the Sasang constitution Classfication: 사상체질분류검사)와 같은 설문지를 이용한 방법, 지문, 체형, 심지어 유전자까지 이용해 객관적으로 판별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아직 100% 객관적으로 체질을 판정하는 방법은 없다. 때문에 보다 정확한 체질을 판정받으려면 아직은 전문가인 한의사의 종합적인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오랫동안 자신을 치료해온 한의사가 보다 정확히 자신의 체질을 파악하고 있다고 하겠다.

처음 한의원을 방문해 자신의 체질을 묻는 환자들에게 필자는 단정적으로 체질을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사상체질의 특성들을 이야기해주고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 것 같으냐고 되묻는다. 정확히 말할 수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체질을 물으며 체질에 맞는 음식은 뭐가 있냐고 묻는 사람에게는 그저 골고루 먹으라는 말로 대신한다.

자칫 잘못된 판단에 따른 음식 섭취로 건강에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체질과 체질에 맞는 음식을 정해놓고 그것을 100% 지켜가며 살 수 있는 사람도 없다. 큰 불편함이 없으면 체질을 신경 써가며 복잡하게 살 필요 없다. 오히려 그걸 지키느라 생기는 스트레스로 병이 나지는 않을까. 체질? 몰라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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