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를 좋아한다. 병아리나 참새는 물론, 제비, 두루미, 까치, 직박구리, 그리고 비둘기까지 하나같이 예쁘고 귀엽고 멋있다. 새와 관련해 떠오르는 기억도 꽤 많다.

어린 시절, 느닷없이 마당으로 날아와 잠시 우리 집에 머물다 간 노란 새, 추석 무렵 갑자기 몰아친 돌풍에 담벼락에 머리를 부딪쳐 숨을 거둔 새끼 제비, 따갑고 억센 가시덤불을 헤치고 탱자나무 사이사이로 빼곡히 숨어든 참새 떼(그물을 던져 잡고 싶었다), 논물에 한쪽 발을 담그고 한 다리는 고고하게 접은 채 서 있는 두루미, 사납게 비가 내리는 회색 도시에서 빗물을 차고 거침없이 날아오르던 비둘기….

아!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올라갔던 경기도 어느 산꼭대기에서 만난 까마귀도 잊지 못한다. 이산 저산으로 떼 지어 옮겨 다니다 해질 녘 갑자기 거세진 서풍을 맞으며 큰 날개를 펼치고 활공하던 까마귀 무리. 바람에 깃털을 날리며 공중에 떠 있는 까마귀의 모습은, 기껏 하늘 한 번 날아보겠다고 무거운 짐을 싸 짊어지고 산을 오른 내 눈에, 당당하고 의연해보였다.

새를 나타내는 한자 중 대표적인 것으로 鳥(새 조)와 隹(새 추)가 있다. 鳥에서 윗부분은 새의 부리와 눈, 머리, 몸통을 그린 것이다.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까지 늘어진 큰 획은 새의 날개와 꼬리를, 그리고 맨 아래에 있는 점 네 개는 새의 발을 나타낸다.

鳥에서 눈을 나타낸 한 획만 빼면 까마귀를 나타내는 烏(오)가 된다. 대부분의 새는 깃털과 눈 색깔이 서로 달라서 눈이 잘 드러나지만, 까마귀는 털이며 부리, 눈동자, 발가락까지 온통 까만색이다 보니 눈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鳥와 烏는 생김이 비슷해 한자의 뜻이 옳게 풀이되지 않은 것을 찾는 시험문제로 자주 등장했다. 확실히 구분할 줄 알게 된 지금, 조금 억울하다.

隹(추) 역시 새의 모습을 본떴다. 鳥에 비해 날개의 깃털을 훨씬 더 풍부하게 그렸다. 허신의 ‘설문해자’에는 꼬리가 긴 새를 鳥, 꼬리가 짧고 통통한 새를 隹로 쓴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꼭 들어맞는 해석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길고 짧음은 상대적인 것이라 그 둘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꼬리가 긴 편에 속하는 꿩(雉 치)에 隹가 들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隹는 단독 글자로는 사용하지 않고 다른 글자와 함께 쓰인다. 集(모으다 집)은 나무(木)위에 새(隹)들이 앉은 모습을 나타낸다. 나무가 있는 곳으로 새들이 모이기 때문에 ‘모으다’는 뜻을 갖게 됐다. 進(나아갈 진)은 ‘간다’는 뜻의 (쉬엄쉬엄 갈 착, 책받침)과 함께 쓰여 새처럼 빠르고 순조롭게 움직이거나 일이 진행된다는 의미에서 ‘나아가다’는 뜻이 생겼다.

鳥와 隹를 섞어 놓은 듯한 글자로 馬(말 마)가 있다. 隹가 깃털을 표현했듯, 馬의 윗부분은 갈기를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왼쪽에서 오른쪽 아래로 이어진 긴 한 획은 말의 등과 엉덩이, 긴 꼬리를 죽 그려놓은 것이다. 아래 점 네 개는 말의 다리를 그린 것인데, 마치 발이 땅에 닿지 않고 공중에 떠서 가는 것처럼 빨리 달리는 모습을 생생하게 나타냈다.

가을은 철새들에게 고난의 계절이다. 이즈음 뻐꾸기나 제비 같은 여름 철새는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하고, 대신 기러기와 흑두루미 등 겨울 철새들이 우리나라를 향해 기나긴 날갯짓을 시작한다. 새들이 철새 도래지에서 떼 지어 이루는 장관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고 해마다 노래를 부르면서도 여태껏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늘 가려다 마는 데는 게으름도 한 몫 하겠지만, 내 호기심과 욕심으로 인한 발걸음이 먼 길을 날아와 삶을 꾸려가는 철새들에게 혹여 방해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올 해는 미안한 마음은 잠시 한편으로 접어두고, 일단 가보려 한다. 순천만으로 갈까, 천수만으로 갈까, 아니면 금강으로 갈까. 조만간 그들을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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