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장준환 감독│2013년 개봉

지금까지 수백 년, 수천 년 쓴 물 단 물 다 빨아먹은 소재였던 어머니는 요즘 찬밥신세다. 요즘 트렌드는 확실히 아버지다. 흥행한 영화를 보아도 드라마를 보아도, 심지어 예능오락 프로그램을 보아도 아버지로 승부한다.

숭고하기 이를 데 없고 눈물 콧물 다 빼는 감동의 토네이도를 보여주었던 어머니, 즉 모성은 더 이상 상품가치가 없는 것일까? 수천 년 쌓아온 모성의 신화가 드디어 무너진 것이라면 참으로 반가운 일이지만, 최근 다양한 장르에서 변주되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버지의 탈을 쓴 모성, 엄마 따라 하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하니 그런 기대는 일찌감치 접어야겠다.

아무튼, 각종 매체에 아버지들이 범람하는 시대, 아버지를 죽이는 영화가 나왔다. 그것도 한 명의 아버지가 아니라, 생물학적 아버지로 시작해 사회적 아버지 다섯까지, 무려 여섯 아비를 죽이는 아들 이야기다. <지구를 지켜라>로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의, 어쩌면 유일한 컬트영화를 만들었던 장준환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가 바로 그것이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 오락프로그램의 아버지들은 아들(가끔은 딸)을 사랑하기 위해 필사적이다. 그러나 그 방식은 다 다르다. 어떤 아버지는 사랑과 자비를 베풀고, 또 어떤 아버지는 막역한 친구처럼 장난을 친다. 어떤 아버지는 아들의 성공을 위해 기러기아빠를 자청한다.

영화 화이(여진구 분)의 아버지, 여섯 아비 중 화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이자 아비들 중의 리더 격인 석태(김윤석 분)는 자신의 세계관을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수하고자 하는 아버지다. 이 영화가 잔인한 범죄 스릴러의 옷을 입고 있어서 그렇지, 석태의 모습은 우리시대 많은 아비들의 모습과 매우 비슷한 점이 많다. 많은 아버지들이 자신이 살아온 개인적 경험을 절대화시켜 그것이 진리인 양 아들에게 강요한다. “이게 다 너를 위한 것”이라는 사랑의 명분으로.

석태는 자신이 괴물, 즉 인정사정없이 사람을 죽이는 킬러로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명확히 정리하고 있다. 이 세상이 괴물이기 때문이다. 부모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고아로 자란 석태에게 이 세상은 괴물이었다. 가끔씩 전해지는 착한 부자들의 선심 역시 자신의 계급적 처지를 처참하게 일깨우는 또 다른 고통일 뿐이었다. 괴물 같은 세상에 짓눌려 괴로워하던 석태는 스스로 괴물이 되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괴물을 이기려면 괴물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문제는 석태가 경험으로 얻은 진실(이것이 석태에게는 유일한 진리였을 수도 있다.)을 아들 화이에게 강제로 주입하고자 했다는 것. 그러나 아들은 결코 아비의 세계관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화이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아들들이 가진, 어쩌면 다음 세대가 가진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아버지에 반(反)하는 아들이 없이 새로운 세계는 열리지 않는다.

영화 속 아들 화이는 여섯 아비를 모두 죽였다. 생물학적 아비는 아비인 줄 모른 채 석태의 강요로 죽일 수밖에 없었고, 생물학적 아비를 죽이게 만든 나머지 다섯 아비는 철저히 화이의 의지로 죽였다. 마지막으로 석태를 향해 총을 쏘는 순간, 화이는 말 그대로 천애고아가 된다.

자, 이제 아비를 죽였으니 화이는 지난 아버지들의 시대와는 다른 세계를 만들 수 있을까? 선행을 베푸는 착한 자본가였던 생물학적 아버지를 넘을 수 있을 것인가, 괴물 같은 세상에서 괴물과 맞서기보다 스스로 괴물이 되기를 택한 사회적 아버지를 넘을 수 있을 것인가. 2시간 남짓한 영화는 이에 대해 충분히 보여주지도 설명하지도 못한다.

다만 그 모든 것을 넘어 이런 괴물 같은 사회를 만든 시스템의 상징으로 보이는 진 사장(문성근 분)을 살해하는 것으로 복수의식을 마무리하는 엔딩씬을 통해, 괴물을 삼키고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모습으로 아비들을 살해한 화이가 지난 세대와는 다른 세계를 살 수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기대를 가져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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