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인천환경영화제 준비팀, 권근영ㆍ임기웅ㆍ청산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김창완의 노래 ‘어머니와 고등어’의 한 소절이다. 고등어를 냉장고에 넣어 놓고 주무시는 어머니의 평범한 일상을 표현한 노래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식탁에 오른 고등어를 마냥 반길 수 만은 없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파괴된 이후, 바다로 흘러든 방사성 물질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동경로가 넓은 어류 등 수산물은 근심의 표적이 됐다. ‘국민 생선’ 고등어의 위상도 급격히 추락했다.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원전사고 여파가 우리 식탁에까지 파고들면서, 원전을 포함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하지만 심각성에 비해 개인들이 하는 고민은, 이웃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행동방안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10월 25일부터 31일까지 ‘추억극장 미림’(옛 미림극장)에서 열리는 ‘4회 인천환경영화제-도시의 나이테’는 환경에 지역이라는 주제를 더해 먼 곳이 아닌 지금 살고 있는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자고 제안한다.

영화제 준비에 막바지 힘을 쏟고 있는 권근영(25), 임기웅(34ㆍ영상제작자), 청산(48ㆍ생활문화공간 ‘달이네’ 운영자)씨를 지난 16일 청산씨가 운영하는 헌책방 ‘나비 날다’에서 만났다.

무작정 의기투합, 맨손으로 일군 영화제

▲ 4회 인천환경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는 임기웅, 권근영, 청산씨(왼쪽부터).
책방에 들어서자, 세 사람은 천에 코를 박고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폐현수막에 자투리 천을 이용해 ‘인천환경영화제’ 글자를 손바느질로 덧붙이는 중이었다. 바지런히 손을 움직이면서도 영화제 진행사항을 점검하느라 입도 편히 쉬지를 못한다. 인천환경영화제는 2009년 열린 ‘5회 인천여성영화제’ 환경 섹션에서 영화를 상영한 것이 계기가 됐다.

부평구 산곡동에서 ‘기린한약국’을 운영하는 이현주 한약사가 당시 기획과 진행을 맡았다. 이듬해까지 인천여성영화제의 한 꼭지로 환경영화제를 진행해오다, 2011년 3회 영화제는 가톨릭환경연대ㆍ인천녹색연합ㆍ인천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가 주축이 돼 영화제를 이끌었다.

한 단계 성장하려는 이 찰나, 오히려 영화제는 멈칫했다. 지난해 환경과 관련한 굵직한 사건이 많이 발생하면서 시민단체에서 영화제를 진행할 여력이 없게 된 것. 명확한 주체가 없으니 의욕이 있는 누군가 영화제를 주도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자칫 올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임기웅씨가 나섰다. 그는 1회 때는 관객으로, 2회부터 영화제 기획에 참여해 온 터였다.

그는 평소 친분이 있던 권근영씨와 청산씨를 끌어들였다. 8월, 근영씨가 두레생협에 환경영화제와 관련한 제안서를 낸 것이 채택돼 지원금 150만원을 받게되면서, 영화제 준비는 탄력을 받았다. 주1회 정기적으로 여는 회의 외에도 수시로 만나 영화제 진행 사항과 고민을 나눴다. 영화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장소 섭외, 포스터 디자인과 배포 작업에 세 사람이 직접 움직였다.

환경문제 해결에 지역 감수성 필요해

 
이번 환경영화제에는 환경에 ‘지역’이란 주제를 더하고, 부제도 ‘도시의 나이테’로 정했다. 상영작 열세편 가운데 인천을 주제로 한 영화가 다섯 편이나 된다. 환경과 지역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기웅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이 자신의 삶과 무관하지 않은데, 도시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자기 지역에 대한 감수성을 잃어버린 채 사는 것 같아요. 내 지역을 소중히 여겨야 다른 지역의 삶도 소중히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환경문제는 여러 가지가 서로 연결돼 있는데, 결국은 가까운 곳에서 출발해야한다는 점에서 지역과 만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영상 제작을 주업으로 하는 기웅씨는 2회 환경영화제에선 ‘육식몸짱 vs 채식몸짱’을, 3회에선 ‘고잔갯벌’을 제작해 상영하기도 했다.

“북극곰의 삶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까운 내 지역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북극곰의 삶도 좋아질 수 있거든요” 근영씨가 기웅씨의 말을 이어받았다. 근영씨는 서울의 한 극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교육 관련 워크숍에서 기웅씨를 만나 그에게 환경영화제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하게 됐다.

“배다리 지역이 재개발로 시끄러운 곳이잖아요. 환경문제는 오래된 것을 부수고 돈을 들여 새 것을 지으려는 개발논리와 깊은 관계가 있어요. 저는 각자의 생활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어떤 사회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봐요. 뭐든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이 생활 속에 녹아나야죠. 이런 제 생각과 환경영화제가 잘 맞아 작업에 참여했어요” 청산씨의 이야기다.

회의 장소를 제공하고 환경영화제에서 선보일 프로그램을 기획한 청산씨는 오래 전부터 환경과 지역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서울에서 회사 생활을 하며 한 환경단체 회원으로 가입해 잠시 간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안적인 삶을 고민하던 중, 재개발 문제로 떠들썩하던 동구 배다리 일대를 눈여겨보다 2009년엔 아예 이사를 왔다.

환경영화제라 종이컵 사용 쉽지 않아

 
‘지역’을 내세운 만큼, 영화 상영 장소도 얼마 전 ‘추억극장 미림’으로 재개관한 옛 미림극장이다. 개막작으로 상영할 영화는 ‘박문여자고등학교 이전’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인 장경희 감독의 ‘동구 밖’. 뭔가 맞아 떨어진다.

영화 상영 이외에 특별한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상영작 중 하나인 ‘모래가 흐르는 강’의 지율스님이 직접 4대강 현장을 기록한 ‘4대강 사진전’, 대기업이 통째로 사들여 골프장과 리조트를 지으려 나선 굴업도의 풍광을 담은 ‘굴업도 사진전’을 ‘스페이스 빔’에서 연다.

또, 27일 오후 3시에는 동인천을 중심으로 즐비했던 옛 극장들을 탐방하는 투어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애관극장에서 시작해 싸리재~배다리헌책방거리~산업도로부지~피카디리극장~오성극장이 있던 장소를 지나 미림극장까지 걸으며 변천 과정과 의미를 직접 보고 듣는 시간이다.

옛 양조장 건물을 개조한 배다리 ‘스페이스 빔’의 민운기 대표가 해설사로 나선다. 두 시간 정도 투어를 마치고 미림극장으로 돌아와 오후 6시 상영하는 영화를 볼 수 있게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이들은 두레생협에서 받는 지원금 이외에, 지방자치단체나 기업체에서 받는 일체의 후원금 없이 영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포스터도, 상영작을 소개하는 전단도, 많이 발행하지 못했다.

청산씨는 “환경영화제이다 보니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게 없더라”며 또 다른 어려움도 털어놨다. 그는 “관객들에게 차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 종이컵을 쓸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음료수를 후원받을까도 생각했는데, 캔과 페트병 등 쓰레기가 나오잖아요. 고민하다가 환경운동연합과 두레생협에서 컵을 빌려 쓰기로 했어요. 따뜻한 차 한 잔씩 드릴 수 있어 다행이에요”라며 웃었다.

영화는 평일 오후 7시, 토요일과 일요일엔 오후 6시에 상영한다. 25일 개막작 ‘동구 밖’과 26일 ‘모래가 흐르는 강’은 상영 후 감독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했다. 모든 영화는 선착순 무료입장이다.(상영정보ㆍhttp://blog.naver.com/incheongff)

 
>>동구 밖(개막작) = 고3을 앞둔 그해 겨울 우리는 10년 뒤 자신에게 편지를 썼다. 1999년 12월 31일, 인천 박문여고 2학년 의반의 타임캡슐은 밀봉됐다. 어느 날, 나의 중ㆍ고등학교가 송도신도시로 이전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플래카드가 동네방네 달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동창회 측에서 달아놓은 학교 이전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이건 아니다. 10년 후 선생님과 함께 타임캡슐을 열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하는데…. 이제 난 어떡하지? 학교는 왜 송도로 이전하려는 걸까.

>>모래가 흐르는 강 = 2008년, 4대강 착공식 뉴스를 보고 산에서 내려와 물길을 따라 걸으며 무너져 가는 강의 변화를 카메라에 담았다. 수해 예방, 수자원 확보, 수질 개선, 경제발전 등 정부의 화려한 구호와는 정반대로 내 눈이 보고 있는 것은 무너져가고 파괴되는 섬뜩한 국토의 모습이었다.

낙동강의 지천인 내성천으로 올라온 것은 본류 공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4대강 공사장은 다시 기억하기조차 힘이 들지만 내성천과 같은 모래지천이 있기에 시간이 지나면 강이 스스로를 회복해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성천 하류에는 두 개의 보 계획이 세워져 있었고, 상류에는 물과 모래를 가두는 댐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산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수몰지구 안으로 들어왔다.

>>도쿄연가 = 까마귀의 노래 = 거대한 디지털 도시이자 마르지 않는 대중 문화의 샘, 도쿄. 하지만 이 도시의 주인은 까마귀다. 빌딩과 송전선 등 도심 곳곳을 장악한 까마귀 2만마리가 도심 곳곳을 장악하며 살고 있는, 인간과 까마귀가 공존하는 묘한 공간 도쿄.

하지만 영화는 그저 까마귀와 인간의 공존을 이야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까마귀에 대한 도시민들의 반응을 하나씩 담아가면서 도쿄라는 대도시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속의 사람으로 채워지는 거대한 하나의 지형도를 그린다.

>>트럭농장 = 대도시 뉴욕을 배경으로 도시농업과 텃밭의 현재와 가능성을 살펴보는 기발하고 유쾌한 뮤지컬 다큐멘터리. 감독은 직접 낡은 픽업트럭의 짐칸을 개조해 움직이는 농장으로 탈바꿈시키고 옥상녹화기술과 대물림 씨앗을 이용해 뉴욕 한복판에서 채소를 기를 수 있는 그만의 농장을 완성한다.

브루클린을 출발해 뉴욕을 횡단하며 옥상과 소형 선박, 오래된 야구경기장, 맨해튼 아트 스튜디오 등 도심 속 곳곳에 마련된 도시농장들을 찾아가 왜 도시인들이 다시 땅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지 탐구한다. 당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자라고 있는 당신의 먹을거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후쿠시마의 미래(폐막작) = 21세기 최대의 재앙이라 불리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2년.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는 후쿠시마의 두려운 미래를 찾아 평범한 일본 시민 17인이 위험한 여정에 나섰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허가를 받고 어렵게 들어간 체르노빌 현장은 충격적이다.

인구 5만 명이 살던 첨단도시는 폐허로 변했고, 일부 장소에선 아직도 허용치의 300배가 넘는 방사선량이 검출되고 있다. 26년이 흘렀지만 끝나지 않은 체르노빌 사고의 후유증. 2011년 이후의 후쿠시마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과연 일본은 비상구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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