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추억극장 미림

▲ 동인천역 인근에 위치한 미림극장. ‘추억극장 미림’으로 탈바꿈했다.
멈췄던 영사기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인천 동구 송현동 송현시장 앞 옛 미림극장이 2일 노인 전용극장 ‘추억극장 미림’으로 재개관했다. 오전 10시 30분 첫 상영을 앞둔 극장 안에선 소식을 듣고 발걸음한 노인 관객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첫 상영작은 명작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다.

멀티플렉스 극장에 밀려 문 닫아

미림극장은 1957년 11월 송현동 중앙시장 도로변에서 무성영화를 상영하는 천막극장으로 출발했다. 당시 천막극장의 이름은 ‘평화극장’이었다. <인천일보> ‘조우성의 미추홀’ 칼럼에는 “평화극장에는 의자도 없었다. 소년시절 필자는 맨땅에 깐 가마니에 앉아 영화를 봤다. 얼마 후 널빤지로 만든 장의자에 죽 걸터앉게 되었고, 1970년대 초인가, 스프링이 튀어나와 금세 엉덩이가 아팠지만 극장용 개인 의자가 설치된 것만 기뻐했었다”고 미림극장의 초기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2013년 8월 23일자)

1960년대부터 영화는 서민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보고 즐길 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 극장은 누구나 부담 없이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는 독보적인 문화공간이었다. 동인천역을 중심으로 번화가가 형성됐고, 경동 사거리 ‘애관극장’, 양키시장 입구 ‘오성극장’, 신포시장 ‘동방극장’ ‘키네마극장’ 등과 함께 미림극장은 1990년대 중반까지 인천을 대표하는 극장으로 손꼽혔다.

한 누리꾼은 “1994년 즈음 ‘쉰들러리스트’라는 영화를 미림극장에서 보았다. ‘인천에서 세 시간짜리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은 미림극장 밖에 없다. 손실을 감수하고 좋은 영화를 상영하니 홍보 바란다’던 당시 안내방송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기억한다.

1999년 인천 극장가가 술렁였다. 복합상영관인 멀티플렉스 ‘시지브이(CGV) 인천 14’가 남동구 구월동에서 개관했기 때문이다. 당시 인천에 있던 극장의 상영관은 대부분 하나였다. 상영시간에 맞춰 극장을 찾지 않으면 다음 상영까지 두 세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에 반해, 멀티플렉스 극장은 상영관 여러 개에서 동시에 영화를 상영해, 아무 때에나 극장을 찾아도 가까운 시간 안에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스낵코너, 넓은 화장실, 휴게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멀티플렉스의 등장만으로, 멀쩡하던 인천의 극장들은 순식간에 초라해졌다. 대기업의 마케팅과 자본 앞에 점점 힘을 잃어가던 극장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미림극장 역시 2004년 7월 29일 영화 ‘투가이즈’ 상영을 마지막으로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고령사회 접어든 동구, 노인 위한 문화시설 시급

▲ 10월 2일 재개관한 미림극장을 방문한 시민들.
미림극장 재개관 소식은 올해 초부터 심심찮게 들려오다 지난 9월 12일, 인천시장 접견실에서 ‘실버 전용극장 지원 협약식’을 개최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이 실행되기 시작했다. 인천시와 동구, (사)한국사회적기업협의회 인천지부가 노인 전용극장 설립에 함께 하기로 협약했다.

동구는 노인인구 비율이 인천시 평균 9.7%보다 5%포인트 이상 높아 이미 고령사회(노인인구 비율 14~20%)에 접어들었다. 시 전체적으로도 노인인구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노인들을 위한 문화시설 설립이 시급했다.

이에 (사)한국사회적기업협의회 인천지부는 인천시로부터 특화사업비를 받아 공간을 리모델링했고, 고용노동부로부터 인건비를 지원받기로 했다. 동구는 극장 주변 환경 조성과 그밖의 행정적 지원을 하기로 했다.

실버전용극장 취지에 맞게 영사기사와 검표 인력, 극장 관리ㆍ운영에 들어가는 인력 역시 노인들로 고용했다. 극장 재개관으로 노인들의 여가활동 공간이 마련된 것은 물론,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됐다. 더불어 시와 동구는 극장이 신포동과 배다리를 잇는 지역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리 위한 극장 생긴다니 반가워”

‘사운드 오브 뮤직’에 이어 10월 한 달 상영작이 결정됐다. ▶8~10일 신상옥 감독의 ‘여자의 일생’ ▶11~14일 ‘벤허’ ▶15~17일 ‘연산군’ ▶18~21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22~24일 ‘마부’ ▶25~28일 ‘초원의 빛’ ▶29~31일 ‘박서방’이, 쉬는 날 없이 관객을 기다린다. 오전 10시 30분 첫 상영을 시작으로 하루 3~4회 상영한다.

입장료는 일반극장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인천지역 55세 이상 시민은 동반자 1인까지 2000원에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다. 나이 기준은 정부가 일자리 취약계층으로 정한 나이를 참고했다. 55세 미만 요금은 7000원이다.

개관식을 즈음해 극장을 찾은 최순애(77) 할머니는 오랜 만의 극장 나들이에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최 할머니는 “애들 키우면서 살림하느라 극장이 있는 줄만 알았지 영화를 많이 보지는 못했다. 영화 볼 새가 어디 있었겠나? 나이가 드니 시간이 많아도 다리가 아파 멀리 다니지 못해 답답했는데, 집 근처에 우리들을 위한 극장이 생겼다니 (반가운 마음에) 왔다”며 “영화도 드라마처럼 재밌게 볼 생각”이라고 했다.

김영식(71) 할아버지는 “우리가 자랄 때는 극장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먹고 살기가 힘들었으니까. 그래서 보고 싶어도 못 본 영화도 많다. 적은 돈으로 영화를 볼 수 있어 (극장이 생긴 것을) 주변에서 다들 좋아한다”며 “아무쪼록 이곳에서 노인들을 위해 좋은 영화를 많이 상영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추억극장 미림’은 동인천역 4번 출구에서 수인그릇도매상가 방면으로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다.(문의ㆍ764-8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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