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성윤 한의사(인천 푸른솔한의원 원장).
“살 안 찌게 해주세요”
한의원에서 약을 지어가는 분들이 많이 하는 말이다. 언제부터 생긴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한약을 먹으면 살이 찐다는 생각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굳건한 믿음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소화기능이 약해 식사를 잘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위의 기능을 끌어올리는 처방을 통해 살이 찌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한약재 자체의 영양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못 먹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잘 먹어서 문제가 되는 요즈음은 기혈의 순환을 촉진하고 응체된 담을 풀어주는 방향으로 처방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살을 빠지게 하는 처방이 더 많이 필요한 것이다.

얼마 전 위 밴드시술을 하고 다이어트를 하던 여성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위에 밴드를 묶어 강제로 위를 줄여 영양공급을 줄이는 엽기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 고도비만여성의 사인(死因)은 아이러니하게도 영양실조였다. 어찌되었든 비극이다.

2004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인류의 10대 질병 중 하나로 지정하고 대대적인 캠페인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만 해도 성인남성 3명 중 1명, 성인여성 4명 중 1명이 체질량지수 25라는 비만의 기준에 걸리는 실정이다.

성인 비만으로 연결되는 어린이 비만도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고, 체중은 적게 나가지만 지방량이 많은 마른 비만도 문제가 된다.

다 아는 얘기지만 비만이 문제인 것은, 비만인 사람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각종 질병에 걸릴 위험이 증가한다는 데에 있다.

당뇨병, 고혈압, 뇌졸중, 대장암, 지방간, 퇴행성관절염, 관상동맥질환 등이 그것이다. 정신적으로는 자아에 관한 불만족과 이에 따른 욕구불만을 낳고, 나아가서는 사람의 성격까지 변화시키며 우울증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 바로 비만이다. 불임 또한, 그 원인 중 비만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크다. 저영양 고열량의 식사를 자주 하고 건강관리에 신경 쓸 여력이 적은 저소득층의 비만율이 높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비만 탈출은 식이조절과 운동이라는 정답이 이미 나와 있다. 하지만 혼자하기 어려울 경우, 그리고 반복되는 요요현상으로 인해 오히려 비만이 더욱 심화될 위험이 있을 때는 도움이 필요하다.

갑상선기능저하증, 부신피질호르몬의 과다로 인한 쿠싱증후군, 다낭성난소증후군 등과 같은 질환은 복합적인 증상들과 함께 비만을 동반하고 부신피질호르몬, 여성호르몬, 항우울제, 신경안정제 같은 약물 복용 또한 비만을 유발할 수 있다.

때문에 갑작스러운 체중 증가의 경우는 다이어트에 앞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그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한의학은 비만을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접근한다.
1) 습담저체형 : 가장 기본적인 비만으로 많이 먹고 움직이지 않아 몸에 습담이 적체돼 생기는 비만을 말한다.
2) 기허형 : 그리 많이 먹지 않는데도 살이 찌는 사람이 해당한다. 대사작용이 떨어져 적게 먹은 것조차도 제대로 이용을 못하는 경우이다.
3) 위장장애형 : 소화기능에 문제가 많아 장에 가스도 많이 차고 위와 장의 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경우에 속한다. 많이 먹지 않아도 잘 체하고 정체가 잘 돼 복부비만이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4) 하초어혈형 : 하초가 냉해 자궁 쪽의 기혈순환이 잘 안 돼 어혈이 잘 생기고 생리통도 심하면서 복부비만이 있는 여성들의 경우에 해당한다.

이러한 분류에 따라 각각의 특성에 맞춰 습담을 말리거나 대사를 항진시키고, 소화기능을 촉진하거나 하초를 따뜻하게 하고, 어혈을 풀어주는 방향으로 치료한다.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인생은 살이 쪘을 때와 안 쪘을 때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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