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조화현 아이신포니에타 단장

“연주자 여러 명이 함께 협력해 연주하는 것을 협주곡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콘체르토라고 부르는데요, 오늘은 성악과 협연을 하게 됐습니다”

연주자가 연주회 도중 마이크를 들고 관객과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주 새로운 풍경은 아니지만 10여 년 전엔 흔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공연마다 색다른 주제와 듣기만 해도 마냥 설레는 독특한 이벤트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클래식 공연단은 아무리 둘러봐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아이신포니에타(i-신포니에타)는 소규모 클래식 공연단체로, 2004년 창단 이래 줄곧 시민에게 다가가는 공연을 펼쳐왔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면 공연 장소도, 음악 장르도 가리지 않는다. 인천에서 공연 좀 즐긴다 하는 이들치고 이들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정도다.

25일, 조화현(45·사진) 아이신포니에타 단장을 연수동에 있는 그의 연습실 겸 사무실에서 만났다. 서울에 비해 클래식 인구가 현저히 적은 인천에서 10년 동안 클래식 공연단을 이끌어 온 비결과 음악과 함께 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 졸업 후 무대에 서기 어려워

▲ 조화현 아이신포니에타 단장.
“클래식은 어려운 음악이 아니에요. 낯설 뿐이죠. 자주 듣다보면 익숙해지고 좋아하는 곡도 생겨요”

조 단장은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음악만 생각하며 살다 막상 졸업을 하고나니 레슨 이외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초등학교 교사들로 구성된 현악앙상블을 이끌며 지휘도 했지만, 그에겐 늘 공연을 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면 지원을 하고 무대에 서기도 했다. 공연은 일 년에 서너 차례 있을 뿐이고, 그나마 공연 전 서너 번 모여 연습하고 공연 후엔 또다시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일상적으로 연습을 하고 화음을 맞추며 서로의 음악세계를 넓혀갈 동료를 만나기 어려웠다.

“그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음악을 했는데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후배 몇 명에게 ‘우리가 실내악단을 직접 만들어 연습도 하고, 공연도 맘껏 해보자’고 이야기했죠”

2004년 4월, 조 단장을 포함한 단원 8명이 모였다. 처음엔 ‘에이프릴(4월) 현악앙상블’로 이름을 정해 활동하다 2005년 4월 아이신포니에타로 바꿨다. 인천의 영문 앞 글자 아이(i)와 소규모 실내악단을 지칭하는 신포니에타를 합친 것이다.

어떻게 하면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까

‘클래식 대중화’라는 목표를 정하고 연수구청 대강당에서 창단 연주회를 열었다. 연주자들의 가족과 지인, 제자, 학부모, 지역 주민 등 많은 이들이 공연장을 찾았다. 첫 공연의 설렘도 잠시, 공연을 마친 조 단장에게 찾아온 것은 보람이나 기쁨이 아닌 회의감이었다.

“차이코프스키나 드보르작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어 기뻤어요. 그런데, 과연 관객들과 음악으로 소통을 했느냐는 질문에는 ‘예’라고 답하기 어려웠죠. 평생 제게 음악을 배우게 한 부모님조차 제 음악으로 감동시킬 수 없더군요.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그때부터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이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공연장은 새로운 시도가 펼쳐지는 그의 실험실이 돼주었다.

그는 공연 중 마이크를 들고 클래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부터 시작했다. 클래식 용어와 각 악기의 특성은 물론, 작곡자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 연주할 곡의 느낌 등을 하나하나 친절히 설명했다. 그리고 재즈나 록, 포크, 영화음악 같은 파퓰러(popular)음악을 클래식과 함께 연주했다.

관객의 반응은 예상보다 빨랐다. “똑같은 모차르트 곡인데 (관객들이) 들으면서 얼마나 집중을 하시는지, 우리도 놀랄 정도였어요. 단지 설명만 곁들였을 뿐인데 말이에요” 공연이 끝난 후, 그에게 들려오는 공연 평 역시 이전과 많이 달랐다. 칭찬 일색이었음은 물론이다.

공연 중 무료웨딩콘서트, 가족도 연주자도 감동

크게 자극을 받은 그는 더 나아가 음악을 갖가지 이벤트와 접목하는 공연을 생각해냈다. 마술, 시(詩), 고택, 박물관 등 음악과 연결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했다.

“군부대 공연을 자주 가요. 그런데 군인들이 걸그룹도 아닌 클래식 공연을 좋아하겠어요? 어떻게 하면 흥겨운 공연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탱고 음악에 춤을 추게 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여기에 휴가권을 걸었더니, 너도나도 춤추러 무대에 뛰어올라오더군요. 초등학생들에겐 직접 무대에 나와 지휘를 해보게 해요. 지휘에 맞춰 우리가 연주를 하는 거죠. 아주 재미있어 해요”

그의 마음에 남는 공연은, 공연 중 실제 결혼식을 올리는 ‘무료웨딩콘서트’였다.

“사정이 어려워 결혼식을 못 올리고 사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그런 분들을 어렵게 찾아내 무료로 결혼식을 열어드렸죠. 웨딩드레스와 턱시도, 꽃 장식 등 모두 제가 직접 돌아다니며 후원을 받았어요. 결혼식을 올리며 기뻐하는 당사자들과 가족들을 보면 정말 뿌듯하고, 그 모습에 저희도 감동을 받아요”

클래식이라면 콧방귀를 뀔 것 같은 군부대에서 열화와 같은 호응을 얻어내고, 꾸벅꾸벅 졸기 일쑤인 초등학생들이 그의 공연에 눈을 반짝일 수 있었던 데에는 관객의 마음을 얻기 위한 그의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이 담겨 있다.

이런 그의 뜻을 알았는지, 2~3년 전부터 아이신포니에타를 응원하는 후원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였다. 후원자들은 꼬박꼬박 공연장을 찾을 뿐만 아니라, 공연장에 지인을 초대하고, 공연을 해나가는 데 필요한 것을 ‘알아서’ 챙겨준다.

“늘 감사하죠. 이런 분들 덕분에 힘들어도 공연을 이어갈 수 있어요”

관절염으로 연주는 못해, 그래도 무대에 서고파

무대에서 직접 연주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이룬지 올해로 10년째. 그 사이 마음이 바뀌진 않았을까?
“엘가의 ‘사랑의 인사’나 엔리오 모리꼬네의 ‘넬라판타지아’는 지금까지 아마 천 번도 넘게 연주했을 거예요. 자다가 일어나서도 연주할 정도죠. 질리지 않을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전 우리가 연주하는 음악이 정말 좋아요. 감동의 박수를 보내주는 관객 덕분이죠”

이런 그가 최근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것을 그만뒀다. 관절염이 심해저 더 이상 연주는 그에게 무리였던 것.

“공연 기획하고, 아이신포니에타를 알리는 일을 하느라 하루 두세 시간밖에 못 잘 때가 많았어요.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니 몸이 안 좋아지더군요. 앞으로 연주는 못 하더라도 우리 공연을 찾아주는 관객이 있는 한, 무대에 계속 설 거예요. 그게 음악인으로서 제 삶이죠”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