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이 만난 사람] 장성철 인봉봉사단 단장

자원봉사의 달인? 자원봉사 중독자? 어떤 표현이 적절한지 고르기가 쉽지 않다. 인천시가 지난해 부여한 호칭은 자원봉사왕이다. 누적 봉사시간 5600시간이라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 주인공은 바로 장성철(53·사진) 인봉봉사단 단장이다.

그를 지난 11일, 부평대로변에 있는 그의 사무실이자 공장에서 만났다. 그는 현수막을 주로 제작하는 광고업에 종사한다.

한 쪽 공간에 들어서니, 인봉봉사단 사무실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겠다. 봉사단의 활동을 보도한 기사며 상장, 업무협약서 등을 확대해 실사한 펼침막이 한 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봉사는 주업, 광고업은 부업

▲ 장성철 인봉봉사단 단장
인봉봉사단은 2005년 무렵 만들어졌다. 당시 40~50명이 함께 시작했는데, 지금도 실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회원은 50여명이다. 하지만 인터넷(다음) 카페 회원은 2800명이나 된다. 봉사로 전국을 누빈 결과다.

인봉봉사단은 주로 문화예술 공연으로 봉사한다. 노래ㆍ마술ㆍ각설이타령ㆍ국악ㆍ벨리댄스ㆍ에어로빅 등, 못하는 공연이 없을 정도다. 공연팀을 따로 꾸리고 있고, 음향기기도 갖추고 있다. 가수 40명, 코미디언 2명이 회원으로 함께 활동한다. 여기에 국악이나 벨리댄스, 에어로빅 등은 학원이나 다른 단체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공연이 있으면 연락해 모여서 간다.

주로 소외된 노인들을 위해 공연하는데, 정기적으로 하는 공연 봉사가 한 달에 일곱 번이다. 계양구 주간치매보호센터, 부평구 나누리복지센터, 사랑의 집(무료급식ㆍ이미용), 은혜의 집(목욕ㆍ이미용ㆍ노래), 부평문화의거리 가요콘서트(월 1회, 연탄 나눔 기금 마련), 인천역 무료급식 가요콘서트(매달 첫째 주 토요일) 등이다. 그밖에 복지시설 등에서 행사 요청이 있으면 간다.

이를 다 관리하랴, 장사하랴, 장성철 단장은 휴일도 없이 늘 바쁘다.

“할 일이 정말 많아요. 사진 찍어 카페에 올려야지, 단원들 봉사점수 승인 받아줘야지…. 봉사가 주업이고 광고업은 부업이라니까요. 요즘은 더 바빠졌어요. 최근에 7080 라이브카페를 차렸거든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여기에 있다가 라이브카페로 넘어가 새벽 3~4시까지 노래반주를 해줘요. 반주해주면 손님들이 수고비를 주는데, 그게 하루 10만원은 돼요. 쏠쏠하죠. 그거 받아 봉사활동 경비로 써요”

인봉봉사단엔 회원들이 내는 회비가 없다. 처음엔 있었는데, 회비를 걷다보니 말이 많아져, 없앴다.

“참여해서 말없이 봉사해야하는데, 이청연 인천시자원봉사센터 회장이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빠삐따또’라고. 빠지지 말고, 삐치지 말고, 따지지 말고, 또 봅시다. 나도 잘 써먹는데, 사실 ‘빠삐따또’ 하는 분이 많지 않아요. 우리 회원들 중에 두 분이 파출부 일을 다니는데, 규모가 좀 큰 행사가 있으면, 일당 포기하고 봉사하러 나와요. 그럴 때면, 그분들에게 뭔가를 해줘야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안타깝죠”

복지시설 등의 공연은 모두 무료이지만, 가끔 칠순잔치나 규모가 큰 단체의 체육대회에 나가 공연하면 수익이 생긴다.

“돈 받으면 일부 회비로 남겨두고, 나머지는 봉사자들에게 풀어요. 차비라도 줘야할 거 아니에요. 1년에 한두 번 있는 일이에요. 부평문화의거리 가요콘서트 할 때는 가수들이 많이 와요. 마음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은 추한 곳,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는데, 나머지 90%정도는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에 자신을 알리려고 오죠”

2010년 소주병 뚜껑 모으기로 화제 일으켜

인봉봉사단은 언론에 여러 번 보도될 만큼 꽤 유명하다. 2010년 소주병 뚜껑을 모아 어려운 이웃들에게 쌀을 전달한 게 크게 화제가 됐다.

“우리 봉사단 고문이 소주 회사와 관계가 있는 분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특전사를 나왔는데, 그 소주 회사 인천지부장이 특전사 선배였죠. 회사에서 판촉자금이 나오는데, 그 일부를 우리에게 준 거죠. 10kg 들이 쌀 200포씩 네 번을 받았어요. 그걸 구청과 푸드마켓, 복지시설, 무료급식소에 기증했죠. 회원들이 아는 곳에 기증할 땐 반드시 사진을 찍어오게 하고요. 대신에 우리가 병뚜껑 30만개씩 모아 네 번을 줬어요. 30만개가 인천 한 달 물량보다 많은 것이라고 하대요.

원래 병뚜껑을 회사에서 가져가려했는데, 우리 뜻이 좋다고 그것도 줬어요. 부평과 계양의 식당과 술집 다니면서 모아달라고 부탁하고, 회원들이 직접 걷으러 다녔죠. 언제 가겠다고 약속하면 그 때 가야해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전단지 만들어 일일이 상가 다니며 설명하고, 폐현수막으로 자루 만들어 나눠줬어요. 모아 달라고. 이게 소문이 나 장애인이 휠체어타고 병뚜껑 300개를 모아오기도 했어요. 이게 봉사의 아름다움 아닌가, 생각했죠”

성탄절 때 폭설 피해 입은 정읍에 달려가기도

그는 어떤 계기로 봉사를 시작했을까?

“제가 원래 음악과 노래를 좋아해요. 그리고 고3 때부터 서른다섯 살까지 헌혈을 팔십 번 했어요. 대한적십자사 금장 포장도 받았다니까요. 지금은 협심증에, 고지혈증에, 당뇨까지, 질병이 있어 못하지만요”

그는 공연할 때 주로 사회를 보고 음향기기를 만진다. 노래도 한다. 단, 노래는 ‘땜빵’이다. 오기로 한 가수가 오지 못했을 때다. 다양한 행사를 다니다 보니 아이템도 많다. “송년회 하는데, 중간에 회원들이 가버리면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두 팀으로 나눠 시합을 해요. 열쇠 많이 모으기. 서로 지지 않으려고 다 내놔요. 그러면 거둬서 숨겨버리죠. 열쇠 없인 못 가니까”

그는, 자신이 봉사하는 이유는 ‘잠들어 있는 사람을 깨우기 위해서“라고 했다.

“수해 등 재해가 발생했을 때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어요. 보통 회원 열 명 정도가 달려갑니다. 성탄절 때도 갔어요. 정읍에 눈 폭탄이 내렸을 때. 그리고 소래포구에서 어선을 운영하는 회원(왕덕만씨)이 있는데, 해마다 잡은 생새우를 나눠줘요. 배가 밤 10시쯤에 들어오는데, 그게 오면 전쟁을 치러야 해요. 상하기 전에 빨리 나눠줘야 하니까. 무료급식소 위주로 주죠.

그 일로 나눔은 나눔을 낳는 걸 깨달았죠. 거기(소래포구) 수협에 있는 직원이 헌 박스를 모아 60만원을 후원한 거예요. 우리가 연탄 나눔을 1만장씩 5년 정도 하고 있는데, 거기에 보태라고요. 부평문화의거리에서 가요콘서트 할 때 연탄 기금을 모금해요. 한 번 할 때 10만원 정도 걷히더라고요”

성탄절 때도, 늦은 밤에도, 먼 길도 마다않고 나설 수 있는 배경은 뭘까?

“저랑 같은 마음일 텐데, 봉사하고 나면 그 뒤에 행복감이 따라 와요. 나로 인해 저 분들이 행복해하는구나. 돈이 개입하면 봉사의 취지가 퇴색하기 마련이에요. 봉사단체에 분쟁이 생기는 건 돈 때문이에요. 다른 단체에서 봉사하는 사람들 중에 우리 단체로 오려는 사람도 있어요. 뜻을 아니까”

그런데, 무료급식소에서 공연이라?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섭외가 들어와요. 인천역에서 무료급식 할 땐 수원과 안양에서도 노인들이 와요. 교통비가 안 드니까. 그런데, 밥 먹기 위해 추운데 기다릴 때가 있잖아요. 기다리는 동안 공연 보고 박수치고 놀다가 밥 나오면 먹게 해드리는 거죠. 이미용 봉사도 해주고”

봉사단체 이용해 공연비 챙기는 사람도 있어

▲ 노래 공연을 하고 있는 장성철 인봉봉사단 단장
하지만, 봉사 하러 가서 상처 받은 경우도 적지 않다.

“노인잔치 할 때 가장 안 좋은 게 노인들이 식사하고 선물 받으면 가버리는 거예요. 공연하려고 하는데 사람이 없으니 흥이 나질 않죠. 사할린 동포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안산 고향마을에 가면 안 그래요. 그쪽 단체들과 협력해 5년째 가서 새해 떡국잔치를 해요. 그분들이 1000명 정도 되는데, 2시간 공연하러 갔는데, 4시간을 해도 자리를 뜨지 않아요. 박수도 얼마나 잘 치는지 몰라요. 물론 우리와 문화와 의식 차이가 있겠죠. 자리 채워주고 재밌게 놀면 얼마나 좋아요. 집에서 티브이 보고 있는 것보다 돌아다니고 공연보고 박수치는 게 건강에도 도움이 되잖아요”

그래서 요양원 같은 데서 공연봉사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요양원 같은 곳은 수익사업이잖아요. 그러면 어느 정도 비용을 들여서 행사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요. 무조건 봉사 요청을 하는 거예요. 그런 게 못마땅한데, 사실 봉사 갈만한 곳이 많지 않아요. 한번은 일요일에 가평에 있는 시설에 갔는데, 담당자들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영상은 찍으러 다니는 거예요. 자기들 업적 남기려고. 성질이 나서 쏘아붙였죠. 우리가 돈을 받고 해도 그것은 아니잖아요. 무료로 공연해주러 갔는데, 물 한잔 안 주는 곳도 있어요. 너희들 봉사하러 왔으니 하고 가라는 식이죠.

우리가 대우를 받으러 간 건 아니지만, 단원 중에 식사를 못하고 가는 단원도 있어요. 공연하려면 목을 축이게는 해줘야 하잖아요. 심지어 봉사단체를 이용하는 곳도 있어요. 무료로 해달라고 하고, 중간에서 공연비를 받아 챙기는 거죠. 그런데 알아도 모른 척 해요. 회원들한테 이야기하면, 안 나올 수 있거든요. 봉사하러왔지, 들러리 서러 왔느냐고 할 수도 있고”

그의 이야기는 자원봉사센터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졌다.

“저는 자원봉사센터 간담회 등 공적인 자리에서는 따집니다. ‘센터가 봉사단체에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지, 컴퓨터를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자원봉사상을 주기 위해 우리에게 공적서를 써 내라면 어떻게 하냐. 너희들이 공적을 조사해서 선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 또, 아파트 (볼런티어) 현판식 행사하면서 생색내기 하는 것 아니냐’고. 누군가 총대를 매야 해요.

또, 봉사시간이 어느 정도 쌓이면 간병인을 일정기간 무료로 지원해줘요. 상해보험 들어서 200만원까지 보상해주고요. 행정기관에서 봉사자들에게 이런 정보를 많이 알려주면 좋은데, 우리를 수하 같이 생각해 이리 가서 도와주라는 식이에요. 센터 직원들은 친분 있는 단체에만 가요. 우리가 소장이나 직원에게 행사 있다고 문자 넣어도 한 번을 오지 않아요.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을 우리가 대신 하는 것인데, 뭘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담당자들이 찾아와 힘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잠들어 있는 사람 깨우기 위해 봉사

이야기는 ‘봉사하는 이유’로 돌아왔다. 그는 앞서 ‘잠들어 있는 사람을 깨우기 위해서’라고 했다. 좀 더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봉사하는 사람은 못된 짓을 못합니다. 남의 등을 못 치죠. 인간이 되는 거죠. 농담으로, 나는 천국행 티켓이 많으니 봉사하러 오면 한 장씩 주겠다고 해요. 봉사함으로써 얻어지는 게 정말로 무형의 엔도르핀인데도, 사람들은 겁을 내요. ‘난 힘이 없어, 난 돈이 없어’라고. 난 첫 단추(=봉사)를 강제로 끼워주려고 해요. 직원을 쓰든, 물건을 사주든, 봉사하는 조건을 걸어요. 일단 하면 깨우치거든요. 봉사는 남을 위한 것 같지만 나를 위한 것이란 걸”

그는 끝으로 고인이 된 인봉봉사단 사무국장 이야기를 들려줬다.

“4년 전에 산곡동에 물난리가 났을 때, 자원봉사센터에서 연락이 와 회원 일곱 명이 갔어요. 반 지하인데 물이 차있고, 혼자 울고 있더라고요. 깨끗이 치워줬죠. 나중에 그분이 봉사하러 오더라고요. 정말 열심히 했어요. 한 달에 열 번 정도 따라다닌 것 같아요. 그런데 작년에 간암으로 죽었어요. 투병한 지 3개월 만에.

그분이 봉사한 사진 500장 정도를 영상으로 만들어 장례식장에서 보여줬죠. 그분이 그렇게 열심히 활동했는지를 가족들도 잘 몰랐던 것 같았어요. 전, 내가 죽으면 우리 회원들이 찾아와 공연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병으로 쓰러지지 않으면 계속 봉사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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