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인천의 섬-백령도’전의 고재민 화가

뿌연 바다 안개 너머 저 멀리 섬이 보인다. 차가운 바다 위에 묵묵히 떠 있는 섬 백령도. 하얀 눈으로 덮인 고요한 섬 곳곳의 풍광이 캔버스마다 펼쳐져있다. 겨울을 맞이한 백령도의 아름다움을 가득 담은 그림들에서 어쩐지 쓸쓸함도 함께 느껴진다.

인천의료원 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고제민(54·사진) 작가의 ‘인천의 섬-백령도’에 전시된 작품들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 앞서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백령도 백령병원에서 1차 전시회를 열었다. 늦여름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8월 27일, 인천의료원에서 고 작가를 만났다. 그의 삶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쉰 넘어 첫 개인전 열어

▲ ‘인천의 섬-백령도’전의 고재민 화가.
“백령병원에서 전시했을 때 반응이 좋았어요. 백령도에는 문화시설이 거의 없어 주민들이 평소에 그림을 직접 볼 기회가 적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게다가 전시 장소가 병원이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친 분들이 많은데, 그림을 보고 좋아하셔서 저도 전시회를 연 보람을 느꼈어요”

인천의료원 2층에 올라가면 로비 벽면에 전시된 그의 작품 열두 점을 볼 수 있다. 그는 갤러리에서 기다리기보다 직접 시민들에게 작품을 보여주는 ‘찾아가는 전시’ 일환으로 전시 장소를 병원으로 택했다.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올해 1월 백령도 곳곳을 돌며 풍경을 스케치했다.

“일부러 겨울을 택했어요. 백령도는 사람 때가 덜 묻은 아름다운 섬이지만, 한편으론 우리나라 최북단에서 북쪽 땅과 마주하고 있는 쓸쓸한 섬이기도 하잖아요. 다양한 느낌을 담고 싶었어요”

2011년 1회 개인전을 시작으로, 이번이 세 번째 개인전이란다. 나이 오십이 넘어 첫 개인전을 열었으니 꽤 늦은 편이다. 뒤늦게 붓을 잡았느냐고 물었더니,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그림을 그려왔단다. 어찌된 영문일까?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교사생활을 시작했어요.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살림하면서 학교까지 다니려니 개인전을 열기가 참 힘들더라고요”

인천은 그가 중학교 시절까지 보낸, 그의 고향이다.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인천을 떠나 대학 졸업반이 돼 다시 고향을 찾았다. 동구 창영동에 있는 영화관광경영고등학교(옛 영화여자상업고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한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삼십년 째 미술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화폭에 담아

다시 찾은 인천은 어린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90년대를 지나자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중구와 동구에 몰려있던 학교들이 하나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도시엔 휑한 기운이 감돌았다. 재개발, 재건축이란 말이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인심도 달라졌다. 변화의 바람은 동구에만 몰아친 게 아니었다. 소래포구를 오가던 협궤열차도 운행을 중단했다.

“어린 시절엔 내가 사는 곳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인천 곳곳이 달리 보이더군요. 인천은 서울과 가까운 도시이면서 포구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섬에 갈 수도 있잖아요. 인천에 관심을 가지면서,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죠. 소래포구나 북성포구, 그리고 소청도나 백령도 등 주변 섬을 자주 찾았고, 언젠가는 그 풍경을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자녀들이 모두 대학에 입학한 후, 그는 개인전을 열고 싶은 소망을 이루기로 결심했다. 2011년에 연 1회 전시회는 그가 평소 친근하게 접해온 소재인 꽃을 주제로 택했다. 학교 일이 끝나면 혼자 미술실에 남아 늦게까지 그림을 그렸다. 5~6개월 동안 서너 시간만 잠을 자며 작품에 몰두했다.

“교사를 하면서도 꾸준히 그림을 그렸지만, 전시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새로 그려야했어요. 첫 전시라 많이 긴장했는데, 다행히 그림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내 그림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듬해 그는 오랜 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북성포구를 화폭에 담아 두 번째 전시회 ‘북성포구-노을’ 열었다. 이현식 문학평론가는 이 전시에 대해 ‘한 시대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퇴락한 항구에서 바라보는 노을을 푸레한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노을과 바닷물의 색조가 대비되어 강렬한 인상을 자아내는 한편으로 어두워지는 하늘의 빛깔은 소녀가 바라보는 고향의 풍경으로는 제격이다. 그 연민이 오롯이 북성포구의 그림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 소녀는 이제 인생의 중년에서 고향을 다시 발견하고 있다’고 평했다.

다양한 감성 담으려 고생 자처

▲ 눈 맞으며 | 45.5×36cm | 유화 | 2013.
그는 세 번째 전시회 주제로 백령도를 선택했다. 백령도는 아름다운 섬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곳에 직접 다녀온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백령도는 연평도와 함께 남북한이 여전히 정전 중임을 일깨우는 곳이기도 하다. 북한과 가까운 탓에 군사시설이 몰려있어, 한반도에 긴장감이 조성되면 자연스레 세간의 관심이 이곳으로 쏠린다.

그는 이번 전시회에서 백령도의 아름다움과 함께 그 속에 스며든 긴장감, 그리고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상처를 떠안은 섬에서 느껴지는 아쉬움과 쓸쓸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답사를 위해 가장 추운 1월, 눈이 푹푹 들어가는 백령도 산을 오르내리는 고생을 자처한 것도 그 때문이다.

“분단의 질곡이 아니라면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섬일까 하는 아쉬움이 컸어요. 떠나와서야 비로소 엄마 품의 따뜻함을 알게 된 것처럼, 백령도의 아름다움이 새롭게 느껴졌어요. 그 감성을 담으려 한 작품 한 작품에 최선을 다했어요. 보시는 분들은 어떠신지 궁금하네요(웃음)”

9월 7일까지 인천의료원을 찾는 이들은 그의 열정이 담긴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어 영종도서관에서도 9월 10일부터 22일까지 전시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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