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보다 더 가까운 일본 땅, 대마도(상편)
제주보다 더 가까운 일본 땅, 대마도(상편)
  • 인천투데이
  • 승인 2013.08.13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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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수의 걷기 여행(32)

▲ 부산에서 국제여객선을 타고 대마도의 북쪽 항으로 가면 1시간 남짓, 남쪽 항으로 가면 두 시간 남짓이면 도착한다.

7월 12일부터 14일까지 2박3일간 벗들과 함께 부산과 대마도에 다녀왔다. 우리가 탄 케이티엑스(KTX)는 대전과 대구, 딱 두 군데만 정차한 후 정확하게 2시간 30분 만에 우리를 부산역에 데려다 주었다.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시간이 절약된 대신 그 시간만큼을 돈으로 지불했다. 비둘기호ㆍ통일호ㆍ무궁화호였다면 정차했을, 서울과 부산 사이의 수많은 기차역은 모두 생략됐다. 그 역들의 역사와 문화 또한 어쩌면 우리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두려운 일이다.

부산 광안대교와 자갈치시장

부산역에 언제 내려 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우리처럼 짐 많고 일행 많은 무리를 귀신같이 알아보고 봉고차 영업을 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접근했다. 짐을 싣고 내리기에 택시보다 편하고 가격도 적당하니 바로 흥정이 된다. 비록 자가용 불법영업이지만 어차피 탄 우리도 공범이다. 봉고차 안에 노래방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그런 봉고차는 처음 봤다. 부산 관광을 안내하는 사람인데, 전국에 단골이 없는 곳이 없단다.

야경을 구경하기 위해 광안리로 갔다. 광안리는 불야성이다. 이곳만 보면 부산의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거짓말 같다. 광안리해수욕장과 그 앞에 놓인 광안대교는 관광객을 끌어들이는데 확실히 성공했다. 갑자기 인천대교가 떠오른다. 인천도 이곳 광안리처럼 편안하게 술 한 잔 하면서 인천대교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를 많이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새벽까지 영업을 하는 횟집이 많다. 24시간 하는 횟집도 많다. 광안리답다. 광안대교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벗들과 회 한 접시 놓고 술을 마시니, 모처럼 즐겁다. 시간도 거의 새벽으로 달려가고 해서 난생 처음 찜질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는데,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님을 이번에 알았다.

아침 먹기 전에 광안리 수변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안개가 자욱하다. 아파트가 허리에 안개를 두르고 마치 동화 속의 성처럼 우뚝 서 있다. 광안대교는 야경이 제 맛이지만 아침에 보는 광안대교도 그 나름의 풍경이 있다.

아침에 봉고차 주인이 우리를 데리러 왔다. 전날 국제여객터미널에 태워다 달라고 예약했다. 내친 김에 식당까지 소개받았다. 봉고차는 자갈치시장으로 향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 잠시 시장을 구경했다. 고래 고기는 들어봐서 아는데 ‘두투’는 전혀 모르겠다. 상어 지느러미를 잘라놓은 거란다. 나름 자갈치시장의 명물이다.

자갈치시장은 남포동과 충무동에 걸쳐 있는 수산물시장이다. 자갈치란 이름은 지금의 충무동 로터리까지 뻗어있던 자갈밭을 자갈처라 불렀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래는 현재 부산시청이 있는 용미산 동남쪽 해안과 남포동 건어물시장 주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1930년대 남항이 매립된 뒤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아침부터 복 지리와 생선구이로 거나하게 먹었다. 자갈치시장을 방문할 사람들에게 시장 안에 있는 자연산횟집(257-8563)을 추천한다.

모이는 시간인 9시 30분에 맞춰 국제여객터미널에 내렸다.

▲ 부산 광안대교.
▲ 부산 자갈치시장.
지문 채취, 일본은 무엇이 두려울까?

1박2일간 대마도 여행을 도와줄 안내자를 만났고, 승선 수속을 밟았다. 찜질방에서 자서 그런지 본격적인 여행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피곤하다. 멀미약을 먹을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울릉도 갈 때 극도로 고통스러웠던 악몽이 떠올라 약국으로 갔다.

대마도는 이제 부산에서는 이웃집 다녀오듯 하는 곳이다. 대마도의 북쪽 항으로 가면 1시간 남짓, 남쪽 항으로 가면 두 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자전거 타러 가기도 한다.

우리가 탄 ‘오션 플라워’호는 11시 30분에 출항했다. 나눠준 도시락을 12시에 먹었다. 다행히 멀미를 안 했다. 2시쯤 대마도 남쪽 이즈하라항 국제터미널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하는데 지문을 스캔하고 사진을 찍느라 몹시 오래 걸렸다. 이제 내 지문과 얼굴은 일본에 등록됐다. 내 정보가 언제 삭제될지, 어떻게 쓰일지 아무도 모른다. 유쾌하지 않다. 포스터를 보니 2007년 11월부터 시행됐다. 2010년에 동경 갔을 때도, 작년 겨울 후쿠오카에 갔을 때도 지문 채취를 했던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일본은 무엇이 두려울까? 권혁태 성공회대 교수가 쓴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라는 책을 보니, 일본은 한반도가 미국과 일본의 세력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한반도의 통일은 이처럼 일본과 같은, 우리를 둘러싼 외부세력까지 극복해야하는 지난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한반도는 우리끼리도 이판사판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한반도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개성공단은 거의 뇌사상태에 빠져들었다.

터미널 밖으로 나오니 햇볕이 쨍하게 내리쬔다. 모자를 쓰고, 팔 토시를 하고 중무장을 하고 나서 본격적인 투어에 나섰다.

대마도의 강남 ‘이즈하라’와 최익현 선생

대마도의 강남 ‘이즈하라’는 대마도 역사ㆍ문화의 중심지이자 쓰시마시청 소재지다. 대마도 인구가 3만 6000명쯤 되는데 그 중 1만 6000여명이 이곳에 모여 산다. 조금 걸었는데도 땀이 마구 쏟아진다. 맨 먼저 수선사(슈젠지)로 갔다. 수선사는 1400년 전 백제의 비구니 법묘 스님이 창건했다는 절이다. 아주 작고 소박한 절이다.

안내자로부터 절에 대한 해설을 들었다. 이번 여행의 안내자 하신연씨는 부산 소재 여행사인 ‘여행마을’의 안내팀장이다. 부산 여성답게 성격이 싹싹하고 활달하다. 초등학생 딸을 둔 어머니다.

이 절은 한국인 관광객이 대부분 들른다는데, 그 이유는 면암 최익현 선생 순국비가 있어서다. 1905년 을사늑약이 맺어지자, 면암은 무려 73세의 나이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웠다. 곧 체포돼 이곳 이즈하라로 유배됐다. 일본은 면암에게 단발을 요구했고, 면암은 단식으로 맞서다가 결국 순국했다. 유해를 부산으로 송환할 때 장례행렬이 이 절에 들러서 갔다. 절 안에 면암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는데, 보지는 못했다.

현재 이 절은 주로 납골당으로 쓰이는 것 같다. 절을 나오는데 절 맞은 편 집에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라는데, 나무 이름이 남천나무란다. 처음 들어봤다. 일식 도시락에 장식으로 들어 있는 나뭇잎이 바로 남천나무란다.(요즘은 대부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넣지만)

시내 길거리를 걸었다. 시내라고 해봐야 작은 시골마을 규모다. 도로표지판, 식당 간판, 카페 간판에서 한국어를 찾기가 어렵지 않다. 시내 가운데로 깨끗한 하천이 흐른다. 오리도 산다. 마쯔리를 알리는 밀러천이 나부끼고 7월 21일 참의원선거를 알리는 포스터도 붙어 있다.

이번 참의원선거는 ‘거인과 다섯 꼬마의 대결’로 불린다. 자민당이 압도적 우세를 보이는 가운데, 민주당ㆍ공명당ㆍ일본유신회ㆍ다함께당ㆍ공산당의 비례대표 후보 지지율이 모두 한 자릿수로 비슷하다. 중국ㆍ일본ㆍ한국 등이 서로 돕고 평화롭게 살아가야 동북아 정세가 안정될 텐데, 현재로는, 특히 아베가 이끄는 현 일본 정치구도로는 참으로 요원한 일이다.

▲ 조선통신사의 비.
소 다케유키와 덕혜옹주

대마도역사민속자료관으로 갔다. 자료관 입구에 고려문이 세워져 있고, 더 올라가니 커다란 나무 밑에 조선통신사비가 세워져 있다. 17세기 초부터 19세기 초까지 200년간 열두 차례에 걸쳐 조선통신사 일행이 일본을 오갔는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한 비석이다. 여기 말고도 시내 곳곳에 통신사 일행이 다녀갔다는 터를 표시한 팻말이 세워져 있다. 조선통신사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나중에 중단됐다. 관련 자료를 보면, 조선통신사 비용이 550억 엔이나 들었다고 한다.

자료관 안으로 들어갔다. 자료관의 규모는 작았지만 조선통신사 행렬, 고려청자, 조선시대 다완, 훈몽자회, 일본어 통역서인 첩해신어 등이 전시돼있다. 특히 덕혜옹주의 남편이었던 소 다케유키가 그린 유화가 눈길을 끌었다. 대마도 도주의 조카 또는 양아들로 알려진 소 다케유키는 알려진 것처럼 절름발이에 애꾸눈이 아니라, 영문과 출신의 미남으로 그림도 잘 그렸다는 얘기도 있다.

자료관에서 내려와 대마도 도주가 머물렀다는 가네이시성터공원으로 갔다. 문을 들어서니 ‘이왕가 종백작가 어결혼 봉축 기념비’라고 새겨진 비석이 서있다. 대한제국 당시 고종의 딸 덕혜옹주와 소 다케유키가 정략결혼한 뒤, 덕혜옹주가 이른바 시댁인 대마도를 찾았을 때 우리 동포들이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원래 시내의 신사 앞에서 나뒹굴고 있던 것을 2001년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덕혜옹주는 1912년 고종이 60세에 궁녀 양귀인에게서 얻은 고명딸인데, 나라 잃은 땅에서 태어난 비운의 희생양이었다. 1925년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시켜야한다’는 일제의 요구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갔고, 아오야마에 있는 여자학습원을 다녔는데 항상 말이 없고 급우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1930년 봄부터 몽유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조발성치매증(정신분열증)으로 진단됐다.

1931년 소 다케유키와 결혼했고, 이듬해인 1932년 딸 정혜를 낳았다. 그러나 덕혜옹주의 병세는 더욱 악화됐고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며 결국 1955년 이혼했다. 외동딸 정혜는 1956년에 결혼했지만 바로 이혼했고 3개월 뒤 유서를 남기고 일본 남알프스산악지대에서 실종됐다. 덕혜옹주는 1962년 귀국했지만 실어증과 지병으로 고생하다 1989년 낙선재에서 76세를 일기로 한 많은 생을 마쳤다. 유해는 홍유릉에 묻혔다.

‘티아라’와 ‘유따리랜드쓰시마’

이즈하라 시내의 중심 건물은 ‘티아라’로도 불리는 일본관광물산관이다. 티아라는 여성이 쓰는 작은 왕관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대형 쇼핑몰이자 이즈하라의 커뮤니티센터 같은 곳이다. 쇼핑센터ㆍ우동가게ㆍ100엔샵ㆍ슈퍼ㆍ햄버거가게ㆍ도서관 등이 모여 있다. 슈퍼마켓 구경을 갔다가 보리로 담가 숙취가 없다는 대마도 소주인 야마네코 소주를 한 병 샀다.

상표 야마네코는 대마도 천연기념물인 산고양이(삵)를 가리킨다. 일본어 ‘야마’는 산, ‘네코’는 고양이다. 대마도에는 시마토쿠라는 게 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상품권 같은 것인데 5000엔을 내면 시마토쿠 6000엔짜리를 주니 20% 이득이다.

저녁을 먹기 위해 버스를 타고 미진도정에 있는 ‘유따리랜드쓰시마’라는 곳으로 갔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온천과 수영장, 헬스클럽과 식당, 야외에서 고기 구워 먹을 수 있는 곳이 합쳐진 종합 휴식공간이다.

노천해수탕에 몸을 푹 담그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니 비록 잠시지만 한국에서의 이런저런 일들이 모두 잊히는 듯했다. 밖으로 나오니 고기 굽는 냄새와 연기가 코를 자극했다. 우리 일행은 건물 안 식당에서 선어요리와 나베요리를 배부르게 먹었다. 일본인들은, 우리처럼 갓 잡은 활어회가 아니라 며칠 동안 냉장고에서 숙성시킨 선어회를 좋아한다. 선어회는 활어회에 비해 쫄깃한 맛은 약간 떨어진다.

대마도는 산이 88%가 넘는 섬이다. 그래서 농경지가 적고 곡물과 식재료도 풍부하지 않다. 당연히 식재료 값이 비싸고, 그래서 음식문화가 별로 발달하지 않았다. 대마도에는 어부들이 바닷가에서 불을 피워 달군 돌 판에 생선ㆍ조개 등을 구워먹었던 데서 시작한 ‘이시야키’라는 해산물 돌 구이요리와 닭ㆍ해산물ㆍ버섯ㆍ두부ㆍ채소 등을 넣고 함께 끓여 먹는 ‘이리야키’라는 전골요리가 있는데, 아마도 건물 안팎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그것을 약간 변형한 저녁식사인 것 같았다.
/신현수 시민기자

※ 신현수씨는 부광고등학교 국어교사이자 시인이며,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