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⑪ 설국열차

설국열차 | 봉준호 감독|2013년 개봉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찬반격론까지 벌어지는 양상을 보면 수 년 전 심형래 감독의 ‘디워’ 논쟁과 비견할 만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판이하다.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논쟁도 있긴 하지만, ‘설국열차’ 논쟁의 핵심은 결국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논쟁이며, 이는 현재 관객들이 살아가고 있는 한국사회에 대한 해석과 그 해석에 따른 대안의 ‘다름’에서 오는 논쟁이다. 일종의 ‘정치적’ 논쟁인 셈이다.

무슨 사회포럼도 아니고 고작 영화 한 편을 두고, 이 사회에 대해 현재 너머의 ‘다른’ 내일에 대해 갑론을박할 수 있다니!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 논쟁 내용에 대한 찬반을 떠나, 나는 봉준호 감독이 자신의 목표를 충분히 성취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봉 감독은 여전히 훌륭한 감독임에 틀림없다.

우선 내 감상평부터 말하자면, 솔직히 이 영화에서 그다지 큰 재미를 얻지는 못했다. 워낙에 사지절단 피 뚝뚝 흐르는 장면을 못 견뎌 하다 보니, 열차의 꼬리 칸에서 ‘신성한 엔진’이 있는 맨 앞 칸으로 한 칸 한 칸 이동하는 과정이 재미보다는 고통이었다. 게다가 언어와 정서의 소통이 수월하지 않았을 외국 배우들로부터 캐릭터를 살려내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던 것일까, 봉 감독의 전작들이 보여주었던, 깨알 같은 조연까지 생생히 살아 있는 캐릭터들의 향연을 이 영화에서는 찾기 어려웠다. 마치 컴퓨터 오락처럼 열차 칸마다 미션을 수행하며 전혀 다른 칸으로 이동하는 다이내믹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다소 맥 빠지는 이야기 전개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부재가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감독은 캐릭터의 재미가 살짝 빠진 빈 구석을 채우려는 듯, 이전 영화보다도 훨씬 더 많은 정치적 은유들을 집어넣었다. 지구온난화가 빚은 참극으로 새롭게 시작된 빙하기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류가 탄 열차가 자본주의를 빗대고 있음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다. 열차의 특징인 칸칸이 나뉜 공간으로 계급사회의 위계가 선명히 드러난다. 영화 초반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 열차의 균형과 질서를 지키는 길이며, 살 수 있는 길”이라는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튼)의 연설은, 자본주의 사회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우리들에게 유포하는 프로파간다와 일치한다. 꼬리 칸 사람들은 열차에 무임승차한 ‘잉여’들로 노동할 권리마저 박탈당했다. 여기서 노동할 권리, 즉 복직을 요구하며 철탑으로 올라간 노동자들이 겹쳐지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신성한 엔진’으로 완벽한 균형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설국열차는 절대자 윌포드(에드 해리스)도 인정했듯 외부와 차단된 ‘폐쇄된 생태계’이다. 폐쇄된 생태계 안에서 멸종되는 것이 단지 담배나 총기 뿐은 아닐 것이다. 담배처럼 총기처럼 조금씩 멸종되어가는 세계, 철저한 계급착취의 잔인함으로 유지되는 균형과 질서,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의 모습이다.

누가 봐도 답이 안 나오는 이 폐쇄된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은 ‘열차 바깥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공포이다. 나갈 수 없으니 버티는 것이고, 그 버팀을 견고한 이데올로기로 재생산하며 체제를 유지한다. 이 또한 현재 우리의 모습 그대로이다.

하기에 폐쇄된 생태계에 갇혀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인 채 버티고 있는 꼬리 칸 사람들은 영화에 머물지 않고 관객들에게 자꾸 질문을 던진다. 계속 이렇게 살 거야? 지속 불가능한 이 세계에서 주저앉아 있을 거야?

영화에서는 꼬리 칸에서 앞 칸으로 한 칸 한 칸 처절하게 나아가는 반란의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반스)와 앞이 아닌 ‘옆’, 즉 궤도 바깥을 향하는 남궁민수(송강호)가 있다. 두 사람의 목숨을 건 도전은 보통의 할리우드 영화가 보여주는 명쾌하고 감동적인 승리담이나 화해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에 대한 논쟁의 반대편에는 결말이 허무하다는 이야기가 꽤 많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다. 질주하는 설국열차를 멈추는 것은 영화의 몫이지만, 질주하는 자본주의를 멈추는 것은 영화가 아닌 바로 우리,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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