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업도 기행 (하편)

▲ 개머리초지 끝에 있는 낭개머리에서 무용수들이 즉흥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6월 21일, 굴업도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이 밝았다. 어제,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대표 김원) 일행들과 이곳에 들어왔다. 연평산을 올랐고, 코끼리바위 와 종팽나무 언덕에서 펼쳐진 예술인들의 춤 공연도 봤다.

잠을 푹 잔 덕분인지, 전날 꽤 힘든 탐방이었는데도 몸이 많이 피곤하진 않았다. 숙소에 있던 누군가는 ‘공기가 맑아서 자고 일어나니 머리가 개운하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사실 잠들기 전, 혹시 꿈에 뱀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다. 평소, 뱀이 아니라 뱀 비슷한 호스나 줄이 땅에 떨어진 걸 보고도 괜히 놀라곤 한다. 그런데 어제는 뱀과 관련한 두 가지 사건을 한꺼번에 겪었다. 한 가지는 탐방 중 죽은 뱀을 바로 발아래에서 본 일이었다. 다른 한 가지는 탐방을 마치고 온 저녁에 일어났다.

저녁식사를 한 후 꽃게가 삶아지기를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가족과 함께 온 일곱 살짜리 꼬마가 우리 방문 앞을 서성였다. 뭔가 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다. 누군가 “들어와”라고 부르자, 들어오지는 않고 대뜸 “저기 마당에서 뱀 봤어요. 엄청 커요”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였다. 꼬마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놀란 것이 분명하다. 나도 깜짝 놀라 물었다. “무슨 색?” “검은색이요” “어디서 봤어?” “마당 화장실 앞에서요” “지금 어디로 갔어?” “이장님(서인수 굴업도 전 이장)이 막대기로 멀리 던졌어요”

아마 뱀이 아니라 먹구렁이가 아닐까 싶다. 굴업도에는 전래동화에만 나오는 줄 알았던 구렁이가 여전히 사람과 섞여 살고 있다. 구렁이는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지정돼 환경부의 보호와 관리를 받는 동물이다.

굴업도에는 구렁이만이 아니라 역시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매, 보호대상 야생동물인 검은머리물떼새도 있고, 왕은점표범나비도 산다. 이럴 진대, 뱀이 꿈에 나올까 두려운 것도 과장은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오전 9시, 다시 탐방길에 올랐다. 원래 일정은 2박3일이지만, 나를 비롯한 몇몇은 오전 탐방을 마치고 곧바로 육지로 나가야한다. 박민영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실행위원장이 ‘여기는 꼭 가봐야 한다’며 원래 일정을 수정했다. 덕분에 개머리초지(서섬 초지)에 갈 수 있었다.

▲ 씨제이(CJ) 쪽에서 세운 표지판. 사적 소유의 땅이니 ‘무단침입’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CJ그룹 소유 땅 밟지 않을 확률, 1.5%밖에 안돼

초지로 가기 위해선 작은 산을 올라야한다. 그런데 날카로운 철조망이 산 입구를 막아서고 있다. 옆에는 글자가 잔뜩 적힌 표지판도 있다. 내용을 한 마디로 줄이면, 사적 소유의 땅이니 ‘무단침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표지판은 씨제이(CJ) 쪽에서 세운 것이다.

잠시 잊고 있었다. 굴업도가 야생동물이 아닌, CJ그룹의 땅이라는 것을. CJ그룹 이재현 회장 일가는 100% 지분을 출자해 C&I레저산업을 설립했다. 이후 C&I레저산업은 굴업도 전체 부지 중 무려 98.5%를 사들였다. 이곳에 대규모 골프장을 중심으로 콘도 등 숙박시설, 요트장, 쾌속선 선착장 등 관광단지를 조성하려는 계획이었다.(‘만인의 섬 굴업도’ | 이희환 지음. 참고)

굴업도에서 CJ그룹 소유의 땅을 밟지 않을 확률이 1.5%밖에 안 된다니. 어떻게 섬 하나를 통째로 사들일 생각을 하고 실행까지 할 수 있는지, 자본의 무지막지함이 날카로운 철조망만큼이나 섬뜩하다. 철조망이 대수냐. 참가자들끼리 서로 철조망을 잡아준 덕분에 모두 무사히 산으로 ‘침입’할 수 있었다.

산에 올라 조금 걸으니 풀밭이 펼쳐졌다. 탄성이 바로 나왔다. 절벽과 바다와 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왼쪽과 오른쪽 아래로는 바다가, 저 앞엔 산과 절벽이, 그리고 내가 걷는 이곳은 풀로 뒤덮인 언덕이다. 인간 세상이 아닌, 머나먼 자연의 땅에 깊이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과연, 돈이 있으면 탐낼 만한 곳’이란 생각을 했다가 퍼뜩 고개를 흔들었다.

아마 멀리서보면 이날 굴업도는 커다란 구름에 휩싸여 있었을 것이다. 해무(海霧)가 온 섬을 뒤덮은 것이다. 게다가 바람까지 많이 불었다. 언덕 아래에서 안개가 밀려 올라와 나를 통과해 뒤로 넘어가는 모습이 신비로웠다. 문득 프리드리히의 그림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가 떠올랐다. 멀리 험하고 거친 산이 있고 그 앞을 안개 바다가 뒤덮고 있다. 발 디딜 땅이 보이지 않는다. 안개를 빼곤 굴업도 풍경과 그다지 비슷한 점은 없지만, 왠지 그림에서 느껴지는 고독과 막막함이 이곳에서도 느껴지는 것 같다.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는 굴업도의 운명이 가슴 아팠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잠시 지체하는 사이 일행이 저만치 앞서 갔다. 그래도 잠시 후면 이곳을 떠난다는 생각에 발걸음은 빨라지지 않았다.

얇은 줄기에 작은 잎이 빽빽하게 나 있는 나무 무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생김새가 독특하다. 섬에서만 볼 수 있는 소사나무라고 한다.

 
섬을 훼손하지 않고 사람들을 맞을 수 있는 대안은

소사나무 숲을 지나 잠시 후 개머리초지 끝에 있는 낭개머리에 도착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이다. 풍경 이야긴 더 이상 하지 않으려 했지만, 안 할 수가 없다. 정말 기가 막힌다. 일정을 바꿔준 박민영 실행위원장이 고맙다. 이곳에서 어제 공연한 무용수들이 즉흥공연을 보여준다고 했다.

공연을 준비하는 사이 박 실행위원장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그는 건축가다. 건축가인 김원 대표를 따라 굴업도에 왔다가 이곳에 반해 실행위원장까지 맡았다. 그는 아름다운 섬에 골프장이 들어서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고 했다. 2010년 처음 굴업도에 발을 디딘 후 서른 번이 넘게 굴업도에 다녀갔다. 활달한 성격만큼이나 섬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넘쳐난다. 그에게 예술인들이 이곳에서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 건지 물어보았다.

그는, CJ가 굴업도를 골프장으로 개발하겠다고 나섰고, 1년이면 1만 명이나 되는 관광객이 이곳으로 찾아오는 상황에서, 최대한 섬을 훼손하지 않고 사람들을 맞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 그 대안 중 하나가 바로 문화예술이 펼쳐지는 섬으로 만드는 것이다.

“어제 공연 멋있었죠? 별다른 음향시설이나 조명이 없어도 감동이 느껴지잖아요. 생태계를 파괴하는 골프장과 리조트 대신 이런 문화예술 활동이 펼쳐진다면 어떨까 싶어요”

하지만 문화예술이 펼쳐진다 해도, 어차피 더 많은 이들이 섬을 찾을 테고, 결국 생태계 파괴는 시간문제가 아닐까? 그가 다시 대답했다.

“맞아요. 배편이 많지 않아 굴업도에 들어오면 무조건 하룻밤을 보내야 해요. 아예 텐트를 가지고 야영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래서 쓰레기 문제도 발생하고 사슴 같은 야생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죠. 실제로 사슴과 염소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해요. 그런데 꼭 이 섬에서 잠을 잘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바다에 크루즈 같은 배를 띄워 그곳에서 밤을 보내고 공연도 보고, 섬에서는 생태탐방만 하는 거죠.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도록 생태탐방로도 만들고요. 섬에 체류하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을 구상해야죠”

▲ 개머리초지로 가는 언덕 길. 안개가 자욱했다.
하늘과 바람과 바다와 우리

공연 준비가 다 됐단다.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공연 제목을 놓쳤다. 언뜻 ‘삼선녀’라고 하는 것도 같다. 푸른 색 의상을 입은 무용수 세 명이 나타났다. 바람이 옷자락을 날린다. 조금 전 이곳에 와 처음 맞춰 본 즉흥공연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한참 공연을 보고 있자니, 어제 저녁 좀팽나무 언덕에서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이제야 감이 온다. 그것은 기쁨도 슬픔도 아닌,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 그리고 이것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었다. 무용수들의 동작은 하늘과 바다와 너른 풀밭에 비해 너무나 작고 멀었다. 그럼에도 손끝과 팔꿈치와 어깨의 섬세한 동작 하나까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두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늘도 땅도 사람도, 과장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원래 모습을 잃고 산산이 흩어져버릴 것 같아 감히 표현하기도 두려운 어떤 것이 가슴 안에 가득 들어찼다.

공연이 끝나고 온 길을 되돌아 다시 숙소로 왔다. 점심을 먹고 배낭을 챙겼다. 배에 올라 다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역시 멀미약 때문이다. 인천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굴업도에 다녀온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그 사이 탐방에 참가한 이들은 각자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이메일로 공유했다. 마지막에 본 공연 제목은 ‘하늘과 바람과 바다와 우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다시 굴업도에 가고 싶지는 않다. 우선 환경적인 이유를 들자면, 난 사슴과 염소를 괴롭히기도, 쓰레기를 늘려 굴업도의 생태계를 파괴하기도 싫다. 정치적인 이유를 들자면, 난 그곳이 어떤 식으로든 관광지로 개발되는 것에 반대한다. 문화예술인들이 제시한 대안에도,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직 완전히 동의는 못하겠다. 어디까지나 내 감상적인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으로, 굴업도는 내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곳이다. 그곳은 내가 가 본 곳 중에서 가장 거칠고 낯선 땅이었다. 눈앞을 맴도는 날파리며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뱀과 구렁이를 신경 쓰는 것이 귀찮고, 두렵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굴업도에 갈 것이다. 그곳의 구렁이와 뱀이 농약과 사람 때문에 사라져 갈 위기에 처한다면, 나는 멀미약을 마시고 꾸벅꾸벅 졸며 다시 바다를 건널 것이다. 그리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쓸 것이다. 앞으로 구렁이와 뱀이 굴업도에서 새끼도 낳고 건강하게, 앞으로도 수천 년을 동네 사람들과 사이좋게, 그렇게 잘 살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다. 그런데, 굴업도에 가지도 않고, 굴업도가 위기에 처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음, 굴업도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다시 처음과 같은 고민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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