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과학이야기 69. 개미(2)

 
내가 만일 죽어서 지옥에 간다면, 그곳은 불구덩이가 아닌 개미굴일 것이다. 컴컴한 지하에서 평생 개미들의 노예로 일을 해줘야 할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방이건 마당이건 어디에서나 개미와 함께 지내다보니 그만큼 개미를 괴롭힌 일도 많았다.

땅바닥에 떨어진 과자 주위로 개미가 떼 지어 몰려있을 때, 그 중 어딘가 한 곳을 살짝 건드리면 신기하게도 그 많은 개미들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먹이를 두고 혼비백산 도망치는 개미들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납작하게 만드는 게 재미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끔찍한, 후회되는 일이다.

그런데 개미들은 어떻게 금세 위기를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내가 본 바로는, 가장 먼저 위기를 느낀 개미는 빠르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주위 개미들을 만난다. 그러면 천천히 움직이던 주위 개미들도 갑자기 동작이 빨라지며 부산스레 움직인다. 그렇게 순식간에 개미 떼 전체로 퍼져나갔다. 내게는 그 모습이 꼭 귓속말을 주고받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개미도 사람처럼 귓속말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개미는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귀에다 대고 말해야 겨우 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개미들도 소통을 한다. 그들의 의사소통 수단은 귓속말이 아닌 냄새다. 개미집은 지표면으로부터 1.5m 아래까지 뻗어있는데, 이는 개미 몸길이의 약 400배에 해당한다. 사람 평균 키를 170cm로 하면 높이 약 700m 건물을 짓고 사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 최고층 건물인 ‘두산위브더제니스’(부산 해운대)는 300m이고, 세계 최고층 건물인 ‘부르즈 할리파’(두바이)가 828m인 걸 생각하면, 개미의 건축 실력이 사람보다 나은 것 같다.

이렇게 깊고 어두운 곳에서 생활하다보니, 개미는 시각이나 청각보다는 후각으로 주위를 파악하고 의사소통을 한다. 사람의 코에 해당하는 개미의 후각기관은 머리에 달린 더듬이 끝부분에 있다. 개미들은 아주 민감한 이 부분을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상대방의 냄새를 맡고 주변 지형과 위치, 방향에 관한 정보를 파악한다. 지상에서는 땅에 배를 스쳐 자신이 다녀온 길에 냄새를 남긴다. 그래서 먹이를 구하거나 정찰을 나갔다가도 이 냄새를 따라 집으로 되돌아온다.

개미는 열 종류가 넘는 ‘페로몬’을 배출해 다양한 신호를 만들어낸다. 한 가지 페로몬이라고 해도 농도에 따라, 장소에 따라 다른 뜻을 갖는다. 어떤 때는 페로몬 두 가지를 조합해 신호를 보낸다. ‘나는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 ‘위험이 생겼다’ ‘빨리 와. 도움이 필요해’ ‘다른 군락의 개미가 있다’ 등,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다양하다.

책 ‘개미언덕’에서 저자 에드워드 윌슨은 “일개미의 뇌 속에 가득 찬 화학적 감각을 인간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개미가 인지하는 것의 실체를, 또는 개미의 마음속을 스쳐 지나가는 의미의 어조나 내용이나 그 조합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개미 군락이 인간의 감각으로는 그저 고요하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우레와 같이 시끄러운 개미들의 페로몬 대화로 가득 차 있다”고 썼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왕개미의 존재였다. 그동안 여왕개미를 일생 동안 알만 낳는 무력한 존재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여왕개미의 생존은 개미 군락의 존폐 그 자체였다. 여왕개미는 개미 군락에서 단 하나의 ‘생장점’과 같다. 일개미들은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서로 이타적인 행동을 한다. 윌슨은 이를 두고 개미 군락 자체를 하나의 생물에 비했다.

서로 다른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개체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가 사라지면, 군락도 사라지고 만다. 개미 집단은 여왕개미와 암컷 일개미, 암컷 병정개미들로 돌아가는 모계중심의 사회였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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