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만들어진 한시법 성격의 법률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4개월도 안 된 1948년 12월 1일 제정됐다. 그 해 11월에 발생한 이른바 ‘여순 사건’을 계기로 남한 좌익세력의 ‘준동’을 막고 이들을 제거하려는 의도로 서둘러 제헌의회에서 제정한 것이다. 국보법이 처음 시행된 1949년 한 해 동안 이 법으로 구속된 사람은 무려 11만8천명에 달했고, 132개 정당과 사회단체가 해산됐다. 형법이 제정되기도 전에 이 법을 임시특별법으로 서둘러 제정한 데는 이런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 법은 일제강점기의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만들어진 한시법 성격의 법률이기 때문에 사실 형법(무엇이 범죄이고, 그것에 어떠한 형벌을 과할 것인가를 규정한 법률)이 제정되면 폐기될 법이었다. 
그러나 한마디로 국가를 형성해 가는 혼란기에 ‘북한과 연계된 좌익세력들이 정부를 참칭하는 것을 막기 위한’ 미봉책의 한시법은 당시가 전시상황이었다는 한가지 이유로 모질고 질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이 진행되던 1953년 형법 제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당시 입안자들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목적으로 관련 규정을 내란죄, 외환죄, 공안을 해하는 죄 등으로 형법 각칙의 여러 조문에 포함시켜 정비했으나 전시의 치안 상태와 국민에게 주는 심리적 영향을 고려해 남겨둔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개정이 곧 개악, 몸집 불린 국보법

폐지되지 않고 살아남은 국가보안법은 지난 56년 동안 모두 7차례 개정되면서 처음 6개였던 조항이 25개 조항으로 늘어났다.
전시라는 이유로 죽음을 면한 국보법이 남북대치상황을 빌미로 정권을 지키는 ‘정권보안법’으로 전락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1958년 3차 개정 당시 정부와 여당은 무술경관을 동원해 야당의원들을 국회의사당 밖으로 끌어낸 뒤 여당의원만으로 3분만에 언론탄압용 ‘인심혹란죄’를 규정했다.
1991년 7차 개정 시에는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야당의원들에게 심의, 표결에 참여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여당의원들만의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독소조항, 지극히 해롭거나 나쁜 요소가 있다

법리적으로 볼 때 국보법이 폐지돼야 하는 결정적인 근거는 법이 남용돼 왔고 죄형법정주의(어떤 행위가 범죄이며, 그 범죄에 어떤 형벌을 주느냐 하는 것은 미리 정해진 법률에 따라서만 가능하다는 주의)에 반한다는데 있다.
또 형법은 구체적인 행동을 처벌의 대상으로 삼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예비음모까지 처벌받아야 하는 것은 분명 법 정신에 어긋난 것이다.
특히 반국가단체 규정범위가 불명확하다 보니 수없이 많은 인권침해의 요인이 됐다.
이밖에 언론, 출판, 학술, 예술활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제7조 찬양고무죄, 선악이나 시비에 대한 윤리적 판단에까지 국가가 개입한다는 비판을 받아 온 제10조 불고지죄도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다.

 

시대가 변했다, 남북관계도 국제관계도 

1991년 9월18일 남북은 동시에 유엔에 가입 국제법적으로 공식 인정된 독립국가 지위를 가지게 됐다.
때문에 ‘한반도의 북측 지역을 무단으로 점령하고 있는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국제법상 사실상의 국가로 보는 것이 변화된 시대적 환경과 국제법에 맞는 해석이다.
또한 현재 남한에는 탈냉전과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기본합의서나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 등이 존재하고 있다.
2000년 6월 15일에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민족끼리 통일하자’는 공동선언문까지 발표했다. 남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금강산을 오르고 평양을 방문하고 남한 기업이 북녘 땅에서 기업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북한을 여전히 ‘반국가단체’라고, ‘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 아닌가. 이 같은 모순은 오히려 국민들에게 혼돈을 부추기고 있다.
 
폐지되면 국가안보가 위태로운가?

수구보수진영은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국가기강이 흔들리고 나라가 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폐지할 경우 처벌 규정의 공백이나 국민 정서상 불안 등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은 형법의 처벌규정과 내용상 중복되고 있어 관련법 규정으로 대체할 수 있다. 간첩행위를 하면 형법상 간첩죄로, 국헌문란과 변란을 일으키면 형법상 내란·외환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전한 핵심은 국가보안법을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정권유지를 위해 철저히 이용해왔다는 것이다. 그 속에 인권과 진정한 자유, 민주화는 존재할 수 없었다.
폐지를 반대하는 수구보수세력은 자신들의 권력과 입지를 유지하는 것을 ‘국가 안보’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국민도 그 착각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가. 이제 그 진의를 가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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