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이 만난 사람] 10년차 집배원 김씨

올해 초 한 술자리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과 집배원들의 업무 이야기를 나눴다. 나에게 형님 뻘되는 그는 우체국 비정규직인 ‘상시위탁집배원’으로 5년째 일하고 있다. 이야기는, ‘신문을 독자들에게 우편발송 하는데, 너무 늦게 배달되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런 건가’라는 내 질문에서 시작했다. 그는 “집배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미안해했다.

그가 들려준 집배원들의 현실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헤어진 후 최근 그에게 전화를 했다. ‘인천투데이이 만난 사람’으로 집배원 이야기를 다루고 싶으니, 시간을 내달라고. 그는, 자신은 5년차라 적당하지 않은 것 같고, 좀 더 오래 일한 동료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6월 21일 밤 8시 무렵, 인천의 한 식당에서 10년차 집배원 김아무개씨를 만났다. 30대 중반인 그는 비정규직으로 3년 정도 일하다 정규직이 됐다. 이름과 정확한 나이, 근무처를 밝히지 않는 것은 그의 신변 보호를 위해서다.

보람과 열악한 근무조건에서 오는 안타까움 ‘상존’

▲ 인천의 한 우체국에서 집배원들이 오토바이에 우편물과 택배를 싣고 배달에 나서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인천투데이 자료사진>
김씨는 우체국 하청 운송업에 종사하던 지인의 추천으로 우체국에 들어갔다. 처음엔 집배원이라는 직업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당시 집배원이라는 직업을 바라보는 사회 인식이 ‘사회생활의 막장’ 정도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와 대기업 사내하청업체 교육생으로 일 했어요. 그곳에 외국인노동자도 많았는데, 그들의 급여가 우리의 절반 정도였어요. 그런 그네들이 하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죠. ‘자기 나라에 돌아가면 집 있고, 차 살 수 있다. 너는 지금 집 없지, 차 없지, 여자 없지…’ 하는 거였어요. 내가 불쌍하게 여긴 그들이 오히려 나를 불쌍히 여기더라고요. 그 말이 틀리지 않으니, 짜증이 나 더 이상 일을 못하겠더라고요. 정규직이 될 가망도 보이지 않았고요”

그렇게 시작한 집배원 생활,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적응할 수 있었다. 정규직이 되니 급여도 올랐고, 결혼해 가정도 꾸렸다. 아이들도 낳았다. 그는 2년 전만 해도 근로소득원천징수 영수증에 적힌 연봉이 3000만원이 안 됐지만 지금은 넘는다고 했다. 그리고 보람을 느낄 때도 있다고 했다.

“혼자 사는 할머니,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전해줄 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끼죠. 하지만 열악한 근무여건 때문에 너무 힘들고, 국민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게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때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국민과의 약속’은 우편물을 규정에 맞게 제 때에 배달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 12시간 이상, “계획한 시간에 통과하지 못하면 불안”

집배원들은 원래 9시 출근이지만 보통 8시 전에 출근한다. 7시에 출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동별로 보통 10명 안팎으로 팀을 꾸려 배달하는데, 각자 담당 구역을 또 나눈다. 출근하면 공동으로 우편물을 분류한 뒤 보통 9시에서 9시 반 사이에 배달을 나간다. 들어오는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각자 계획한 시간을 맞추려고 애쓴다.

김씨는 보통 오후 1시 30분 정도에 점심을 먹는다. 식사 하는 데 30분정도 걸린다. 팀원 일부가 모여서 싼 곳을 찾아간다. 보통 한 끼에 4000원 정도 사용한다. 점심을 거르는 이도 많다. 비오는 날이나 물량이 많은 날엔 식사를 거르는 일이 잦다. 어차피 늦었는데, 밥이나 먹고 하자는 사람도 있다. 배달 물량을 소화한 뒤 우체국에 들어오면 곧바로 다음날 배달할 우편물을 분류한다. 퇴근하는 시간은 보통 7시가 넘는다.

‘폭주기’에는 상황이 다르다. 카드명세서나 전화요금고지서 등이 넘쳐나는 매달 15일에서 23일까지를 폭주기라 한다. 명절 2주 전부터도 마찬가지다. 선거 때는 선거 홍보물 때문에 ‘특별 소통 기간’이다. 이런 때는 거의 밤 10시를 넘어 퇴근하고 주말에도 일한다. 고객의 입장에선 그만큼 늦게 우편물을 전달받는 셈이다.

“내가 계획한 시간대에 어느 지점을 통과하지 못하면 불안해져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죠. 집배원 생활을 좀 하다보면, 이 우편물을 (고객이) 받아야하는 건지, 돈 내라는 건지 알 수 있어요. 물량이 많아 제 시간에 소화하기 힘들 때 그런(고객의 입장에서 받지 않았으면 하는) 우편물은 뒤로 미루기도 해요. 우편물을 등기와 소포(=등기 택배), 일반우편(=편지)으로 분류하는데, 등기와 택배가 하루 100통 미만이어야 적당하다고 봐요. 물론 그것도 편지량에 따라 달라지지만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 지금은 150통 이상 배달해야해요. 일반우편은 하루 평균 1500통 정도 배달하고요. 일반우편은 금방 끝나요. 꽂고 가면 되니까”

등기는 원래 고객에게 직접 전달한 뒤 수령 확인 사인을 받아야한다. 때문에 직접 전달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때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도착통지서를 쓰는 것도 시간이 걸리고, 도착통지서를 보고 고객이 전화하면, 그 전화를 받느라 또 시간이 소요된다. 한마디로 시간과의 싸움이다. 때문에 규정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방세고지서 같은 등기는 우편함에 꽂기도 한다.

시간이 가장 많이 소요되는 우편물은 택배다. 주인을 기다려야할 때도 있고, 요구하는 게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우체국에선 ‘주인이 없을 때 일단 고객과 통화한 상태에서 경비실 등에 맡기라’고 한다. 우편서비스를 평가하는 콜센터를 운영하는데, 거기서 민원이 생기면, 사후 처리를 해야 하는 문제도 따른다.

“우체국은 민원에만 신경 쓰죠. 우편물이 제 때 도착하지 않았다, 친절하지 않다는 내용의 민원이 들어오면, 사무실에서는 거의 개인에게 책임을 물어요. 가서 해결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2년 이상 배달하면 고객이 집배원 얼굴을 알아요, 거의 매일 보니까. 우체국 상대로 민원을 넣지, 집배원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아요. 인력이 충원되면, 바라는 대로 해줄 수 있어요. 핵심은 인력 문제라는 거죠. 두 사람 상대할 걸 한 사람만 상대하면 그만큼 서비스 질이 높아지는 것 아니겠어요”

“다치는 것과 죽는 것, 심적 충격 정말 달라”

▲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분류하고 있는 집배원들.<인천투데이 자료사진>
집배원들은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중 언제가 더 힘들까?
김씨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름이 더 힘들다고 했다. 또한 대부분의 집배원은 비올 때를 가장 힘들어할 것이라고 했다. “몸이 젖으면 우편물도 젖어요. 그래서 비를 피하다 보면 제 때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죠. 장마 때 그만 둔 사람이 많아요. 비를 좋아하는 사람도 집배원 하다보면 싫어하게 될 거예요”
시간에 쫓기다보니 사고도 많이 발생한다.

“다치는 사람이 정말 많이요. 그런데 다치는 것과 죽는 것은 심적 충격이 정말 달라요. 몇 년 전만 해도 과로사도 많았어요. 증명하지 못해서 그렇지. 주5일제를 하기 전에는 한 달에 하루 쉬기도 힘들었어요. 근데 지금이 예전보다 더 힘들어진 것 같아요. 원래 등기엔 세 가지(일반, 법원, 내용증명) 종류가 있었는데, 요즘은 카드, 보험, 계약(우체국과 계약) 등기처럼 주문하는 게 많고, 그걸 우체국에서 받아줘요. 배달하는 건 문제가 아닌데, 인력 충원은 안 되면서 갈수록 일만 늘어나는 게 문제죠.

얼마 전에 송도에서 집배원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판명 났다. 이를 두고 김씨는 “그 이면에는 사고를 무릅쓰고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을 만큼 시간에 쫒기는 현실이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연가 사용, 자신에게나 동료들에게나 부담

이렇게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집배원들의 처우는 어떨까?
“산재 처리에 대해 이야기할 게 많아요. 지역마다 산재 발생 건수가 우체국 경영평가에 반영돼요.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 1년에 한 번 주는 성과급에 차이가 나요. 예로 들면, 100만원에서 80만원으로 깎이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관리자들은 돈보다는 승진에 매달리죠. 그런 것 때문에 산재 처리를 잘 안 해주려고 해요. ‘산재 처리하면 너희들 성과급 제대로 못 받는다’고 하는데, 그건 그네들 이야기죠”

그의 이야기는 연차 휴가와 관련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예전에는 연가를 거의 안 썼어요. 최근에 많이 바뀌었죠. 이번에 비정규직들 불러 놓고 연가의 절반 정도는 쓰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20년 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가는 하루 당 돈으로 치면 세 배 정도 차이나 나요. 그러니 비정규직이 연가 쓰지 않는 것을 별로 신경 안 썼죠. 그런데 최근에 좀 달라졌어요. 연가 안 쓴 건 돈으로 지급해야 하잖아요. 하지만 일부만 지급해, 집배원들 사이에 어차피 돈으로 못 받는데 써야겠다는 이야기가 돌았죠”

그렇다고 연가를 마음대로 쓸 수는 없다.
“연가를 쓴 다음날 엄청 힘들어요. 팀원들이 나눠서 내 물량을 해주지만, 자기 업무가 있는 상태에서 다 소화해줄 수 없죠. 동료에게 모래주머니 하나 더 얹어주는 꼴이 되고, 휴가 다음날 출근하면 편지 쌓여있죠. 쉬면서도 그게 마음을 짓눌러 연가 쓰기가 두려워요”

집배원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2시간 이상이다. 그만큼 초과 근로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한 만큼 시간외수당을 다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김씨는 “아침에 시간외수당을 1시간 달아준다. 또, 폭주기에는 시간외수당을 거의 달아준다. 하지만 그 외는 관리자들이 물량을 보고 판단한다. 주말에 근무해도 시간외수당이 달리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력 충원으로 현실적 변화 절실”

김씨는 끝으로 노동조합에 관련한 이야기를 했다.
“노조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죠. 하지만 지금 노조는 인력 충원 요구를 말로만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똑같을 것 같은 게 문제죠. 노조 임원은 현업에서 일하지 않고, 지부장은 대부분 조합에서 상근해요. 노조 임원이 되는 순간 관리자로 확 변합니다. 50~60년 동안 그런 모습만 계속 봐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 형태로 가면 복수노조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봐요.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노조가 존재하는 의미를 알아야합니다. 지금은 조합원들을 위한 노조이기보다는 노조 임원을 위한 노조입니다. 전 정년까지 이 일을 하고 싶어요. 인력 충원으로 현실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게 절실합니다”

그와 만난 뒤 사흘 후 서광주우체국에서 일하던 한 집배원이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 18일 배달을 나서다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상태에 빠진 뒤라고 했다. ‘다치는 것과 죽는 것은 심적 충격이 정말 달라요’라고 했던 김씨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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