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기간엔 몸과 마음이 축 쳐진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십대에 비하면 그나마 많이 나아졌다. 나만 유독 그런가 싶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장마철엔 생체리듬에 관여하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뇌에서 제대로 분비되지 않는단다. 멜라토닌은 머리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빛의 양에 따라 분비량과 분비시간이 달라진다. 장마철 줄어든 햇빛은 멜라토닌 분비에도 영향을 미쳐, 신체리듬이 흐트러진다. 그래서 계절성 우울증이 생기기 쉽다. 햇빛 한 줄기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다니, 놀랍다. 인간은 대자연 앞에 순응해야 할 작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가 오락가락, 눅눅하고 후덥지근한 날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번 한자이야기는 日(해 일)에 관해 쓰기로 했다. 日은 해 모양을 나타낸 글자다. 네모 안에 가로 직선이 그려져 있는 데, 예전 문헌에는 동그란 테두리에 직선이 아닌 물결모양(~)으로 기록돼있다.

이 무늬에 대해 설왕설래 이야기가 오간다. 혹자는 태양의 흑점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고대에도 물론 흑점을 관측했다. 특히 우리 민족은 2000여 년 전부터 지구상 모든 민족 가운데 태양활동에 관한 가장 많은 기록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때도 맨눈으론 보긴 어려웠을 테니, 수정 등 반투명한 암석을 사용하거나 햇빛이 강하지 않는 아침이나 저녁 무렵에 관측했을 거라 추측한다.

가운데 무늬에 대한 또 다른 주장은, 이것이 발이 세 개 달린 까마귀, 삼족오(三足烏)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태양에 삼족오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 흑점을 삼족오라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삼족오는 하늘의 신과 인간 세상을 연결해주는 신성한 새로 여겨져 숭배의 대상이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동그란 태양 한 가운데에서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삼족오의 모습이 많이 그려져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직인에도 삼족오가 새겨져 있다. 수명도 참 길다. 그러고 보니,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에 그려진 불사조(不死鳥, 피닉스)도 태양을 상징하는 새라고 한다. 둘 다 수명이 긴 유전자를 가진 걸 보니 친척관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까마귀의 다리가 왜 세 개일까. 고대 자료를 보면, 태양이 양(陽)이니, 그곳에 사는 새의 다리수도 양수인 3으로 했을 거라 한다. 또, 주역의 팔괘(건곤감리태진손간) 가운데, 양을 나타내는 건(三)괘가 3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 천지인(天地人) 삼재사상을 나타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삼족오는 앞서 말한 것처럼 태양의 후손이라 자처한 고구려인의 자신감을 드러낸다. 고구려인이 숭배한 삼족오가 태양을 뜻하는 글자에 들어가 있다. 혹시, 우리 민족이 한자를 만드는 데, 주도적이든 아니면 단지 영향을 미친 것이든, 어떻게든 관여한 것은 아닐까? 나는 한자 공부를 이제 막 시작한 처지라 진태하 인제대학교 석좌교수처럼 ‘한자가 우리글이다’라고 강하게 주장할 처지는 못 된다. 진 교수의 말이 맞다 해도, 그것이 어떤 의미이고, 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할 깜냥도 되지 않는다. 다만, 현재와 고대를 잇는 한자의 생성 원리와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日의 의미를 알았으니, 여기서 파생한 글자 하나를 소개하고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日 아래에 一(한 일)을 둔 旦이란 글자가 있다. 一은 지평선이나 수평선을 뜻한다. 대지에서 이제 막 해가 솟아올랐다. 旦(아침 단)은 아침이란 뜻이다. 설날의 다른 말인 원단(元旦)에 이 한자가 쓰인다. 한자 공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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