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과학이야기 68. 세균(2)

2009년, 전 세계가 공포에 휩싸였다. 눈에 보이지도,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 무언가가 인간의 삶에 파고들었다. 곳곳에서 사망자가 발생했고, 혹여 내 주변에 옮길 세라 그 누구도 경계의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이 무시무시한 존재는 바로 H1N1이라 불리는 신종플루 바이러스. 당시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된 신종플루 사망자 수는 1만 8500여명이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논문을 통해 당시 사망자 수가 28만 4500명에 달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WHO에 보고된 수보다 무려 15배나 많다. 이는 전 세계 인구를 71억명이라 봤을 때, 2만 5000명 중 1명에 해당하는 숫자다. 우리나라 인구가 대략 4900만명이니, 이 가운데 무려 1960명이 사망하는 비율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사망자가 120여명에서 그쳤다. 조류독감 바이러스 치료제로 유명한 ‘타미플루’가 긴급 투입됐기 때문이다. 병원에는 신종플루로 의심되는 환자들로 들끓었고 약은 빠르게 소비됐다.
많은 이들이 애타게 찾은 것은 타미플루 말고도 또 있다. 바로 손소독제이다. 손소독제 생산업체들은 손소독제로 손을 씻으면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미생물의 99%가 사라진다며 광고를 해댔다. 살균으로 신종플루에 감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광고는 적중했다. 신종플루가 기세를 펼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손소독제는 품절돼 가게에서 구하기 힘들 정도가 됐다.

살균이 우리 몸에 이롭다는 것에 그 누구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왜냐하면, 수많은 전염병으로부터 인류의 목숨을 구해낸 것이 살균과 소독 등 위생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위생기술의 발달로 신생아와 산모의 사망률도 급격히 낮아졌다. 세균은 ‘공공의 적’이 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전염병 수는 급격히 줄어든 대신, 그 수치만큼 면역질환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도, 해결책도 모두 오리무중인 아토피 피부염과 알레르기, 비염, 천식 등이 모두 면역계통 질환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원인을 알기 위해선, 애초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전제조건을 되짚어봐야 한다. 과연 살균이 우리 몸에 이로울까? 그리고 모든 세균은 우리 몸에 해로울까?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이 있다. 사람의 몸무게 가운데 3kg은 세균의 무게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몸을 구성하는 체세포의 개수보다 세균 등 미생물세포의 숫자가 무려 열 배나 더 많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엄마의 산도에서 몸에 좋은 세균을 물려받는다. 좋은 세균을 만나지 못한 경우, 몸 곳곳에는 우리 몸에 해로운 세균이 자리를 잡아 일상을 방해한다.

좋은 세균은 몸 적절한 장소에 먼저 자리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중에 들어오는 나쁜 세균과의 싸움에서도 이겨야한다. 이 때문에 모유는 세균을 키우기도 한다. 모유에 포함된 올리고당은 모유 성분 가운데 세번째로 많은 양을 차지한다. 그런데 아기는 올리고당을 소화하지 못한다. 올리고당은 아기 위 속에 사는 비피더스균의 먹이이다. 비피더스균은 모유 속 올리고당을 양분으로 섭취하며 수를 늘리고, 아기 위 속에 단단히 자리 잡아 소화를 돕는다.

인간은 세균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렇다고 위험한 세균이 몸 안에 들어오게 그냥 놔둘 수는 없다. 적절한 조절이 필요하다. 우선, 우리 몸의 좋은 세균까지 죽이는 손소독제나 락스는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집 안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손을 물로만 씻는 게 좋다. 단, 사람이 많은 곳에 다녀온 경우 손발과 얼굴 등을 비누로 씻어주면 된다. 세균은 박멸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위해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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