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인천여성가족재단 여성연극단 수강생들

▲ 여성가족재단 여성연극단 수강생들이 첫 시연을 마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이 입은 무대의상은 모두 수강생들이 손수 만든 것이다.
“어머나! 항아리 바닥에 구멍이 나 있네. 물을 부어도 다 빠져버리니 이를 어쩌지?”

“콩쥐 아가씨, 너무 걱정 마세요. 이 두꺼비가 도와줄게요. 어린이 친구들, 저와 함께 콩쥐아가씨 응원해줄거죠?”

11일, 인천여성가족재단(대표이사 장부연) 소강당에 연극무대가 펼쳐졌다. ‘어린이 친구들’이란 대사가 무색하게도 관객은 모두 중년 여성들이다. 연극을 바라보는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무대에 선 이들은 여성가족재단에서 연 강좌 ‘여성연극단 배우 양성 과정’ 수강생들이다. 여성가족재단은 직업교육훈련의 일환으로 경력단절여성들을 모집해 3월부터 5월까지 연극수업을 진행했다. 수강생들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4시간씩 모두 160시간 동안 연극 수업을 들었다. 이범우 인천시립극단 배우가 걸음걸이에서 시작해 발성과 호흡, 대사읽기, 감정 표현하기 등 정통 연기법을 가르쳤다.

실력을 열심히 갈고 닦아 이날 무대에 올린 연극은 ‘콩쥐팥쥐’였다. 직업교육훈련인 만큼 이 연극은 대상과 목적이 뚜렷하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에게 공연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공연비도 받을 생각이다. 졸업발표회를 겸해 첫 공연을 선보인 대상은 이들의 ‘고용주’나 다름없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원장들. 원장 십여 명은 수강생들의 공연이 끝난 후환한 얼굴로 박수를 보냈다.

이들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주인공 콩쥐와 표독스런 팥쥐 엄마 역을 각각 맡은 은예주(42ㆍ산곡동)씨와 신이숙(62ㆍ삼산동)씨는 연극을 접한 지 3개월밖에 안 됐다고는 믿기 어려운 연기력으로 보는 이들의 몰입을 이끌었다. 이들은 각각 수강생 가운데 최연소자ㆍ최고령자이기도 하다. 두 사람을 12일 여성가족재단에서 만났다.

“내가 이렇게 너스레를 떨 수 있다니”

“어렸을 때 동네에 연극단이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만사 제치고 달려가서 봤어요. 그땐 여성만으로 구성된 연극단이 인기가 많았거든요”

신이숙씨는 수강생 가운데 나이가 제일 많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수나 연기자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마음 속 열정은 가득했지만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격 탓에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결혼한 이후엔 자녀를 키우고, 돈벌이를 하느라 제대로 된 취미활동도 해 본 적이 없다.

2년 전, 두 딸을 모두 출가시키자 이번엔 구순이 넘은 노모를 돌봐야했다. 그의 나이는 어느새 예순을 넘기고 있었다. 찬바람이 가시지 않은 이른 봄, 그는 아파트에서 전단지 한 장을 발견했다.

“아파트에서 연극 교육생을 모집한다는 전단지를 봤어요. 이전에는 여성문화회관(현 여성가족재단)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더 늦기 전에,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해 전화로 신청을 했죠. 교육을 받는 시간엔 요양보호사가 어머니를 봐 주었어요”

신씨는 지각이나 결석 한 번 하지 않고 성실히 수업에 임했다. 평소 사람관계에서 감정 표현을 잘 못하는 편인데, 연극 연습을 할 때는 어떤 표현도 어색하지 않았다. 첫 공연을 하면서도 긴장은커녕 관객들의 표정과 반응까지 살피며 연기의 강약을 조절했다.

“무대에서 보니 의외로 관객들이 재밌어하시더군요. 이렇게 다른 사람 앞에서 너스레를 떨 수 있다니, 저 스스로 신기했어요. 이제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고, 앞으로 계속 연극을 하고 싶어요”

건강에 이상 느껴, 하고 싶은 일 시작해

은예주씨는 지난해부터 몸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끔 팔다리가 저릿저릿하고, 두통이 심했어요. 한의원에 갔더니, 몸이 좋지 않은 상태라고 하더군요. 몹시 실망했죠. 그런데 문득 ‘아직 나이도 어린데, 이러다 죽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위기감을 느낀 은씨는 건강에 신경을 쓰는 동시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구연동화와 역사지도사, 논술지도사 과정을 수료하고 어린이도서관에서 수업을 맡기도 했다. 연극도 그 중 하나였다. “수업 중 (이범우) 선생님에게 ‘연극을 구연동화처럼 한다’는 지적을 받았어요. 그것 고치느라 애를 좀 먹었죠. 연기를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해봤고, 남들 앞에 서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그는 단원들의 만장일치로 주인공 콩쥐로 낙점됐다. “과연 그 많은 대사를 다 외울 수 있을지, 주인공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했죠. 집에서 아들과 대사를 주고받으며 연습도 많이 했어요. 아들은 팥쥐 대사를 다 외울 정도에요(웃음)”

그는 이어 “선생님도 용기를 주시고, 수강생들도 응원을 해줘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며 “작은 무대지만 공연을 마치고 나니, 기적이란 생각을 한다”고 했다.

의상·소품·분장 모두 직접 해

이번 연극 공연을 끝으로 모든 교육과정이 끝났다. 아직 이들은 극단 이름도 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동극으로 일자리도 찾고, 꿈도 이루고 싶은 열정만큼은 뜨겁다. 대사를 외우고 동선을 맞추는 것 외에도 수강생들은 첫 무대를 위해 일인다역을 맡았다.

의상 십여벌은 수강생 안경헌씨가 손수 만들었다. 소품도, 음향도 수강생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직접 제작했고, 배역에 따른 분장도 ‘각자 알아서’ 했다. 이 경험은 수강생들이 앞으로 아동극을 하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될 터. 인천 곳곳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만날 이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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