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⑦ 춤추는 숲

춤추는 숲 | 강석필 감독 | 2013년 개봉

 
자전거를 탄 카메라가 마을 초입을 지나 골목을 누빈다. 낮술 한 잔 하고 귀가하는 아줌마, 시장을 보고 매장 앞에서 수다 떨던 아이 엄마, 학교가 파한 뒤 신나게 뛰어가는 아이들, 골목을 달리는 카메라를 발견하고는 일부러 가게 문 앞까지 나와 인사하는 구멍가게 주인장…, 카메라(를 든 감독)를 발견한 동네 사람들은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환한 웃음으로 반긴다.

어느 두메산골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 한복판 마포구에 있는 성미산마을 풍경이다. 2주 전 개봉한 강석필 감독의 ‘춤추는 숲’은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한 마을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성미산마을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공동육아로부터 시작해 동네에서 함께 아이를 키우고 먹거리를 나누고 일자리를 만들고 집을 짓고 생활을 나누는 도시형 마을공동체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성미산마을이 시작된 어린이집이 18년이 됐으니 성미산마을의 나이도 방년 열여덟인 셈이다.

감독 부부 역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성미산마을 사람이 됐다. 삭막하기만 한 도시에서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자연을 느끼고 사람들 속에 함께 자라는 경험을 주기 위해 성미산마을 사람들이 됐다. 이곳에서는 아이 키우는 일 외에도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물건과 먹거리를 나누고 동네부엌에서 밥상을 나눈다. 마을극장에서 동네사람들과 공연도 한다. 공동체라디오 방송국도 있고, 되살림가게도 있고, 마을카페도 있다.

도시에서 동네살이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성미산마을은 ‘익명성이 가장 큰 특징인 대도시에서도 마을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 증거’와도 같다. 때문에 나 역시 몇 번 가보기도 했고 성미산마을 사람을 불러서 다양한 마을사업 사례를 듣기도 했다. 너무 여러 번 가보고 이야기를 들어서 성미산마을에 대해 더 이상 알 게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 영화 ‘춤추는 숲’은 벤치마킹해야할 마을공동체 운동의 사례로서 성미산마을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품고 있는 숲, 성미산이라는 자연에 초점을 맞춘다.

실제로 가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동네 뒷산이지만, 별별 벌레들, 동네 사람들이 한 그루 한 그루 심어 이제는 한참 자란 나무들로 가득한 성미산은 마을 사람들에게 그저 그런 산이 아니다. 성미산은 그들이 그곳에 둥지를 틀게 한 이유이고, 그들의 아이들이 나고 자란 자궁이고, 그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어도 애틋하게 그리워할 고향이다.

때문에 한 사학재단이 성미산을 허물고 개발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그 재단이 땅 주인이라 하더라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재앙이었다. 성미산을 허무는 것은 그 마을 사람들이 열여덟 해를 쌓아온 삶 자체를 허물어뜨리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름드리나무를 베는 전기톱과 산허리부터 뭉텅뭉텅 파헤치는 굴착기에 맞서 성미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저 자신들이 심었던 나무를 안고 “제발 베지 말아 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것뿐.

굴착기가 휩쓸고 지난 자리, 뿌리를 다 드러낸 나무 밑동에 흙을 덮어주며 열세 살 승혁이는 말한다. “생명에는 주인이 없어요. 모든 생명에는 주인이 없는데, 땅 주인이 학교를 만들려는 이 산에는 너무나 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어요. 이 산이 파헤쳐진다면, 결국은 돈에게 지는 거겠죠”

지방자치에서 ‘마을만들기’가 화두로 떠오른 지 꽤 됐다. 몇 해 전부터는 마치 유행이라도 되는 양 너도 나도 마을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영화 ‘춤추는 숲’을 꼭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사업 아이템으로서의 마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체온이 흐르는 네트워크로서 마을, 그리고 자연과 생명의 깊은 울림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춤추는 숲의 의미를 깨닫고 함께 춤출 수 있을 때, 비로소 마을은 가능할 것이니.

9회 인천여성영화제 탕탕극장에서 ‘춤추는 숲’을 만나세요.

6월 28일(금) 오후 7시, 영화공간주안 2관

*티켓 발권은 선착순입니다.
*관람료는 따로 없습니다.

9회 인천여성영화제를 후원해 주세요. (농협 301-0058-24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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