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이 만난 사람] 28년 공직생활 마감한 김경언 인천자치문화연구소 소장

정년퇴직을 1년 앞두고 5월 31일자로 공직생활을 끝낸 김경언(59·사진)씨를 지난 29일 오후 ‘인천자치문화연구소’(연수구)에서 만났다. 인천자치문화연구소는 그가 퇴직과 동시에 만든 연구소이다. 그는 명예퇴직 직전엔 검단역사박물관 관장으로 일했고, 그 전엔 한국이민사박물관 관장으로 짧지 않은 기간 일했다.

그는 1954년 제주도 서귀포에서 열두 남매 중 열한 번째로 태어났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가 제주도에 처음으로 교회를 세웠던 외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일본에 갔던 가족들이 귀국해 제주도에 터를 잡기 시작한 때였다. 그는 제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온 뒤 서울 단국대학교 법정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1985년, 7급 공채로 인천시 공무원에 임용됐다. 그렇게 인천과 연을 맺었다.

공직사회 밖에서 찾은 보람
1988년부터 야학교사 활동

▲ 김경언 인천자치문화연구소 소장
“남동구 간석3동사무소에서 일했는데, 너무 허망한 거예요. 벽보 떼러 다니고, 교통정리나 하러 다니고, 내가 무슨 보람을 가지고 이 일을 하나? 그러던 차에 바르게살기위원회 위원 중 교감으로 퇴직한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야학 교사를 제안했어요. 마음이 허하던 참에 밤 시간이지만 한다면 보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는 1988년 3월부터 야학에 나가기 시작했다. 동암청소년중고등학교라는 야학인데, 부평구 십정동에 있다가 지금은 남동구 희망백화점 근처로 옮겼다. 대학생 교사들이 국어나 수학, 영어 같은 주요 과목을 맡고, 그는 한문, 사회, 지리 등을 맡았다. 야학 교사로서 수업은 그가 인하대학교 행정학 겸임교수를 맡은 2007년까지 지속됐다. 그 후론 가끔 술을 사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후배 야학 교사들을 격려하고, 후원금을 전하고 있다.

야학 활동은 공직 활동에서 느끼지 못한 보람을 줬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아주머니들이 공부해 나중에 대학까지 졸업하는 모습은, 삶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자극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상처도 남았다.

“1998년이나 99년 무렵이었어요. 한문 수업을 할 땐데, 굉장히 야하게 차려입은 여학생(20대 초반)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가 손을 번쩍 들더라고요. ‘왜’라고 물으니, 손가락을 까닥까닥 하면서 오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설명한 게 틀렸다면서. 가보니 아주 옛날 옥편을 펴놓고 있는데, 표기법이 달랐던 거예요. 설명을 해주고 수업이 끝난 뒤, 교사들을 불렀어요,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느냐’고 꾸짖으면서 예절교육도 중요하다고 강조했죠.

그런데 다음 주에 와 보니 그 여자아이가 없더라고요. 나중에 ‘어디 갔느냐’고 물었더니, 자살했다는 거예요. 퇴폐유흥가에 갔던 아이인데, 나름 배워보겠다고 찾아왔던 거죠. 야학 교실과 교무실 사이 벽이 합판으로 돼있는데, 내가 교사들을 나무라는 것을 다 들은 거예요. 평상시 같으면 자장면 사주며 이야기하고 격려해줬을 텐데, 정확한 자살 원인은 모르지만, 내가 왜 그랬을까, 많이 후회했죠. 그 일을 겪은 뒤 신입 교사들에게 이야기해요. ‘우리의 말 한마디가 아이들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예민한 아이들이니 세심하게 지도해야한다’고”

야학 교사 활동은 그에게 이런 아픔도 줬지만, 공로상도 안겨줬다. 그는 인천시 민주공무원상(지금은 자랑스러운 공무원상)을 수상했고, 1997년 무렵엔 공무원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청백봉사상 대상도 받았다. 부평구 경영재정과에 근무하던 때다.

청백봉사상 대상 수상
윗사람들에겐 골칫거리

그는 야학 활동에 성실히 임하면서도 공무원 본연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내무부가 주관한 전국 공무원 논문 현상 공모에서 우수상을 받고, 제안제도를 통해 여러 상을 수상했다.

“최용규 (부평구)청장과 손발을 맞춰 일했을 때가 가장 신났던 것 같아요. 부평구시설관리공단과 십정1동 관상복합건물 만들 때 보람을 많이 느꼈죠. 특히 관상복합건물을 만들 때 외부용역에 맡길 필요가 없다고 제안했어요. 당시 경영수익팀장이었는데, 우리 직원들이 능력 있으니 교육비 정도만 세워 달라고 했죠. 직원들이 생산성본부와 능률협회를 찾아다니며 원가계산 방법 등을 다 배우게 해 자체 계획을 세웠어요. 그 다음 박수묵 구청장 때 준공했는데, 외환위기(IMF 구제금융)와 맞물려 부동산 임대율이 바닥을 칠 때였어요. 직원들이 부동산중개소들을 찾아다니며 홍보했고, 임대율이 98%나 됐어요”

그러나 그는 부평구에서 서구로 ‘쫓겨났다’, 시민단체와 사이가 좋고 공무원노동조합을 뒤에서 지원한다는 게 이유였다.

“시민단체가 부평미군기지를 반환하라고 농성했을 때였어요. 윗사람들이, 내가 시민단체와 잘 알고 좋은 관계이니 가서 농성장을 철거해 달라고 이야기를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럴게 아니고 청장님이 음료수 사들고 한번 가서 이야기를 나누세요. 그러면 금방 풀릴 거예요’라고 말했죠. 그러니 열을 확 받은 거죠.

‘저 사람 놔두면 공무원노조 뒤에서 도와주고, 우리한테 도움이 안 되고, 앞으로 문제만 야기할 거예요’라고 고위 관료들이 청장한테 이야기한 거죠. 박수묵 구청장이 퇴임하고 나중에 상갓집에서 만났을 때 그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내가 앞장서서 보낸 게 아니고, 사실은 간부들이 놔두면 어렵다면서 그렇게 하라고 해서 한 거다. 내가 먼저 한 것은 없다’고요. 서구 재무과장으로 갔는데, 서구에서 공무원노조 준비하던 사람들이 ‘우리도 빨리 하자’는 분위기였고, 노조가 만들어지더라고요”

그는 서구에서도 골칫거리 신세가 됐다. 이렇다 할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당시 이학재(현 국회의원) 서구청장은 그에게 인천시청으로 가라고 했다. 시 본청은 대부분의 공무원이 원하는 곳이다. 구청보다 승진이 빠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시 본청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시로 보내려면 교육원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그 후에도 그는 시 본청에 있지 않고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이민사박물관 등에서 일했다. 교육원에선 강의와 공부를 맘껏 할 수 있었고, 원래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아서인 것도 있지만, 꽉 짜인 틀이 싫었기 때문이다.

“소신껏 일하라는 말, 더 이상 못해”

28년 공직생활을 마감한 그에게 공직사회는 어떤 것이었을까?
“공무원 처음 시작할 때는 열심히 일하면 퇴직했을 때 자랑스럽고 명예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이라고 하면 손가락질이나 받는 이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는 지금 인하대에서 겸임교수(2007~2011년, 4년)직을 끝내고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도 공무원사회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져있다는 걸 느꼈다. “외부에서 보면 공무원 현장을 잘 알기 때문에 강의가 생동감 있겠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교수 프로필 란에 공무원 경력을 쓰면 수강신청 안 해요. 사회 전반적으로 공무원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진 거죠”

그는 후배 공무원들에게 해줄 말이 별로 없다고 했다.
“옛날에는 공무원들한테 법과 양심에 따라 부지런히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고, 그렇지 않더라고 떳떳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 많이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 순간은 서구 지역경제과장으로 있을 때였다. 충전소 허가와 관련해 군부대, 구청 직원 등 관계자들이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게 드러났다. 그런데 결재권자인 그는 받지 않았다. 사정기관은 이상하게 생각해 그의 1년 치 통화기록을 조사하기도 했다. 이 일로 그는 시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다. 인사위원장은 행정부시장이었다. 인사위원회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그런 상황에서 바르게 행동한 것은 상을 받아야지, 왜 징계하느냐는 의견도 나왔다. 인사위원장은 관리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했다. 결과는 징계에서 가장 약한 견책. 그리고 청백봉사상을 받은 경력을 감안해 불문경고 처분했다.

“소신껏 일을 하면 된다는 말을 그때부터 하질 못하겠더라고요. 이미 삐뚤어진 사고들이 지배하는 틀 안에서 뭔가를 하기보단, 밖에 나가서 뭐든지 할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영화 레미제라블서 자베르 경감 보며 안타까워 눈물”

▲ 김경언 인천자치문화연구소 소장
그는 공직사회가 삐뚤어진 원인을 현 관료제도에서 찾는다.

“막스베버가 관료제론을 주창해 근대 관료제의 기본 틀을 세웠는데, 그게 지금의 공직사회를 유지하고 있어요. 관료제론의 바탕에는 몰인격성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사람에 따라서 대우(행정서비스)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 법과 규칙에 따라서 동일하게 적용해야한다는 거죠. 물론 몰인격성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요. 누구냐에 따라서 적용하는 원칙이나 규정이 바뀌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죠.

하지만 약자나 강자,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나 좋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동일하게 대우하다 보니 공무원사회에 대한 불평불만이 생겨요.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이 가장 잘 알아요. 그런데 행정에서는 기준과 원칙에 따라 이번에는 휠체어를 일률적으로 사주자, 전세금의 얼마를 정부에서 지원해주자, 이런 식이잖아요. 그런데 당사자들은 그게 필요한 게 아닐 수 있어요. 공무원들은 그 사람들을 위해 부지런히 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들은 우리가 언제 이런 게 필요했느냐고 해요.

공무원들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국민을 위해 부지런히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세금이 쓰이기보다는 사회 전체라는 미명, 객관성이나 합리성이라는 미명아래 쓰여요. 그러니 공무원에 대한 불평불만이 쏟아지죠. 한편으론 그 사람의 처지에 맞게 규정을 적용하면 해당 공무원이 다쳐요. 그래서 공무원들은 저 사람은 너무 안타깝지만, 저 사람에게 맞춰 줬다가는 오해를 사기 때문에 몰인격적으로 처리하는 게 바른 행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자베르라는 경감은, 주인공이 사회에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지만, 도둑질한 이유 등은 고려하지 않고 도둑질을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집요하게 쫓아다녀요. 그리고 자살할 때까지 ‘이런 도둑놈은 잡아서 반드시 처벌해야하는데, 나는 못했어’라고 하죠. 난, 자베르를 보며 눈물이 났어요. 자베르의 모습이 지금 우리 공무원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행정부가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데 기준은 몰인격성입니다. 이제 그걸 탈피해야 해요”

“고인 물, 흔들어야 정화돼죠”

그는 공직사회 안에서 하지 못한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 인천자치문화연구소를 만들었다.
“외부에서 흔들어주지 않으면 힘들어요. 단체장이 아무리 거버넌스적 사고를 가지고 있어도 한계가 있어요. 공무원들은 공직사회가 중심을 잡고 이끌어야한다고 생각해요. 틀을 잡아주고 방향을 제시해주지 않으면 시민들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우리는 국가 발전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고, 시민들은 개별 이익을 따른다. 이게 공무원사회를 잡고 있는 사고라고 할 수 있죠. 별 수 없어요. 통에 물이 고여 썩는데, 약을 뿌린다고 정화되나요. 흔들어야 산소가 들어가고 정화되죠”

그는 끝으로 공무원노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공무원 개개인이 공직사회를 바꾸기는 사실상 불가능하죠. 그래서 공무원노조 역할이 중요해요. 자기 이익을 찾는 건, 인간이라면 별수 없지만, 공무원노조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공무원 권한이 많은데 거기에 또 날개를 달아주나’예요. 이런 사고가 강해요. 공무원노조가 내부 부정과 비리, 잘못된 관행을 척결하겠다고 하고 스스로 정화장치도 만들겠다고 하는데 정부가 이걸 왜 막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덧붙여 “공무원노조도 하나의 큰 힘이 될 수 있지만, 내부에 한계도 많아요. 그렇다면 밖에 나와서라도 문제를 제기하고, 사람중심의 행정으로 갈 수 있게 힘을 실어줘야죠. 공직사회가 맑아지고 신뢰를 얻고 존경받으면, 공직 출신인 내 자신에게도 의미 있는 일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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