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과학이야기 66. 세균(1)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다. 어느 날 뒷자리에 앉은 친구 ㅁ이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ㅁ은 평소 조금 엉뚱했다. 키를 크게 해야 한다며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데서나 점프를 해대고, 소풍가는 버스 안에서 마이크에 대고 김수희의 ‘애모’를 휘파람으로 불어 순식간에 귀곡산장 분위기를 만들었다.

어떤 날엔, 한 친구가 싸온 포도를 껍질도 뱉지 않고 볼이 터지도록 입안에 집어넣었다가 나중에 제 자리에 가서 껍질과 씨앗을 우물우물 뱉어내느라 애쓰기도 했다. 누군가를 웃기려는 마음도, 튀어보고 싶은 마음도 느껴지지 않는, 진정 자신만의 욕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그런 ㅁ이 그날따라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떤 희한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대뜸 “뱃속에 있는 대장균이나 유산균은 언제 들어갔을까?”라고 되물었다. 내 표정은 점점 ㅁ과 똑같이 변해갔다. “그러게. 아기가 만들어질 때 균이 같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이 궁금증을 ㅁ과 함께 풀어볼 생각까지 했더라면 참 좋았겠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이후로 ㅁ과 세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없다. 그런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 질문이 떠올랐다. 대체 내 뱃속의 대장균은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최근에야 알았다. 세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데, 글쎄 장 속 세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거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뱃속의 균은 내가 태어나는 과정을 틈타 몸속으로 들어왔다.

출산 시기가 다가오면, 아기가 나오는 산도에선 글리코겐(당의 일종)이 분비된다. 이 글리코겐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는 건 아기가 아닌 세균이다. 세균들은 아기가 지나갈 때를 기다리며 산도를 지키고 있다가 아기의 온몸에 달라붙는다. 심지어 아기의 입을 통해 내장기관에 들어가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번식을 시작한다. 이때 들어가는 대표적인 균이 락토 바실러스와 비피더스균이다. 이 균들은 몸 속 환경을 적정하게 유지해 소화와 배변을 돕는다. 이 균이 부족할 경우 설사를 하는 등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산도를 거치지 않은 아기, 즉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는 어떨까? 마찬가지로, 태어나면서부터 세균의 습격을 받는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기와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의 태변을 조사하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전자의 경우, 유익한 균이 많이 발견된다. 반대의 경우에선 아쉽게도 유해한 균이 다량 발견됐다. 균들은 각자 자신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물질을 내뿜는데, 이것이 인간 장기에 도움을 줄 경우 유익균, 해를 끼칠 경우 유해균이라 분류한다. 한 번 몸속에 자리 잡은 세균은 웬만해선 제 자리를 내주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최초로 장 속에 어떤 세균이 자리 잡느냐는 아기에게 아주 중요하다. 세균에 따라 장 기능이 달라지니, 스마트폰으로 치자면 세균은 일종의 어플리케이션인 셈이다.

비록 우연이지만 20년 만에 이 사실을 알고 나서 기쁜 마음으로 ㅁ에게 전화를 했다. ㅁ은 몇개월 전 아기를 낳았다. 그는 “내가 그런 걸 궁금해 했어?”하며 별 걸 다 기억한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더니 이런 말을 남겼다.

“고생해서 자연분만한 보람이 있네. 사실 제왕절개 안 했다고 몇 달 동안 엄마한테 잔소리 들었어. 제왕절개하면 보상금 나오는 보험을 들었나봐” ㅁ의 엉뚱함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이제야 짐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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