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연극인 양창완·이길운씨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아저씨’를 무대 위에 재현한 극단 MIR레퍼토리의 연극 ‘엉클 반야’가 6월 7일부터 16일까지 부평문화사랑방 무대에 오른다.

공연에서 주인공 ‘반야’는 두 명이 번갈아가며 맡는다.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두 ‘반야’ 양창완(49)ㆍ이길운(46)씨를 5월 28일 미추홀문화회관에서 만났다. 이재상 연출가도 자리에 함께 했다. 그들의 기나긴 연극 인생과 ‘엉클 반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포스터 붙이는 일부터 시작, 연기 인생 30년

▲ 이길운(왼쪽)·양창완씨
양창완씨는 1984년 연극무대로 데뷔해 올해로 연기 인생 30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딱히 할 일이 없던 그에게 한 친구가 제2회 지방연극제(현 전국연극제)에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특별한 기대 없이 수원 대표로 참가한 지방연극제에서 그가 속한 팀은 2위에 해당하는 문화공보상을 받았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내가 연기에 재능이 있나보다’하는 생각을 했어요. 게다가 상까지 받으니 뭔가를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들었죠”

그는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선배의 소개로 한 극단에 들어가 포스터 붙이는 일부터 시작했다. 비중이 적은 배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에서 단역으로 곧잘 등장했지만 그의 주 무대는 연극과 뮤지컬이었다.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에는 10여 년 동안 출연하면서 남녀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배역을 다 맡아봤다.

“비중이 크건 적건 배역이 떨어지면 무조건 최선을 다 했죠. 눈 감을 때 누군가가 나를 배우로 기억해준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은 없을 것 같아요”

다양한 삶 살 수 있어 배우의 길로

이길운씨는 1986년 극단 ‘돌체’를 만나면서 연기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다.

“연기자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다양한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배우가 되면 여러 직업을 연기할 수 있고, 많은 종류의 삶을 대신 살아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무작정 극단 돌체에 찾아갔죠. 뭐든 시키는 걸 하겠다고요”

그는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해 극단의 궂은일을 도맡으며, 책이 아닌 현장에서 연극과 연기를 배웠다. 27년 동안 연극 무대에 서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탈속’이다. 그는 이 연극에서 주인공 스님 역을 맡았다.

“스님 연기를 하려면 제 자신이 스님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직접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연비(향불로 팔의 일부를 태우는 불교 의식)도 받았죠. 그래서인지 관객 호응도 좋았어요. 들리는 소문으로 관객들 사이에서 ‘저 사람은 연기자가 아니라 실제 스님이다’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해요. 잊을 수 없는 작품이죠”

두 배우 모두 이재상(극단 MIR레퍼토리 대표, 한국연극협회 인천지회장) 연출가와 인연이 깊다. 이 연출가는 이들이 연기를 시작할 무렵부터 연기 철학을 전해주는 선배이자 동료 연기자로 이들과 함께 해왔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도 깊다. 이 연출가는 극단 간판 연기자로 이들을 서슴없이 손꼽는다. 두 배우는 보답이라도 하듯 성실하고 열정적인 자세로 연기에 임한다.

안톤 체호프의 원전을 메소드 연기로 표현해

이번 연극은 체호프의 원전을 각색 없이 그대로 무대 위에 옮긴 것이다. 막간 15분을 포함해 극이 끝나는 데 2시간 40분이 걸린다. 이재상 연출가에겐 원전에 대한 남다른 고집이 있다.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가 해피엔딩인 줄 아는 아이들이 많대요. 각색된 디즈니 만화영화만 봤으니, 원전에서 인어공주가 마지막에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걸 모르는 거죠. 연극이든 애니메이션이든 원작에 충실한 것이 존재할 때, 패러디나 각색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엉클 반야’에서는 원전의 느낌과 동시에 ‘메소드 연기’의 진수도 맛볼 수 있다. 메소드(Method) 연기란 정형화된 연기가 아닌, 배우가 인물의 심리상태와 감정, 생각을 실제로 느끼고 행하는 연기 방법론을 뜻한다. 배우가 연기를 하기보다 배역 그 자체가 되는 기술이다. 메소드 연기를 위해선 극 중 인물의 상황과 시대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수다. 이번 공연 연습에 들어가기에 앞서, 세 달 동안 워크숍을 열어 단원들과 주인공 반야가 살았던 당시 러시아 상황을 공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야에 몰입해 그를 이해하면, 굳이 대사를 억지로 외울 필요가 없어요.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반야라면 이 말을 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대사가 그 다음에 딱 나와요. 안톤 체호프가 극본을 참 잘 쓴 것 같아요” 양창완씨의 이야기다.

‘온순하고 지적인 반야’ vs ‘거칠고 격한 반야’

▲ 연극 ‘엉클 반야’에 출연하는 극단 MIR레퍼토리 단원들.
같은 극본인데도 두 배우가 표현하는 반야는 사뭇 다르다. 극에서 반야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성실하고 열심히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양창완씨와 이길운씨는 각각 자신의 반야를 ‘온순하고 지적인 반야’와 ‘거칠고 격한 반야’로 표현했다. 같은 인물을 이렇게 다르게 표현해도 극 흐름에 큰 문제가 없는 걸까?

이 연출가는 “한 배역을 두 사람이 맡을 경우 사람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반야는 현실 인물이 아닌 추상인물이에요. 배우마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어야죠. 목이 마를 때 물 마시는 모습이 사람마다 모두 같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요? 겉으로 보이는 것은 달라도 둘 다 반야에요” 두 연기자가 표현하는 각각의 반야를 비교해보는 것도 이번 공연의 묘미가 될 듯하다.

이 연출가는 체호프의 4대 희곡 ‘벚꽃동산’ ‘갈매기’ ‘세 자매’ ‘바냐 아저씨’를 모두 극으로 만들 계획이다. 올 9월엔 ‘갈매기’가 관객을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들이 메소드 연기로 뽑아낼 안톤 체호프의 이야기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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