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문화를 홍보의 수단으로 보지 말라”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문화정책 절실”


편집자주>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곳은 대부분 문화적 자산이 풍부한 곳이다. 그만큼 문화라는 지표 하나만으로도 삶의 질이 어떠한가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기에 행정에 있어서도 문화행정은 주민들의 삶에 직접 연관이 있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역에서 10년 넘게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면서 부평 문화 발전을 위해 활동해 온 문화예술인들을 만나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지점을 들어 보았다. 부평구 문화예술인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풍물패 잔치마당 대표 서광일씨와, 마찬가지로 부평구 문화예술인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천밴드연합 대표 정유천씨, 향유하는 시민들이 문화의 주인이라는 기치를 걸고 문화수용자운동을 벌이고 있는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대표 임승관씨가 말하는 지역문화와 지역행정의 관계를 들어 본다.


부평풍물대축제로 무(無)에서 유(有)를 만든 부평문화


▲ 풍물패 잔치마당 서광일 대표

서광일(풍물패 잔치마당 대표) : ‘부평문화’라고 한다면, 물론 해방 이후 부평미군기지를 중심으로 한 미군부대 문화나 산업화와 더불어 시작된 공단 문화 등이 있었다. 그러나, 특별히 ‘부평문화’라고 할 만한 문화형태를 가지게 된 것은 농경지대였던 부평의 옛 역사로부터 풍물을 끄집어내 풍물대축제를 시작했던 1997년부터라 할 수 있다. 부평풍물대축제를 만들기 위해 부평의 예술인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됐고(부평구 예술인회), 이로 인한 시너지 효과로 미술, 서예, 풍물, 락밴드 등 다양한 분야가 발전해 이제는 각 분야에서 인천을 대표하고 있다.


임승관(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대표) : 부평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천이 문화의 불모지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소리이고 하는 소리다. 그러나 부평은 풍물대축제가 있다는 것, 그것도 동네마다 풍물단이 만들어져 그들이 한데 모여 축제를 만든다는 것(그것이 형식적인 것일지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괄목할 만한 문화적 성과를 갖고 있는 도시다.

그러나 높은 인구밀도에 비해 문화예술시설이라든지 문화예술인이나 단체에 대한 지원은 오히려 다른 도시보다 뒤떨어지는 편이다. 가장 대중적인 문화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만 보더라도 열악한 강사진을 가지고 안일하게 운영하는 곳이 많다.


정유천(인천밴드연합 대표) : 지역문화라고 하면 우선 관객들이 많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를 떠올린다. 사실 그런 행사는 모든 자치단체가 해마다 때가 되면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역의 문화가 바뀌고 주민들의 삶이 바뀔 수 있는 지속적인 문화정책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자치단체들이 하는 행사는 관객수만 가지고 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단순함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홍보도구로 전락한 문화행사 ‘씁쓸’


서광일 : 지방자치제도 이전에는 문화라고 하면 ‘구민의 날’ 같은 보여주기 위한 행사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그나마 민선 자치단체장이 뽑히면서 지역문화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문제는 자치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단체장이 지역문화에 대한 고민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일관성 있는 정책을 길게 밀고 나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임승관 : 지역 정치인들이 문화정책에 있어서 가장 많이, 그리고 치명적으로 범하는 오류는 문화를 홍보의 ‘수단’으로 본다는 것이다. 부평구도 문화공보과가 문화정책을 담당하고 있지 않은가. 유명 연예인이나 대규모 예술단이 와서 빵빵한 공연 하나 보여주면 문화정책 다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건물 하나를 짓거나 행사 하나를 치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화란 주민들이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라는 것을 행정 책임자들이 깨달아야 한다.


▲ 인천밴드연합 정유천 대표

정유천 : 문화는 한번에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 규모가 크든 작든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문화행사가 있어야 한다. 장애인을 위한 행사는 4월에 한 번 하고 청소년을 위한 행사, 노인을 위한 행사는 5월에 한 번 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를 가지고 꾸준히 정기적으로 시도할 때, 주민들의 관심도 커지고 그로 인해 지역문화는 바뀐다.

지금까지 여러 단체장들을 겪다 보니(?)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스스로 문화를 즐길 줄 알고 관심이 있어야 지역문화는 발전하는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이 있으면 문화예술인들을 직접 찾아와 이야기 듣는 자리도 마련하더라.

문화예술정책은 절대 머리만 싸매서는 나오지 않는다. 직접 발로 뛰며 문화예술인도 만나고 토론하면서 정책을 세워야 한다. 지금 선거 중인데 당선된 뒤에는 더 바빠지니 지금부터 발로 뛰며 정책을 세웠으면 좋겠다.


규모와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


임승관 : 2008년 부평미군기지가 반환되면 부평에는 넓은 가능성의 땅이 생긴다. 그러나 최근 건립에 들어간 부평문화예술회관 설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넓은 가능성이 묻히지는 않을까 우려가 생긴다. 오로지 보여주기 식, 성과 위주의 생색내기에만 급급하다 보니 문화정책이 실속은 없이 규모만 커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대공연장에 밀려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작지만 보석 같은 공연과 전시는 관객을 만날 길을 찾기 더 어려워질 것이다.


정유천 : 지역 정치인들은 오로지 문예회관 건립 그 자체에만 관심을 쏟지, 그곳에 무엇을 담을지, 그곳으로 인해 부평의 문화를 어떻게 바꿔낼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문예회관은 얼마나 웅장한가, 객석이 얼마나 큰가로 평가돼서는 안 된다. 문예회관을 중심으로 그 일대가 작은 전시장, 소극장들로 채워져 아트존(art-zone)을 형성할 때 문예회관의 프로그램도 풍요로워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시장, 소극장들이 들어설 수 있도록 행정적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서광일 : 부평의 문화는 풍물대축제를 통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축제를 치르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다면, 이제는 풍물인뿐 아니라 부평의 주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축제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려면 축제 기간에만 반짝하고 마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축제를 매개로 부평의 문화가 풍성해질 수 있는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문화가 살아야 부평이 산다


서광일 :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주5일제 근무의 확대로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정치인들이 문화에 대한 생각부터 바꿔야 주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문화정책이 나올 것이다.

삶의 방식 자체가 문화라는 생각을 가지고 문화정책을 펼치길 바란다.


정유천 : 부평은 구도심이라서 더 이상 개발할 땅도 없고, 주력할 산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살고 싶은 도시 부평이 되기 위한 대안은 문화밖에 없다. 하기에 지역행정을 책임지는 정치인들이 문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심각하게 인식하고 장기적인 문화정책을 세워야 한다.


▲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임승관 대표

임승관 : 사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정말 살고 싶은 도시인가, 떠나고 싶은 도시인가 결정짓는 것은 그 지역의 문화 수준에 달렸다고 본다. 특히 부평은 서울과 인근 부천의 문화환경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크게 느끼는 지역이다.

지금이라도 지역행정 책임자들이 그런 주민들의 소외감과 상실감을 깨닫고, 경제적 수준차이를 떠나 누구든 다양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

그러려면 미흡하나마 지금 시민과 직접 만나 문화예술활동을 하고 있는 문화예술단체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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