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인천에서 새로운 학교 만들기 3. 타 지역 새로운 학교의 현재(4)
경기도 시흥시 장곡중학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일제고사 부활 등으로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이 심화되고 있다. 공교육은 붕괴되고, 학교는 교사와 학생에게 가기 싫은 곳으로 전락하고 있다. 학교의 권위와 교사의 위상은 갈수록 추락하고, 학교에선 왕따와 폭력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혁신학교’가 떠오르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출발한 혁신학교는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6개 시ㆍ도교육청에서 현재 300여 개교를 운영하고 있다.

혁신학교를 운영하지 않는 인천에서도 혁신학교와 같은 새로운 학교를 만들기 위한 연대단체가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다. 진보구청장이 당선된 남동구에서도 새로운 학교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혁신학교의 의의와 현황, 그동안의 성과 등을 짚어보고 새로운 학교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장곡 참일꾼, 정용택’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의 명함에 새겨진 글귀가 아니다. 장곡중학교 교장의 책상 위에 놓인 명패에 쓰여 있는 글귀다. 수많은 학교를 방문해봤지만, 이런 명패는 처음이다. 교장과 이야기를 나눈 후 왜 이런 명패를 놓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지난 11월 16일 미추홀교육문화센터에서 진행한 학부모강좌 ‘2012 남동아카데미 - 공교육에서 희망찾기’에 참가한 인천지역 학부모 10여명과 혁신학교인 장곡중학교(경기도 시흥시 장곡동)를 방문했다.

오후 1시께 학교에 도착하자, 정용택 교장이 반갑게 맞이하며 교장실로 안내했다. 방문한 날이 마침 2학기 학부모 공개수업을 하는 날이라 학교는 바쁜 모습이었다.

정 교장은 “교장실에 특별한 손님이 오지 않는 이상 온풍기나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며 “교장실에 혼자 있는데 그런 것을 쓰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한다. 교장실은 교장 혼자만을 위한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 교장실을 바꾸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교장은 학교 운영 철학에 대해 덧붙였다.

“교사들이 교실 문 여는 것을 많이 두려워하지만, 장곡중은 수업공개가 일상화돼있다. 수업을 공개한다고 따로 준비하는 것은 없다. 일상 수업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들은 수업 중 누가 들어와도 수업에만 열중한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전국적으로 성적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딴 짓을 하거나 조는 학생들이 없다. 학교 역량을 수업에 집중하기 때문에 그렇다. 단 한 명의 학생도 교육과 수업에서 소외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시흥시에서는 성적이 좋은 학교다”

정 교장은 지난 3월 1일 내부형 공모 교장으로 부임했다. 장곡중은 2010년 3월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혁신학교로 지정돼 운영 중이다. 2009년 장곡중에서 독서토론모임을 하던 교사들이 혁신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상을 그렸고, 이후 시흥시에서 새로운 학교모임을 하며 1년 동안 준비해 혁신학교로 지정받을 수 있었다.

혁신학교 지정 후 그렇게 반가워하지 않던 전 교장은 학생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며 나중에는 많이 협력해줬다고 교사들은 전했다. 이후 교장이 발령 받을 시기가 되면서 교사들은 혁신학교 추진을 위해 내부형 공모 교장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고, 올해 3월 내부형 공모 교장으로 지금의 정 교장이 부임했다.

학생들의 배움을 중심에 두는 수업으로 혁신

다른 혁신학교와 마찬가지로 장곡중도 학교 혁신을 위해 가장 먼저 수업의 혁신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배움의 공동체’ 수업 방식을 도입했다. ‘배움의 공동체’는 일본 도쿄대학교 명예교수인 사토마나부씨가 주창한 것으로 가르치는 기술보다는 학생들의 배움을 중심에 두는 방식이다. 또한 수업을 공개해 동료 교사로부터 조언을 받고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장곡중은 ‘더불어 행복한 배움의 공동체’를 학교 비전으로 제시하고 더불어 성장하고 행복을 나누는 사람을 육성한다는 교육 지표를 표방하고 있다. 올해는 경기도 혁신중점학교로 운영하고, 내년에는 혁신학교의 전국 모델로, 2014년에는 한국형 새로운 학교 상을 제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때문에 학교를 배우기 위해 방문하는 이들이 많다. 2010년 1800명, 2011년 2000명이 방문했다. 하지만 2년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다보니 수업에 지장을 초래해 올해는 방문 날짜를 정해놓고 있다. 올해 10월 초까지 총30여개 학교나 기관에서 방문해 연수를 했다. 현재 장곡중에는 교직원 84명과 학생 894명이 있으며, 학년마다 10개 학급씩으로 학급 당 인원은 30명 정도다.

“정답이 아니라 정답 찾아가는 길을 알려줘요”

 

▲ 장곡중학교 3학년 4반 수학 수업시간. 4명이 한 모둠을 구성해 서로 도우며 문제를 풀고 있다.

3학년 4반 수학 수업시간이다. 학생들은 4명이 한 모둠이 돼 마주 보고 앉아 교사가 낸 문제를 풀고 있다. 보조교사가 계속 돌아다니며 질문하는 학생들에게 설명해주는 모습도 보인다. 마주 보고 앉은 학생들 중 문제를 못 푸는 학생들이 문제를 먼저 푼 학생에게 배우는 모습도 눈에 띈다.

학생들이 모두 문제를 풀자, 학생 2명이 칠판 앞으로 나가 문제 푸는 방법을 설명한다. 문제는 도형과 관련한 것으로 원 안에 있는 삼각형의 선 길이가 같다는 것을 증명하는 응용 문제다.

“여기가 직각이지, 그러니까 여기도 직각이야. 그리고 이 선과 이 선은 반지름이라서 서로 길이가 같아. 그래서 이 선과 이 선은 길이가 같은 거야. 알겠지?”

처음으로 칠판 앞에 나가 설명한 친구는 문제를 잘 풀었다. 하지만 다음 친구는 문제를 풀다 막히고 말았다. “그래서 여기는 직각이고, 이 선은 반지름인데… 어? 아니다. 이걸 내가 왜 했지” 학생들이 다 같이 웃는다. 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가 헤매는 부분을 설명해준다. “아, 그래. 그래서 이 선과 이 선이 길이가 같은 거야” 학생들이 박수를 친다.

배준혁 학생은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주입식으로 가르쳐 주는 게 아니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줘서 공부의 효율성이 높아졌다”며 “친구들끼리 서로 모르는 것을 알려주니 좋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방문한 학부모들에게 학교를 소개한 박현숙 교사는 “어렸을 때 주입식 교육을 통해 암기만 한 지식은 수업이 끝나면 다 잊어버리지만 이해한 지식은 평생 간다”며 “진도 나가기나 암기식 수업을 안 하다보니 혁신학교를 출발할 때 학부모들이 학교에 와서 ‘왜 아이들을 안 가르치느냐’고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수업하면서 학생들이 ‘아~’ 하는 한마디(이해할 때 내뱉는 소리)가 교사들에게는 마약과도 같다”며 “학생들이 문제를 어려워해도 절대 정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단지 정답을 찾아가는 길을 알려줄 뿐이다. ‘정답을 네가 찾아봐라’ 하는 게 바로 자기주도학습이다”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2학년 학생들이 안중근 의사 자서전을 읽고 자서전 쓰기 수업을 하는데, 한 학생이 ‘안중근 의사는 불효자’라고 말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부모님이 살아계실 텐데 아들이 먼저 죽는 것은 불효’라는 것이라고 했다”며 “이 의견에도 놀랐지만 이에 반대한다는 학생의 의견은 더 놀랍게 했다. ‘이 땅의 모든 부모님이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는 상황에서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인데, 어떻게 불효자라고 할 수 있느냐’고 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자서전을 왜 써야하는지 토론을 했고, 죽기 전 자서전을 쓰듯이 자기의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이런 학생들은 대학 수시 원서 지원 시 자기소개서를 당연히 잘 쓸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곡중은 과목 2~4개를 함께 수업하는 통합 프로젝트 수업을 매달 2~8시간 운영하고 있다. 시흥시의 협조를 받아 10월에 과학ㆍ국어ㆍ사회ㆍ체육 과목을 통합해 8시간 동안 진행하는 ‘우리 고장의 유적지와 관광지’와 12월 국어ㆍ미술ㆍ기술 과목을 통합해 진행하는 창작 드라마와 핸드폰 단편 영화 제작 수업이 눈길을 끈다.

‘우리 고장의 유적지와 관광지’는 시흥시 문화재 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지역의 갯골생태공원ㆍ소금창고ㆍ염전터 등을 탐방하고 생물ㆍ수필쓰기ㆍ한국근대사ㆍ유산소운동을 배운다.

학생 인권이 살아있는 자치활동

 

▲ 장곡중학교 공공미술 동아리 학생들이 그린 벽화.

장곡중은 지난해 말, 학교에서 임명장을 수여하는 1년 임기의 반ㆍ부반장제도를 폐지했다. 학급 담임교사의 재량권을 확대함과 동시에 여러 학생들에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반별로 학급회의를 열어 학급 임원의 임기와 임무 등을 자율적으로 정한다. 또한 학급에서는 학급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학급당 대의원 1명을 선출한다. 이렇게 선출된 대의원 30명은 직접선거로 뽑힌 학생회장단(회장 1명과 부회장 2명)과 함께 학생자치회의를 구성한다.

이들은 매달 1회 이상 학생자치회의를 열어 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하고 학생들의 생활과 밀접한 학교생활규정 제정이나 개정, 폐지를 원하는 안건들을 찾아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렇게 결정된 의견을 교사ㆍ학부모와 공유하고 학교 구성원들이 만족하는 최적의 안을 만들어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받아 규정을 개정한다. 회의 진행은 전 과정을 각 교실에 생방송으로 중계한다.

지난 4월 1일 만우절에는 학생과 교사의 소통을 위해 ‘역할 바꾸기’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교사가 되기를 원하는 학생들과 학생의 입장이 돼 불통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교사들을 선발해 하루 동안 역할을 바꾼 것이다. 행사를 진행하기에 앞서 학부모가 공감할 수 있도록 동의서를 받았으며, 수업 결손이 생기지 않도록 1주일 전부터 교사 역할을 수행할 학생을 대상으로 사전 교육을 실시했다.

역할을 바꾼 스무 쌍의 학생과 교사는 아침 등교(출근) 시간부터 하교(퇴근) 시간까지 서로의 역할을 수행했다. 학생이 된 교사는 조례ㆍ수업ㆍ급식ㆍ종례ㆍ청소를 했고, 교사가 된 학생은 조례 시간에 들어가 학생들의 출석 확인과 전달사항 공지, 수업ㆍ급식지도ㆍ종례ㆍ청소지도 등을 했다.

행사 후 역할을 바꾼 교사와 학생에게 소감문을 받은 결과, 교사와 학생 간 소통 부재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앞으로는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와 특색 있는 학생문화행사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는 긍정적인 의견들이 나왔다.

단짝 친구와 사진을 찍고 빵을 먹여주는 등 하루 종일 친구와 사랑을 나누는 ‘친구 사랑의 날’도 1년에 4회 운영하고 있다. 지난 5월 스승의 날에는 학생들 스스로 1시간 일찍 등교해 카네이션과 따뜻한 차를 교사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정용택 교장은 “학교 벽이 지저분한데, 학생 동아리 중 ‘공공미술 동아리’ 학생들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며 “이 학생들이 화장실에도, 심지어는 학교 정문에서 건물로 들어오는 길에 붙어있는 껌 딱지에도 그림을 그렸다. 교사들의 자발성뿐 아니라 학생들의 자발성도 높은 학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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