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인천에서 새로운 학교 만들기③ 타 지역 새로운 학교의 현재(3)
경기도 용인시 흥덕고등학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일제고사 부활 등으로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이 심화되고 있다. 공교육은 붕괴되고, 학교는 교사와 학생에게 가기 싫은 곳으로 전락하고 있다. 학교의 권위와 교사의 위상은 갈수록 추락하고, 학교에선 왕따와 폭력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혁신학교’가 떠오르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출발한 혁신학교는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6개 시ㆍ도교육청에서 현재 300여 개교를 운영하고 있다.

혁신학교를 운영하지 않는 인천에서도 혁신학교와 같은 새로운 학교를 만들기 위한 연대단체가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다. 진보구청장이 당선된 남동구에서도 새로운 학교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혁신학교의 의의와 현황, 그동안의 성과 등을 짚어보고 새로운 학교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힘드냐고요? 물론 힘들죠. 하지만 변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면, 교사로서 만족감은 정말 큽니다. 우리학교에는 체벌도 없지만, 인격 모독적인 발언을 하는 교사도 없어요. 학생들도 교사들이 노력하는 것을 알고 있어요. 보람이 있어 어려움을 감내할 만합니다”

지난 14일 방문한 경기도 혁신학교 흥덕고등학교(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에서 만난 김현주 교육과정부장 교사의 말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김 교사를 포함한 10여명의 교사가 회의실로 모였다. 회의실에는 김밥과 음료수가 준비됐다. 각 교과목을 대표해 모인 교사들은 내년 교육과정을 짜기 위한 회의를 하며 간단히 점심을 때웠다.

김 교사는 “수업하다보면 교사들이 모여 회의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점심시간을 이용한다”며 “이 학교에선 익숙한 일상”이라고 설명했다.

두발 단속 대신 교장이 학생 맞아

 

▲ 흥덕고 1학년 학생들이 지난 5월 농촌봉사활동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다.<사진제공ㆍ흥덕고>

2010년 3월 문을 연 흥덕고는 개교와 함께 혁신학교로 지정됐다. 혁신학교와 관련한 공부를 하던 용인지역 교사들이 중심이 돼 개교 6개월 전부터 준비모임을 했고, ‘참여소통교육모임’ 회장인 이범희 교사가 내부형 교장 공모제를 통해 교장으로 부임했다.

이범희 교장과 교사들은 ‘참여와 소통을 통한 희망과 신뢰의 배움공동체’를 학교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교장은 “소수 학생만 성공하도록 만드는 학교가 아닌, 모든 학생이 성공하는 학교를 만들겠다”며 입시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교장은 매일 아침 등교시간 교문에서 학생들을 맞이하며 대화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밥은 먹었니?” “오늘은 슬리퍼를 신고 오지 않았구나. 잘했다”고 격려하기도 하고, 악수와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한다. 다른 학교처럼 학생부장 교사가 두발이나 복장을 단속하는 일이나, 지각했다고 벌을 받는 일도 없다.

그렇다고 학생생활규범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학생회를 중심으로 전교생이 의견을 모아 학생생활규범을 만들어 지키고 있다.

또한 스스로 축제나 체육대회 등 교내 행사를 기획하고 평가한다. 수련활동이나 수학여행을 안 가는 대신 1학년 때는 농촌봉사활동을, 2학년 때는 반에서 10명 내외 학생들이 회의를 통해 계획과 예산안을 짜는 통합기행을 다녀온다. 학생자치회는 학교운영위원회를 참관해 학생들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발언권도 가지고 있다. 금요일 5~7교시에는 자신이 선택한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다.

학생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고 학교 운영과 교육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참여와 자치의 학교문화’, ‘학생자치활동을 통한 나의 성장 이야기’ 등, 내용을 담은 학생자치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교사들 진심에 마음의 문 연 학생들

처음 학교를 개교했을 때만 해도 어려움이 많았다. 용인지역이 비평준화 지역이다 보니, 신설학교는 학생·학부모의 선호도가 낮아, 학교 적응이 어려운 학생이나 학교 폭력에 노출된 학생이 많이 입학했다.

2010년 3월 입학한 학생이 130명이었는데, 이들이 졸업한 중학교는 모두 50곳이나 됐다. 복학생도 40명이나 됐다. 당연히 학생 지도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상황. 학교를 안 나오는 학생도 많았다. 하지만 교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지각과 결석을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사들이 동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한 번 결석하면 교사와 운동장을 30분 동안 돌고, 세 번 이상 결석하면 교사와 함께 지리산 종주를 다녀오는 식이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교사의 진심을 알고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었다. 동반 프로그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교사들과 지지고 볶던 신입생들은 이제 3학년이 됐고, 흥덕고의 현재 학생 수는 650여명, 교직원은 68명으로 늘었다.

이만주 혁신부장 교사는 “혁신학교를 준비했던 교사 10명과 초창기 발령받은 교사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우리 학교에 오고 싶다는 교사들도 많다”고 말했다.

교육과정 선택이 자유로운 학교

 

▲ 2011년 5월 전주 한옥마을로 통합기행을 떠난 흥덕고 2학년 학생들.<사진제공ㆍ흥덕고>

흥덕고 한 반 학생은 30명이다. 하지만 2010년 6월부터 교육과학기술부와 경기도교육청의 교과교실제 선진형 학교로 선정돼 실제 수업은 과목당 20명 이하의 학생이 듣고 있다.

학생들이 반에서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교과 선택에 따라 교실을 옮겨가며 수업을 듣는다. 교사와 교실 수가 많기 때문이다. 국어·수학·과학 과목은 보조교사 1명이 함께 들어간다. 이 과목들은 교사 1명이 학생 10명을 가르치는 꼴인 것이다.

교과부와 교육청에서 10억원을 지원받아 교과 특색에 맞는 교과교실 43개, 복지시설 27개, 교과 또는 학년 연구실 17개를 갖췄다. 학생들이 속한 반은 있지만, 수업은 과목 교실에 가서 듣는다.

1학년 수학이나 영어 과목은 기초반 수업을 따로 운영한다. 하지만 우열반 개념은 아니다. 스스로 기초반을 선택한 학생들이 수업을 듣게 한다. 1년 동안 중학교와 고교 1학년 과정을 집중적으로 배워 2학년에 진급해서는 수업을 따라 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교사들은 협동 학습, 프로젝트 학습, 배움의 공동체 학습, 토론 학습, 컴퓨터를 이용한 개인별 학습 등 배움 중심의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교사들은 전문성 향상을 위해 교육과정, 학생생활문화, 수업혁신, 학교혁신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다.

1년 동안 공개수업과 수업연구회를 6회 진행하며, 교과별로 학기당 1회 ‘수업공개주간’을 운영한다. 모든 교사가 공개수업 1회 이상과 ‘좋은 수업 만들기’ 간담회를 연 2회 진행한다. 교사들의 수업 연구가 활발하다 보니 교실에서 수업하는 교사는 한 명이지만, 이를 참관하는 교사가 서너 명인 경우도 종종있다. 참관하는 교사들은 수업을 영상에 담거나 필기한다.

흥덕고는 교육력 제고 시범학교로도 지정돼, 학생이 수준에 따라 영어나 수학 과목의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또한 개별 특성화 교육과정을 운영해 문화예술이나 체육을 전공할 학생은 체육·음악·미술·연극(전공실기)·문장론 교육과정을 선택하거나, 수리과학을 전공할 학생은 고급수학 기본·고급과학·과학실험 교육과정을 선택할 수 있다.

특히 예·체능 교과를 3학년 때도 반드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과 ‘철학’과 ‘연극의 이해’ 등 특성화 교과를 운영하는 것도 눈에 띈다.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들

흥덕고에는 강제 방과후학교나 야간 자율학습이 없다. 8시 10분까지 등교하고, 오후 4시 20분이면 정규 수업시간이 끝난다. 이후 8교시 방과후수업이 있지만, 50~60명 정도만 듣는다. 자율학습은, 시험기간에 50~60명 정도 참여한다. 모두 학생들의 자율 의사에 맡긴다. 이밖에 동아리 활동을 하는 학생들을 빼곤 대다수 학생이 정규 수업시간이 끝나면 하교한다.

이만주 혁신부장 교사는 “공부를 안 시키는 학교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지 않을 뿐이다”라며 “학생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진로를 고민하면 공부는 당연히 한다. 학생들의 성장을 확인하면서 미래형 인재로 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김현주 교육과정부장 교사는 “지금 3학년 학생들은 1학년 때만 해도 수업시간에 노래방에 가서 놀 정도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지 못하던 학생들이었다”며 “그런데 지금은 시험 날 시험보고 채점까지 하고 집에 간다. ‘학교에서 나가라’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3학년 학생 ‘3분의 2’가 이번 대학 수시 모집에 합격했다”고 전했다.

권소정(2학년) 학생은 “학교가 경쟁하면서 공부하는 분위기가 아니고 함께 하는 분위기라서 모르는 것도 서로 가르쳐준다. 그래서 좋다”며 “수업 당 학생 수도 적고 토론 수업을 많이 해 수업 분위기도 좋다”고 말했다.

이어 “중학교 때는 하고 싶은 게 없었고 이기적으로 살았던 것 같다”며 “고등학교에 들어와 더불어 사는 인간관계도 배우고, 미술 담당 선생님과 상담해 전시와 공연을 기획하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꿈으로 가지게 됐다. 이 꿈을 이루려면 좋은 성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학부모 박은진씨는 “아이가 다른 사람을 볼 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 등, 관점이 많이 바뀌었고, 자기 목소리를 많이 낸다”며 “그동안 한 번도 반장을 해본 적이 없는 아이가 스스로 지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성적이 모든 것은 아닌 것 같다. 비록 성적이 낮더라도 자신이 어떤 꿈을 가지고 살아야할지 결정하고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며 “공부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것을 배웠다. 아이가 행복하게 학교를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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