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인천에서 새로운 학교 만들기 ③ 타 지역 새로운 학교의 현재(2)
서울형 혁신학교 ‘상원초등학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일제고사 부활 등으로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이 심화되고 있다. 공교육은 붕괴되고, 학교는 교사와 학생에게 가기 싫은 곳으로 전락하고 있다. 학교의 권위와 교사의 위상은 갈수록 추락하고, 학교에선 왕따와 폭력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혁신학교’가 떠오르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출발한 혁신학교는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6개 시ㆍ도교육청에서 현재 300여 개교를 운영하고 있다.

혁신학교를 운영하지 않는 인천에서도 혁신학교와 같은 새로운 학교를 만들기 위한 연대단체가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다. 진보구청장이 당선된 남동구에서도 새로운 학교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혁신학교의 의의와 현황, 그동안의 성과 등을 짚어보고 새로운 학교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에선 수업종이 울리지 않습니다. 일반학교와 달리 몇 교시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이죠. 해당 교과 상황에 맞게, 교사의 자율에 맡기는 블록 타임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40분 수업에 10분 휴식의 일괄적인 수업방식보다 학생들이 훨씬 집중해서 수업에 참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추진하다보니 같은 학년에서도 쉬는 시간이 달라 어떤 반은 수업 중인데 어떤 반은 쉬는 시간이고 해서 서로 수업에 지장을 주는 일이 생겼습니다. 초등학생들이야 당연히 쉬는 시간에 많이 떠들고 하니, 그런 일이 생긴 거죠. 그래서 지금은 수업시간을 조정해 같은 학년은 쉬는 시간이 맞도록 조절했습니다”

지난 9일 방문한 서울형 혁신학교 상원초등학교(서울시 노원구 상계9동) 이용환 교장의 말이다. 이 교장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다. 학교를 방문하고 몇 시간이 지나도록 수업종소리를 듣지 못했다.

과정중심의 수행평가가 중요

상원초에는 종소리 말고도 시험도 없다. 점수가 실리는 통지표도 없다. 문제지를 푸는 시험 대신 과정을 중시하는 종합적인 수행평가를 하고, 담임교사가 정한 양식의 이력철형 통지표가 점수를 표기하는 통지표를 대신한다.

이력철형 통지표에는 학생에 대한 담임교사의 서술식 평가가 담긴다. 또한 학생 스스로가 자신을 평가하는 자기 주도적 학습평가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통지표도 학년과 반마다 모두 다르다. 어떤 반은 학생의 자기 주도적 학습평가에 담임교사가 다시 의견을 쓰기도 한다.

이용환 교장은 “학교 자체 시험은 없지만, 보겠다는 학생에 한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는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시험을 위해 학교에서 준비하거나 성적을 알려주거나 하진 않는다”며 “결과중심의 지식 평가보다는 과정중심의 수행평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담임교사의 평가와 함께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자신의 학습 상태와 변화를 더 잘 파악할 수 있어 학업 성취도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된다”며 “교사들도 학생들이 자신을 더 정확하게 평가한다고 이야기한다. 향후에는 상호평가를 도입하려고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장과 함께 수업이 한창인 3학년 1반 교실의 뒷문을 열었다. 학생들은 모둠을 지어 교실 바닥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책상을 모두 뒤로 밀고 바닥에 앉아 수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재료를 보니, 나뭇잎과 나뭇가지다. 학생들은 숲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수업은 ‘자연물 표현하기’였는데, 체육과 미술 과목을 함께 배우는 통합교과수업이었다.

먼저 학교 인근의 공원에서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주우며 체육 활동을 하고, 교실에서 숲을 만들며 미술 활동을 한다. 자연에 대한 감수성은 덤이다. 학생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진우 학생은 “나무를 심는 것은 아니지만, 친환경적인 모형을 만들어서 좋다”며 “만들기 수업을 많이 해서 재밌고, 선생님도 정말 좋다”고 말했다.

성주형 학생은 “수영장에서 만난 다른 학교를 다니는 형과 친구가 ‘우리 학교는 매일 시험만 보고 문제만 풀어서 재미없고 학교 가기 싫다’고 말했다”며 “우리 학교는 선생님과 토론하고 질문하고 게임도 하면서 수업하니까 이해하기도 쉽고 재밌다. 학교가 좋다”고 말했다.

이어서 들여다 본 3학년 4반 교실에선 학생들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집단 상담’ 형식의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학생들에게 각각 다른 색깔의 ‘배려’, ‘존중’, ‘경청’, ‘믿음’이라는 단어가 적힌 종이를 보여주고 교실에서 이 색깔과 같은 물건을 찾아 발표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같은 색깔의 물건을 찾으며 집중력을 높이고 단어의 뜻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다. 발표가 끝난 후 교사는 학생들에게 “여러분이 색깔을 찾으며 집중력을 보였듯이 학습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집중력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학부모 90% 이상 찬성으로 혁신학교 추진

▲ 서울형 혁신학교인 상원초등학교 3학년 1반 학생들이 교실 바닥에서 나뭇잎과 나뭇가지로 ‘자연물 표현하기’ 수업을 하고 있다.
상원초는 2010년 12월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됐고, 2011년 3월부터 2년째 혁신학교로 운영 중이다. 현재 36개 학급에 880명이 재학 중이며, 교직원 48명이 일하고 있다.

혁신학교로 지정받기 위해 교사들이 많이 노력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들을 중심으로 혁신학교를 꾸준히 공부하던 모임이 지역에 있었고, 그들 중 이 학교 교사들이 3개월 정도 준비 모임을 진행했다. 이 모임에서 혁신학교의 상을 함께 만들고 다른 교사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혁신학교는 학교 구성원들의 자발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때문에 혁신학교 지정을 위해서는 학부모와 교직원, 운영위원회의 동의를 얻어야한다. 학부모에게 찬반 의견을 물어보니 90% 이상이 찬성했다. 또한 교원 53%와 운영위 100% 찬성으로 혁신학교로 지정받을 수 있었다.

교사와 운영위는 혁신학교가 잘 추진되기 위해서는 교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내부형 교장 공모를 진행했다. 이에 혁신학교 준비 모임을 함께 하던 이용환 교사가 응모해 교장으로 선출됐다.

이 교장은 “입시위주의 경쟁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신이 크기 때문에 찬성률이 높았던 것 같다”며 “많은 학부모들이 새로운 교육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교사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업무 지원

상원초는 ‘함께 가르치며 배우는 행복한 학교’라는 모토로 존중과 배려, 책임과 돌봄의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교사가 가르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교감, 부장교사, 교무행정사, 교무보조사, 보조교사 등 10명으로 구성된 교무업무지원팀을 운영하고 있다. 덕분에 교사는 행정업무가 거의 없다. 축제 등 학교의 큰 행사를 할 때도 추천을 받아 선발된 교사들이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준비한다.

학년 학교장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학년별로 장을 두는데, 그 사람이 학년에선 교장처럼 역할을 한다. 학년 장을 중심으로 학년별 교사들은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짜고 예산을 세워 운영할 수 있다. 교장은 학년별 수업 편성이나 예산과 관련해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다.

교사가 교수·학습에 전념하고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행정업무 이외에도 다양하게 지원한다. 학년연구실과 학습지원실, 전문가 컨설팅 지원체계도 구축했다.

앞서 설명했듯이 상원초는 수업방식을 지식전달 위주에서 토론식 수업, 협력 학습, 주제 통합 학습으로 전환해 학생들의 발달을 돕고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학년이나 학급별로 주제를 정해 한 한기에 한 번 이상의 프로젝트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단 한 명이라도 학습 소외자가 나오지 않도록 학습 부진 학생의 학습능력뿐 아니라 정서적인 요인도 파악해 상담을 병행하는 등, 기초학력 향상을 위한 프로젝트를 도입하고 부진 학생 전담 강사도 두고 있다.

지역사회와 공존하는 열린 학교로

▲ 상원초등학교 3학년 4반 교실에서 학생들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집단 상담’ 형식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수락산, 중랑천, 생태공원 등 주변의 자연환경을 활용한 환경생태교육과 옥상, 유휴지를 활용한 학교 농장으로 농업교육 등을 추진한다. 문화·예술·체육 1인 1기 학습과 학기마다 학생 선택형 특기 교육으로 학생들이 문화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열린 학교로 지역사회와 공존하는 학교로 만들어가고 있다. 학부모를 비롯해 지역사회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학교 교육에 참여하도록 한다. 마들(노원구 지역의 옛지명) 주민회와 연구소, 중랑천 살리기 모임 등에서 계절 학교에 강사를 파견한다. ‘마들 농요 관련단체가 학생들과 함께 벼 베기를 한다.

학교 또한 지역 주민들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학교를 개방한다. 주민들이 마을 살리기 행사나 축제를 학교에서 여는 등, 학교가 지역의 ‘광장’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학교도서관도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주민 참여 교실, 별자리 가족캠프, 주민과 하나 되는 상원축제 등도 열린다.

학부모가 교사가 돼 ‘떡 만들기’ 동아리를 운영, 한 달에 한 번 학생들이 만든 떡으로 노인들의 생일잔치를 벌여주기도 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봉사의 의미를 느끼게 하고, 지역사회와 학교의 유대를 강화할 수 있었다.

박지원(3년) 학생은 “지난번 동네 어른들이 많이 보러오는 상원축제에서 공연할 수 있어 기뻤고, 또 하고 싶다”며 “축제를 보러온 한 아주머니가 ‘정말 재밌어서 또 보러 오고 싶다’고 했다. 우리 학교 축제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건옥 교사는 “교사가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어 좋고, 학생들 생활지도와 상담도 많이 할 수 있어 서로 신뢰감이 높다”며 “학부모를 포함한 학교 구성원들과 지역사회가 함께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니, 학부모와의 사이도 좋다. 다른 사람들이 학생들을 지도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자유분방하게 두는 게 아닐까’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교사와 학생 간에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정렬 학부모는 “활동과 사고가 자유로워졌고 학교가는 걸 즐거워한다”며 “아이들의 서술형평가를 보면 교사의 학생에 대한 애정과 교감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학부모들이 점수 평가보단 서술형 평가를 바란다. 공부를 등한시하는 학교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라고 말했다.

이용환 교장은 “상계동은 물론 이웃한 중계동 모두 사교육의 일번지라고 불렸는데, 이 지역에 우리학교를 포함해 모두 3개의 혁신학교가 들어서면서 사교육 학원들이 원생이 줄어들어 어려워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역 주민들이 ‘학교와 동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이 다른 동네보다 많다’고 이야기를 하니, 그만큼 학원을 다니는 아이가 적다는 반증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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