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가 말하는 러·우크라이나 전쟁] ① 전쟁의 원인
미국의 '1인치 협정' 위반과 나토의 동진
미국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혁명 지원
미·우크라이나 전략적 파트너십 공동성명

인천투데이=박규호 기자│“촘스키 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원인을 미국으로 지목했다.”

김선명 뿌쉬킨하우스 원장은 지난달 27일 (사)인천사람과문화 주최로 3년 만에 대면으로 열린 제90회 인천마당에서 ‘촘스키가 말하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주제로 강연하며 이같이 말했다.

노엄 촘스키는 미국 언어학자이자 인지과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정치평론가, 인권운동가, 사회평론가, 반전운동가이다. 1956년부터 미국 MIT 공대 교수가 돼 현재까지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촘스키는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보고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미국 제국주의를 규탄하고 인권, 평등, 반전을 위한 적극적인 운동을 전개해 ‘미국의 양심’이라고 불린다.

대표적인 저서로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공공선을 위하여’ 등이 있다.

김선명 뿌쉬킨하우스 원장은 2002년 민간에서 러시아교육문화센터 뿌시킨하우스를 설립했다. 러시아어 교육, 러시아 문화 확산, 문학 서적 출판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세계의 석학들 우크라이나 사태를 말하다 촘스키편’ 편저자이다.

'세계의 석학들 우크라이나 사태를 말하다 촘스키편'은 전쟁의 궁극적 원인이 무엇인지 촘스키가 바라본 시선을 김선명 원장이 편집해 썼다.

김선명 뿌쉬킨 하우스 원장.
김선명 뿌쉬킨 하우스 원장.

“촘스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원인은 미국”

김선명 원장은 지난 21일 블라드 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는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를 한 것이라며 강의의 운을 뗐다.

김선명 원장은 “전쟁을 일으킨 주체와 전쟁 장기화의 수혜자, 전쟁을 끝내는 방안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설명하는 핵심 내용”이라며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와 서유럽·미국·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대리전이다”라고 설명했다.

김선명 원장은 촘스키 교수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을 ▲미국의 1인치 협정 위반 ▲미국의 유로마이단 혁명지원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적 파트너십 공동 성명’ 으로 분석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원장은 촘스키 교수가 지목한 원인이 모두 미국과 관련있다고 설명했다.

김선명 원장은 “촘스키 교수는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킨 것을 잘 했다고는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전쟁을 일으킨 것은 분명 러시아의 잘못이고, 전쟁 범죄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러시아는 나토(NATO)와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며 “나토의 동진과 미국의 지나친 러시아 견제가 전쟁이 일어난 가장 큰 배경이라고 촘스키 교수는 설명한다”고 덧붙였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클린턴 대통령 이후 1인치 회담가 파탄 됐다.(사진 출처 픽사베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클린턴 대통령 이후 1인치 회담가 파탄 됐다.(사진 출처 픽사베이)

미국의 1인치 회담 위반

김선명 원장은 촘스키 교수가 우크라이나 사태 배경을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와 동·서 독일의 통일 시기 소련이 동독에서 소련군을 철수하며 맺었던 '1인치 협의 파탄'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1990년 2월 9일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소비에트연방) 공산당 서기장과 독일 통일 전반에 걸친 회담 중에 “나토를 1인치도 동쪽으로 전진시키지 않겠다”라는 발언을 3번씩이나 했다. 나토는 미국이 소련에 맞서 서유럽을 중심으로 구성한 군사동맹 북대서양조약기구다. 

이후 1990년 2월 10일 헬무트 콜 서독 총리와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은 나토가 동쪽으로 전진하지 않는 이상 소련은 독일 통일에 협력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같은해 9월 12일 독일 통일 최종 조약이 이뤄졌다.

김선명 원장은 “이후 아버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해당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빌 클린턴 대통령 이후 1인치 협의가 지키지지 않았다”며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을 나토에 가입시키면서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 출처 픽사 베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 출처 픽사 베이)

미국 주도 '반공' 유럽군사동맹 나토의 동진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소비에트연방을 구성한 국가인 ▲폴란드 ▲헝가리 ▲체코 ▲에스토니아 ▲리트비아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이 나토에 가입했다.

김선명 원장은 “이들 국가가 나토에 가입한 것은 '1인치 협의'를 위반한 것”이라며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해당 국가들의 나토 가입을 용납하면서도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는 '데드라인(dead line, 한계선)'으로 선언했다”고 말했다.

이어 “2008년 아들 조지 부시가 루마니아 부크레슈티에 열린 나토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초대하고 가입을 권유했다”며 “이는 러시아의 데드라인을 건드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촘스키 교수는 심지어 '러시아가 나토에 가입하겠다는 의사까지 전달'했으나 빈번히 거절당하자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라는 완충지대를 데드라인으로 설정한 것이라고 밝혔다”고 말했다.

김선명 원장은 “러시아는 나토의 동진으로 위협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서방의 무기나 군사가 배치되지 않는 완충지대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경고했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혁명

김선명 원장은 촘스키 교수가 이 전쟁의 촉발원인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유로마이단 혁명을 지목했다고 밝혔다.

2013년 11월 21일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당시 진행 중이던 EU 가입 논의를 전명 중단하고 친러시아 정책을 선언했다. 이를 계기로 우크라이나 내에서 유로마이단 혁명이 일어났고, 야누코비치는 의회에 의해 탄핵됐다.

김선명 원장은 “유로마이단 혁명 당시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병합하고 러시아군을 돈바스 지역으로 보내자 나토와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고 군사훈련을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이 우크라이나 나토가입을 지속적으로 권유하고 유로마이단 혁명을 선동과 지원했다는 일부 의견도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킨 주요 배경이라는 것이 촘스키 교수의 설명”이라고 부연했다.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혁명 이미지.(사진출처 픽사베이)

미국·우크라이나 전략적 파트너십 공동성명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전쟁 직전인 2021년 9월 1일 ‘전략적 파트너십 공동성명’ 채택을 준비했다. 같은해 11월 공동성명을 공식적으로 작성하고 발표했다.

미국은 공식 정책 헌장을 작성하면서 우크라이나에 중화기 합동 군사 작전과 훈련을 제공할 것을 천명했다.

김선명 교수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나토군과 합동군사훈련 시작, MD(미사일 방어체계) 구축 등을 꾸준히 경고했다. 헌데 미국이 그것을 계속 추진했다”며 “촘스키 교수 말에 따르면 전략적 파트너십 공동성명은 미국이 러시아를 명백히 도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것은 신경쓰지 않았다”며 “하지만 나토 가입에 경우 핵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는 각오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는 사실상 나토 가입이 불가능한데도 미국은 지속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설득했다”며 “촘스키 교수는 이 전쟁을 명백히 미국에 의해 러시아가 도발 당한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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